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죽음의 압록강 - 초대 주한교황사절 방 주교의 최후] 1. 결단의 순간 “나는 남겠소”

입력일 2011-05-02 수정일 2011-05-02 발행일 1980-12-14 제 1234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다른 회원들에겐 피신재촉
예리한 눈빛과 자상한 모습-유우머 넘쳐
운명 같이하기로 한 비서신부의 손 꼭잡아
6ㆍ25소식에” 드디어 오고 말았군”
서울 떠나는 수많은 피난민 뒤로하고 서울 향해 발걸음 옮겨
지난 11월 27일 오전 11시 메리놀전교회본부에서는 초대 주한교황사절 故 방 주교의 서거 30주기를 맞아 1947년 초대교황사절로 임명된후 6.25사변의 와중에서 공산군에게 끌려 「죽음의 행진」의 뼈아픈 고통을 안고 압록강변 수용소에서 장한 최후를 마친 방 주교의 순교기를 메리놀회 한국지부의 협조로 연재, 소개키로한다.<편집자>

한대의 붉은색 소형지프가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뿌연먼지를 풍기며서 울주한 교황사절관의 좁은 차도를 빙돌아 급정거했다. 자동차의 고르지 못한 엔진소리가 채 멎기도전에 메리놀의 한국지부장이며 가톨릭구제회 책임자인 죠지 캐롤 신부가 차에서 급히 뛰어내려 사절관 현관문을 쾅쾅 두들겼다.

『북괴군이 오늘 새벽 4세에 38선을 넘었습니다』호리호안 체구에 흰머리칼. 키가작은 윌림엄 부스 신부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는 숨을 헐떡이며 이렇게 내뱉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주교님께서 지금막 아침식사를 하고 계십시오. 가서 주교님께 직접 말씀드리는것이 좋겠군요』부스 신부는 그를 안으로 맞았다.

두사람은 식당이있는 건물뒷쪽으로 급히 걸어갔다. 식당 테이블에는 방빠트리치오 주교(Byrneㆍ메리놀회ㆍ초대주한 교황사절)가 앉아있었다. 그는 안경너머로 유우머가 넘치는 예리한눈과 자상한 모습에 허리가약간 구부정한 키큰분이었다. 방주교는 캐롤 신부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라움을 금치못하면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저는 신부님이 군인들을 위한 미사를 드리러「사빈고」공군기지에 가신줄로 알고 있었는데요』방주교는 캐롤 신부를 응시하면서 질문이라기 보다는 확인하는 어조라 말했다.

『네. 그랬읍니다』캐롤 신부는 대답했다.

『그러나 군인들은 소환되어 가버렸읍니다. 거대한 공산군이 현재 서울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읍니다』

『드디어 오고 말았군!』방주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북괴군은 지금 어디에 와있읍니까?』

『아마 38선이남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것같읍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풍문이나 돌고있어 어느것하나 확실치는 않읍니다』 캐롤 신부는 말을 이었다.

『한국정부 관리들은 오늘 외국인들을 철수시킬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들었읍니다.

주교님께서 떠나실 교통편을 준비할까요?』

『저는 떠나지 않읍니다』

테이블에서 일어서면서 방주교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한국의 신자들가 성직자들을 떠날수 없기에 저는그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신부들에게 행한 만행을 알고있는한 우리 메리놀회원들은 모두 떠나도록 하는것이 좋겠군요』

방주교는 마치 자신의 목을 자르는듯한 몸짓을 해보였다.

『방문객이 있으면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군』하며 주교는 식당을 나와 자기집무실로 향했다.

두신부는 책상서랍들이 열러지고 각종 서류들이 찢겨지는 소리를 들었다.

『난 주교님과 함께 남아있겠어요』교황사절 비서이며 친구인 부스 신부의 말이었다.

『상황이 진전되는것을 지켜봅시다』

캐롤 신부는 제의했다.

사태는 대단히 험악하게 전개됐다. 서울에 전해진 모든 보고는 북괴군이 빠른속도로 남하하고 있다는 내용이상으로 침울한 것이었다.

집들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갔다. 길들은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침략군의 수는 6만명으로 전해졌으며 남한경찰은 거의 저항할 힘을 잃고있었다.

북괴공산집단의 남침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에 개시됐다. 다음날 인천에서는 미국인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철수되고 있었다.

목요일에 방주교는 모든잔류 미국인들이 철수를 위해 김포공항에 보고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부스 신부는 캐롤 신부에게로가 그가 주교와 함께 남아있을 것인가를 물었다. 캐롤신부는 동의했다. 잠시후 부스 신부가 주교에게로 돌아가 이 소식을 보고 했을떄 주교는 아무런말도 하지않았다. 단지 방주교는 부스 신부의 손을 꽉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그의 두 눈은 감사로 가득차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방주교는 물었다.

『우리 메리놀회원들은 한국을 떠나길 원하지않읍니다』부스 신부는 말을 계속했다.『그래서 그들은 한국을 떠나지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울을 떠나 후퇴하는 군인들 틈에끼어 남으로 갈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모두 남쪽문에 집결해있읍니다』

『가서 그들을 만나봅시다』방주교는 『언제 우리가 모두 다시 만날수 있을지 누구 알겠읍니까?』하며 자리에 일어섰다.

방주교와 부스 신부는 급히 남쪽문으로 갔다. 거기에서는 주교와 한국서 수년간 그와함께 일해온 사제들간의 작별인사가 분주히 오갔다.

머리위로는 북괴전투기들이 산발적으로 기관총으로 난사하면서 하늘을 질주하고있었다.

한편 수많은 피난민들이 갈기갈기 빠져나오고 있을때 방주교와 부스 신부는 서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