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인들이 펼치는 신년수상 릴레이] 1. 색동옷입는 사람들

조애순·시인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1-18 제 123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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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마음 먹는이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야
현재 삶에 만족할때 행복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색동옷 빛깔
신년연휴(新年連休)에는 옹기 종기 식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보낸다.

보내는 한 해를 정중하게 전송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알뜰한 마음으로 서로를 지켜온 사랑속에서 울긋 불긋 색동옷을 입는 때다.

함께 모여 축복의 인사장들을 보냈듯이 날아드는 카드를 같이 뜯고 같이 읽고、줄을 매고 걸어 놓는다. 이렇게 소박한 기쁨과 행복 속에서 우리집의 한 해는 장(章)을 펼치게 된다.

『인간이 만약 이미 가지고 있는것에 대해서 불만을 느낄진댄 전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을지라도 인간은 불행할 것이다』라고 한 LㆍAㆍ세네카의 맡은 생활철학이다. 신(神)이 베푸는 아주 적은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자는 행복하다고 말한 현인(賢人)들도 많았다.

소아마비로 해서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딸을 가진 한 어머니의 아픔을 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야하는데 이만큼 큰딸을 보니 더 슬프다는 것이다. 삼남매인 이 큰딸의 맘씨고운 행동을 볼때면 셋중에 꼭 하나가 소아마비에 걸려야 한다면 바꿔서 남자아이가 되는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의 심정은 이해할 만했다. 사년전 비단옷집을 하는 그 집에서 딸아이들의 설빔 색동옷을 하면서 그어머니의 푸념을 듣고 그때 나는 위로겸 격려의 말을 했다.

내 아이가 아니니까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면 아예 말않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슬픔을 겪는거다.

그 내용만이 다른 것이다. 생각해보자. 당신의 하소연인즉 외동딸「영」의 소아마비이다. 그러나 당신은 영이외에 건강한 두아들을 하느님이 주셨다. 감사하지 않느냐. 삼남매 모두가 착하고 똑똑하다. 부모님께 순종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다. 영이만 해도 성한 다리로 온전하게 걷지는 못하지만 보조 지팡이가 필요한 심한 소아마비도 있는데 그만한 것에 감사하지 않는다. 더구나 어려서부터 친구들이 뛰어 노는데 영이는 다리가 그러니 방안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러니 오늘에 이렇게 훌륭한 미술학도가 되었지 않느냐. 요즘 청소년들의 비행을 우리 어른들은 큰 걱정으로 삼는데 영이는 다정한 딸로서 어머니를 벗하니 기쁘게 생각하자.

뭐 대강 이런 얘기였다고 기억되는데 정초때문에 바쁜 일손들이라、두어시간 아이들의 옷이다 꿰매지기를 기다리면서 그어 머니는 한숨도 쉬며 많은 얘기를 했다.

그리고는 우리 딸아이들과 같은 색상으로 영이도 한복을 해주겠다는 얘기를 밝은 얼굴로 하고 우린 헤어졌다.

그런데 삼년전부터 나도 회원이 되어 드나드는「사랑의 고리」라는 공동체에서 문득 영이어머니 생각이 났다. 하느님을 알고 그자녀임을 자랑하는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

돈암동 마루턱 길가집 현관에 붙은 자그마한 방이 그들의 생활터전 전부였다. 거의 하체가 부실해서 않은채로 움직여 이동하는 한자매는 미사참례를 위한 걸음은 꿈이리라. 그들 옆에는 영이처럼 가슴태우는 어머니가 지켜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끼리 모여 사랑의 고리를 이어가며 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살아가는 기쁨일뿐 절망이라거나 원망이란 있을 수 없었다. 내 영명축일 카드를 그들로 부터 받아을때의 기쁨은 켰다.

제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기에도 벅찬 그 고독을 웃음속에 넣어두고 이웃들을 축복해주는 그들이다. 며칠전 우리반 학생들은 한자리에 모여 편지쓰기를 했었다. 몇군데 주소를 칠판에 적어 주었는데「사랑의 고리」앞으로 쓴 편지가 가장 많았다.

함께 나눈다는 공동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 이마음은 회색이거나 검거나 무색은 아니다 같이 울고 같이 웃는 알록달록 영롱하게 빛나는 색동옷이다.

단청(丹靑)도 곱게 단장한 문화재들을 보면 울긋불긋한 원생으로만 느껴지지 않는건 차원높은 정신을 보기때문이다. 더구나 여행길에 들른 산사(山寺)의 조금은 퇴락했지만 그윽한 분위기에 젖은 단청의 처마끝에 피어오르는 향 (香) 의 내음은 나그네의 마음을 향수에 젖게한다. 그곳에서 만나는사람들과 얘기를 하노라면 문득 색동옷입은 이들을 알게도 된다. 때가 묻어 그무지개 색들이 빛을 잃었다가 다시 기분을 맛본다.

우중충한 마음이 되면 눈병난 눈빛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날 돼지멱따는 소리로 흉한 모습으로 남을 헡뜯고 비방하는 전락이 오지나 않을지….

지난 연말 북적거리는 작은 모임에서 들은 한선배의 인사말은 나에게 결론을 훌륭하게 내려 주었던 것이다. 들으면서 문득 어릴적 작은 오라버니가 해준 말과 같구나 하는 생각을 자꾸 만했다.

내게 주어진 환경 이미 처해진 여건을 달게 잡으십시요. 그속에서 그것들과 밀고 당기는 투쟁을 무모하게 벌리는 대신 힘찬 발걸음으로 딛고 일어서십시다. 개척합시다 그런 다음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낙오자에게 따뜻한 격려의 손을 내밀고 힘을 주십시다. 우린 다젊고 용기가 있으니까요. 이런 말들을 대선배인 그 분은 흥분하지 않고 소리지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는데 좌중은 어느새 조용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너무 어려서 내손위 언니에게 하던 오라버니의 그말의 뜻을 몰랐는데 삼십년이 지난 오늘에야 문득 가슴에 와닿는 말들이었다. 구구 절절이 새겨지는 말들은 무슨 어려운 철학용어도 아니고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건만 깊은 공감으로 결론 지어졌던 것이다.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교훈을 외면하지만 쉽고 실천할만한 작은 명언을 알았다. 아프고 슬퍼서 약한 마음이 된 이웃앞에 색동옷을 내어주자.

동정으로 그들을 비굴하게 하지말자. 더욱 비참해 질테니까.

울긋불긋 빛깔좋은 색동옷을 입자. 어색하지않게 나들이도 하고 더럽혀지면 빨아서 깨끗하게 입고 미소지으며 인사하자. 방황하는 이들을 보거든 손잡고 가까이 가자. 신유년 우리집 식구들은 색동옷입는 사랑이 되자고 마음을 먹는다.

조애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