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펼치는 신년수상 릴레이] 2. 자기를 허무는 곳에 사랑이

신달자 시인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1-25 제 1239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기쁜 생활은 사랑과 노력으로 좌우돼
대부부ㆍ이기적인 사랑을 과시할 뿐 완전한 사랑은 베풀지 못해
참다운 사랑은 자기를 버릴때 이뤄져
아침에 칫솔이 부러지면 흔히 우리는 불길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 불긴한 생각이 하룻동안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한 마음으로 인하여 더 다른 불상사를 만들기 쉽다.

일테면 생각은 행동을 유발시킨다. 작은 하나의 실수. 즉 아침에 칫솔이 부러지는 일이라도 그때문에 하루를 조심성 있게 또한 되도록 명랑하게 살아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은 좋은 징조라고도 바구어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녕 우리는 너무나 터무니없고 빈약한 이유를 확대시켜 스스로를 불행감에 빠뜨릴때가 많다.

실상 우리가 인간의 노력으로서도 가망이 없는 불행속에 산다면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긴장감으로 자신의 현실을 탓할 여유가 없으리라.

이것일수도 있고 저것일수도 있는 중간쯤에서 밟고 어두운 계절을 왕래하며 자신의 생활보다는 타인의 삶을 더 기웃거리다가 자신에 대한 불안과 투정만 늘게되는 경우는 흔하다.

생각이 행동이 된다면 말이 또한 그 생활을 지배하게 되기도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다스리지 않느냐 하는 식의 얕보는 자기현실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며칠전 막내의 심한 기침으로 밤잠조차 이룰 수 없는 지경에서 병원을 다녀야 했다.

두줄일쯤 지나자 나도 지쳐버렸고 큰 차도가 없는 아이를 안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하나 이유로 모든게 시들하고 우울했으며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어두운 표정을 당연하게 보이곤 하였엇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에서 나는 한모녀를 만나게 되었다.

열살이라고 했지만 여섯살밖에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체구의 딸은 뇌성 소아마비로 두다리를 쓰지 못하는 신체장애자였다. 그 가녀린 체구에 심한 기침을 하는 아이를 시종 따뜻한 미소로 다독거리는 어머니를 보았을때 불현듯 긴장감과 아울러 부끄럼움이 느껴져 왔었다.

모성(母性) 이라는것.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다는 그 어머니의 사랑에도 자연적인 것을 떠나서 인간적인 성질과 모습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끼며 나는 몹시 내 아이에게 미안했었다.

나는 언제나 세상에 타어나 내가 받는 대우가 초라하고 허술하다고 투정을 부렸었고 내 가정 혹은 가족중에 일어나는 작고 큰 사고 (事故) 를 당할때마다 내가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스스로 결정짓곤 했었다.

그리고 매우 당연히 화도 내고 옆사람에게 어두운 얼굴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걷지 못하는 작은인형같은 아이를 매일 업고 다니며 그 아이가 기침을 할때마다 괴로운 표정을 하지않고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며

『기침이 나가라 우리 예쁜 아이에게 기침이 나가라』

그 어머니는 아이를 보고 웃고 있었다.

이런 어머니를 그냥 훌륭하다고 말하게엔 실상 나는 그어머니 생활의 겉껍질만 본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그 아이에 대한 아픔이 삭여져서 그 어머니 몸짓에 표정에 말씨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오래도록 그녀의 미소띤 밝은 얼굴을 생각했었다.

우리의 생활을 밟고 어둡게 끌어가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저마다 지니고 있는 인간적인 품성에 연유한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인간생활의 기후는 인간사고(思考)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옳을것 같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에게도 웃음이 있듯 뇌성소아마비 그보다 더한 신체장애자를 자식으로 둔 어머니에게도 웃음이 있듯 밝고 명랑한 생활은 예기치 않게도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그곳에 있는것 같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글을 쓰고 말한 단어중에「사랑」이란 단어가 제일로 많은것 같은데도 돌이켜보면 진실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기억은 그리많지 않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사랑이란 그냥주고 베푸는 것이 아닐것 같다.

자기를 그대로 살리고 베푸는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 아니다.

자기를 줄이고 자기의 어느 한구석을 허물어 뜨리며 주고 베푸는 사랑만이 참다운 사랑이요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 특히 그중에 나는 너무나 이기적인 사랑으로 사랑 그자체를 과시하고 있는것 같다.

그때문에 우리는 사랑했음에도 사랑받음에도 늘 목마르고 외롭고 눈물겨웠던 것이다.

그 이기(利己)의 가시를 빼어내지 않고서는 어디서든 우리는 고독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곳곳마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드높고 곳곳마다 하느님 하느님 외치는 소리 드높고 그앞에 영광 돌리는 사람은 아무곳에서나 만날 수 있다. 아마도 81년도에는 하느님을 믿는 해가 되는성 싶게 그 가슴에 그 마음에 십자가를 단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을것 같다.

인간이 비록 미숙하고 어리석다 할지도 결국 하느님을 믿는 생활이 인간의 결과적인 추세를 보인다는 것은 인간의 힘보다는 신이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는 단하나 그 이유일 것이다.

사랑은 이렇듯 나타내지 않고 남기지않고 주는데서 사랑의 그 옹골진맛을 느끼는 정신적 부자(富者)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괴롭고 아픈 생(生)을 누려간다면 눈먼자식과 벙어리 자식을 키워내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 어머니들이 그 얼굴에 띄워내는 밝은 웃을을 생각한다면 사람의 기쁜생활도 사랑과 노력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된다.

신달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