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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2백주년을 생각한다] 14. 한국공의회를 향한 제언 - 종신부제직의 제문제 3

양한모·크리스찬사상연구소장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1-11 제 123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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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제기 1
현대교회에도 부제역 부흥 절실히 요청돼
주교와 백성과의 사귐ㆍ일치는 시대적 요구
종신부 제직의 도입을 언급하는데 있어 오늘을 사는 주교와 하느님 백성과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바티깐」공의회 후 특히 요사이 우리에겐 새롭지만 한 사목협의회니 사제평의회니 하는 새로운 교회기구가 교구청에 주교의 자문기관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확실히 공의회가 요망한 것이며 주교의 권위를 행사하는 새로운 방학이기도 한 것이다.

이 회의들은 아직 실험단계에 지나지 않는것 같지만 어쨋든 교회공동체를 돕고 발전시키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늘날의 하느님 백성은 이미 과거의 독재적 법률수의가 소멸한 세계에 속하고 있기에 사제나 신도들은 지금까지의 수동적 자세에서 탈피하여 공동책임이라든가 은혜의 현실인 성령의 카리스마에게 확실히 눈뜨고 있다. 특히 신도 엘리뜨들은 더욱 그러한 것이다.

오늘의 시대에 있어서는 주교는 권력의 소유자、교회위게의 首位者라는 것만으로선 충분치 못하고 자기의 통솔하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과 사귐이라는 교류관계에 위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들과 대화를 해야 할 뿐아니라 그들 가운데에서 주교라는 자기의 입장을 새삼스러이 다시 뚫어지게 자세히 보지않으면 안되게끔 됐다는 말이다. 주교는 고립됨이 없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을 주체로 하는 전례집회 안에 성도의 공동체와 전교회와 산 사귐의 일치체를 영성하는 지방교회의 신자단 가운데에 있어야 하기에 어느 면에선 가부장적 고립에서 탈피하여 하느님 백성과의 일치라는 새로운 요구에 대응하지 않을 수가 없는것이다.

한편 오늘날 권위의 부정은 세계적 현상인데 사사리 바오로 6세가 지적했던 바와같이 교회 안에도 주교의 권위에 대한 신뢰에 확실히 위기가 있다는 것을 엎어놓고 부인만 할 수 없는 것 같다. 실로 교회의 장상에 대한 불신과 불순명이 공의회 후에 생긴 것은 개탄할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적 현상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들은 공의회 후 교회내에서 지도자들의 괴로움을 눈으로 봐왔다. 주교는 주교나름대로 또 사제는 사제나름대로 변동하는 시대의 소산으로 고뇌를 겪어왔고 오늘도 역시 겪고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더우기 주교의 고뇌와 고립은 더 그러한 것 같다. 그만큼 교회 안에는 너무나 많은 인간적 고뇌가 넘쳐 흐르고 있는 사실이다.

실로 사귐의 형제 관계만이 헌신하며 고뇌하는 봉사자로서 주교와 사제를 인간과 세계에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표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아뭏든간에 주교의 단체성에 의거한 그들의 사귐안에서의 일치와 아울러 위게적 사귐에 의거한 사제들과의 일치는 물론이려니와 오늘날 주교와 하느님 백성의 일치는 변혁적이라고 할만큼 새로운 요구로 우리들 앞에 제기되고 있는 무제인 것이다. 이 요구는 필연적으로 종신부제직의 도입을 제기하기 마련이다.

使徒時代때 부제직 제도화

그런데 사도시대 및 사도후시대 이래 부제직의 위게는 주교에서 직접적으로 보조하기 위하여 제도화 되었던 것이다.

3세기에 서술된 디다스카리아(사도게율)를 보면 (11-16ㆍ3)부제는 신도들 사이에서 주교의 눈이며 마음이 었다. 부제들은 시자와 끊임없는 관련을 지했고 신자들의 모든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물질적 또 정신적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부제는 신도들을 구제하기 위해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방문했었고、특히 과제는 주교에게 교회의 필요와 곤란을 알리는데 참으로 충실하였던 것이다.

기실 그 세기는 부제의 황금시대였다. 부제는 주교와 동행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주교와 신자들 사이의 일상적인 중개자였고 목자와 양떼를 맺어주는 일을 함으로써 사실 주교의 손이며 마음이었던 것이다. 4세기에 이르러 주교좌 성당에 부제들의 으뜸격인 대부제가 출현하게 되었다.

그는 주교에게 적격자를 신품급과 교회목에도 천거하는 추천자 이었다.

이와같은 2~3세기의 부제의 역할은 현대세게에 있어서 현대교회가 그의 본질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또 주교직의 임무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부제직의 부흥을 실현할 필요성을 실감케 하는것이다.

주교는 형제애 관계의 중심에 존재하여야 하고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러기에 주교가 우리들의 형제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부제는 주교에의 특별한 친밀함을 갖고 있는 중개자로서 주교와 그 비판자에게 화해를 가져오는 부수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 사실 하느님의 백성중에서 주교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 하더라도 부제는 주교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자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주교를 변호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할 수 있기에 하느님 백성 전체이 대표로서 부제는 주교에게 서슴없이 발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제는 주교의 손이며 눈이며 마음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통일이라는 지상과제와 더불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를 복음화하여 전인간적으로 발전토록 하는 긴급을 요하는 과제에 그리스도의 종으로 파견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봉사해야만 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주교들은 가장 긴급을 요하는 민족사적 요청에 응답하여야 할 역사적 중대시기에 권위를 갖고 강력한 지도력과 그 도덕적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그리스도교적 의식에로의 변호를 촉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우리 교회에게 도전적으로 요청하는 민족사적 과제에 냉정하게 대처하기 위하여 또한 이간의 참요구를 주교에게 호소하는 동시에 고립상태에 있는 교에 의해서 관념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오늘의 교회는 부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종신부제는 중개자로서 주교에게 진언할 수 있는 동시에 손쉽게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정의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 할 수가 있기에 말이다. 특히 주교가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을때에 종신부제는 언제든지 존경과 사랑을 갖고 주교에게 지언할 의무까지 있는 것이다.

어쨋든 고뇌하는 현대교회와 더불어 함께 고뇌하는 주교의 고립이라는 문제와、형제적 사귐으로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실현하는 문제와、현대사회의 요구에 대처하는 문제 등을 놓고 오늘날 주교의 눈이며 마음인 종신부제의 부흥도입을 깊이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더우기 한국교회 창립 2백주년을 맞는 이시점에서 그 실현을 위하여 깊이 다뤄야 할 것으로 믿는다.

도시화시대와 終身副祭

격변하는 현대사회의 도시화 현상은 도시화 시대의 교회에 구체적으로 종신부제직의 필요성을 긴박하게 제기하고 있는 몇가지 이유에 관해서 언급하겠다. 첫째 대도시 교회의 비대화와 농어촌 교회의 관소화 현성이다. 고소화한 농촌교회에서는 사제직에 속한 일의 대부분을 종신부제에게 시킬 수 있을 것이며 또 한편 비대화한 도시교회에서는 본당 신부나 보좌신부의 사목활동만으로는 사제직을 충분히 수행하기에는 너무 벅차므로 종신부제에게 일을 분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목사회학적 견해로는 한사제가 담당할 수 있는 신도수의 적정선을 1천명 이하로 보고 있는데 힘든일 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사제또는 몇사람의 사제에게 몇천 명의 신도사목을 맡긴 다는것은 사제의 거룩한 직무를 인간의 힘을 넘어선 격무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더라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사제는 격무에 과로하여 밀어닥치는 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실망의 유혹과 현대사회의 표지를 읽을 역량의 감소를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정황의 도시화 현상하에서는 진실하게 좀 깊이 사목문제를 생각한다면 종신부제의 도입을 근본적으로 배려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小共同體형성토록

둘째、소공동체 이른바 기초 공동체를 형성하는 사목적 과제이다.

오늘의 교회를 정말 피가 통하는 공동체로 변혁하는 일뿐만 아니라 신도의 인간 공동체를 소공동체로 형성하여 소형교회와 신도집회를 신설하기 위해서는 종신부제직의 도입이 긴박한 것이다.

도시화 현상하에 놓여있는 인간사회는 지역적 혈연적 공동체라는 기초집단이 해체되가고 인간의 집단적 응집성은 잃어만가고 있다. 기초집단의 제일차적 유대가 끊어진 개인은 모래와 같은 원자적 단위로서 거대화한 대중안에 던져지고 있다.

이렇게 대중사회화 상황의 전개가 진행 될수록 소공동체이 형성에 대한 사회화적 관심이 커지고 있으나 실은 역시 우리교회도 최대의 사목적 관심을 이것에 두지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안에서 인간해방의 구언메시지를 전하여 진실로 사람들의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회복하는 곳인 소공동체를 형성토록 장려하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고 또 교회는 기구로서가 아니라 복수의 인가이 만든 소공동체의 산 활동으로서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인구의 도시집중은 신도 그룹이 피가 통하는 인간공동체로서 형성되도록 촉구하고 있으며 그 공동체는 가능한 한 많은 수로、형태는 작은 것으로 조직도어야 할 것이다. 소공동체인 기초공동체를 많이 조직하면 할수록 사제의 손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사목적 사태는 종신부제의 역할이 등장하는 것을 당연히 환영할 것으로 본다.

셋째、도시화 시대의 교회즉 도시본당이 단지 사회학적 조직에 불과하다고 보는 일부의 견해가 있듯이 하부구조에는 복음적 형제애를 찾아볼 수 없게끔 되기쉬워 복음과 본당의 실존적 모습 사이에 고리가 생겨 시급히 가정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용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사제직을 직기에 도입토록 새롭게 제기하게 된다.

넷쨰、현대사회에서의 가정교회의 사목 즉 가정사목이 날이 갈수록 중요성을 띠게 마련인데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결혼한 부제의 사도직적 역할이야 말로 적재적 소라고 하지않을 수 없다. 결혼하고있는 종신부제는 자기자신의 생활경험을 바탕하여 가정생활을 하고있는 신도들에게 사제보다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성가정을 조성하는데 올바르게 가르칠 수가 있다.

다섯째、신도의 작은 소그룹이 직업상 정치상 또는 기타 다른 이유로 신자공동체와 떨어져서 이산(離散)적 생활을 하지않을 수 없을 경우 종신부제의 사목적 투입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僻地公所와 지도자문제

여섯째 농어촌 본당에 있어서 벽촌에 있는 공소 신도를 위하여 공소공동체의 참 지도자로서이 부제양성이 시급하며 그 사목 활동방법의 다양성에 비추어 농어촌 지대의 기초공동체에서의 종신부제직의 도입이야 말로 긴요하다고 하지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이미 공소회장을 『비록 신품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신부의 직분을 준행하는 자이기에 그 본당신부의 오른팔이 될 뿐아니라 실 신품 받지않은 신부라해도 가하고 반(半)신부라 하여도 가하도다』라고 (1917년 경향잡지) 규정하였듯이 성직자적인 견해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종신부제라고 일컫는 그것과 똑같은 직책을 공소회장은 수행하고 있었다. 이 회장제도는 1900년대 초기에 교회가 어느정도 안정단계에 처하게되자 더욱 정착되는 모습을 보이였다. 하여 1920년초에 한국교회에 회장제도가 정착되어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전까지는 그대로 큰 변동이 없이 유지되어 우리교회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음을 누구도 부인못할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반신부라고 할 정도로 훌륭히 사목적 활동을 위임하였던 역사적 경험에서 보더라도 농어촌의 벽촌공소에 부제를 양성하여 종신부제직을 현실화 하는데에 사목적 장애가 있을것 같지않다.

진정 이땅에 교회를 세워 2백년이라는 짧지않는 기간동안 복음의 씨를 키워온 구세사적 시점에서 오늘날의 이 나라의 모든 하느님의 백성은 교회사적 체험을 되새기면서 우리선조들이 훌륭히 수행해냈던 거룩한 직무인 반신부적 역할을 종신부제라는 형태로 부흥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것이다.(계속)

양한모·크리스찬사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