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바뇌의 성모] 하

오기선 신부ㆍ교회사가
입력일 2011-05-02 수정일 2011-05-02 발행일 1980-11-09 제 122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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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발현-성전건립 당부
교황청서도  사실 인정 발표
현재 발현장소엔 경당…수만은 순례객 다녀가
정월20일 금요일 밤 9시경 마리에뜨는 밖에 나가지말라는 어머니의 말에도 아랑곳 없이 드락에 나가 무릎을 끓고 묵주의 기도를 시작했다.

2분쯤후 마리에뜨가 소리를 질렀다.『아! 저길 좀봐』마리에뜨는『당신이 바라는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똑똑하게 말했다. 성모님은『여기에 조그마한 성당을 하나 지어줬으면 한다』고 하시며 가슴위에 포개어 있던 두팔을 수평선으로 펴서 바른손으로 마리에뜨를 축복하면서 천천히 사라졌다. 마리에뜨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옆에 서있던 이들이 아버지와 함께 마리에뜨를 부축, 집안으로 안고 들어갔다. 마리에뜨는 곧 의식을 되찾았으나 다시 포근한 잠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정월 21일부터 2월 11일까지 마리에뜨는 매일 저녁 7시만 되면 뜨락 바로 그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가끔 혹한이 엄습해도 그는 끈질기게 기도를 계속했다.

그동안의 나날이 괴로왔지만 마리에뜨는 그래도『그분은 꼭 다시 오실거라』고 믿었다.

이윽고 2월 11일 토요일이 되었다. 이날도 마리에뜨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뜨락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묵주기도를 두번째 계속하다가 마리에뜨는 저도 모르게 벌떡일어났다. 그리고 뜨락밖에 있는 목책 밖으로 나가 옹달샘으로 달려가 거기에 무릎을 꿇었다. 그전에 무릎을 꿇었던 바로 그자리에…

길이 비스듬히 셩사진 곳에 이르러 마리에뜨는 두무릎을 꿇고 비스듬히 몸을 꾸부린채 옹달샘속에 손을 담구었다. 그리고는 정성스레 묵주에 달린 십자가로 성호를 긋자. 바로 그때 성모님은『고통을 덜어주려고 나는 여기 왔다. 잘있거라!』하시고는 사라졌다.

그후 계속 소식이 두절됐던 성모님은 2월 15일 다시오셨다. 마리에뜨가 하늘을 바라보고 계신 성모마리아께『성모어머님! 우리본당 신부님께서 무슨 확실한 징표를 보여달라고 청하라고 부탁하셨읍니다』고 하자 성모님은『나를 믿어라. 나도 너를 믿겠다』고 하시며 마리에뜨에게 하나의 비밀을 말씀해주시고 비밀에 대한 침묵을 당부했다.

성모님은 떠나시면서『많이 기도해라 또 볼때까지 잘있거라』하셨다.

2월 20일 월요일이 다가왔다. 그날은 눈이내렸고 그래서 몹시 추웠다. 이날도 마리에뜨는 묵주기도를 올리며 뜨락에 무릎을 꿇었다. 기도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순간 성모님이 또 나타나셔서 마리에뜨를 옹달샘으로 인도했다. 같은 자리에 무릎을 꿇은 마리에뜨에게 성모님은 반갑게 미소를 지으면서『내 사랑하는 아이야, 많이 기도하여라』하시고는 미소를 거두고『잘있거라』하시며 떠나셨다. 3월 2일 목요일, 억수같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리에뜨가 묵주기도를 세꾸러미째 바치자 이상하게도 비가 뚝 그쳤다. 하늘은 청정하고 별들은 또렷이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마이에뜨는 두팔을 벌리고는 아무말도 아니한다. 성모님이 여덟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발현하신것이다. 근엄한 미소도 짓지않으시고『나는 구세주의 모친이고 또 천주의 모친이다』하시는 성모님의 얼굴에 슬픈기색이 얼핏감돌았다. 마지막으로 성모님은『너는 많이 많이 기도해야한다. 그러면 잘있거라』하시며 마리에뜨에게 두손을 얹어주시고는 십자가를 그으며 강복을 주시고 떠나셨다.

이렇게 마리에뜨 베고에게 성모님은 1월 15일ㆍ18일ㆍ19일ㆍ20일ㆍ2월 11일ㆍ15일ㆍ20일ㆍ3월 2일 여덟번 발현하셨다. 「리에주」교구장 겔호프 주교는 1942년과 1947년 두번에 걸쳐 교회법에 의거, 엄밀한조사를 했다. 그리고는 1949년 8월 22일 여덜번의 성모발현을 인정 교황청에 보고했고 교황청에서도 사실임을 공식으로 인정 발표했다. 우리가 바로 그 옹달샘에 가서 물을 더 마시고 돌아서니 옹달샘 바로 맞은편 길 옆에 이 사실을 공식 인정한 겔호프 주교의 초상이 동판으로 부조돼있었고 그 아래에『이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하고 발표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또한 성모님이 여덟번 발현한 그 장소에는 소박한 경당이 지어져있었고 벽에는 성모님이 마리에뜨에게 발현,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성화가 벽을 채우고 있었다. 그 앞에는 제대가 있었고 제대 바로 앞바닥에는『바로 이 자리에 성모님이 발현하시고 두손을 가슴에 포개어 말씀하셨다』라고 라띤어로 쓰여진 사각형모자이크가 있었다. 우리는 9월 2일 오전 9시 그곳에서 한국말로 미사를 봉헌하고 그자리에 무릎을 꿇고『성모님의 모든 덕행과 신심을 속속들이 내려주소서』하고 기도드렸다. 가슴이 뭉클해져옴을 어쩔수가 없었다.

지금도 마리에뜨의 초라한 농가가 그대로 있고 성모님을 기다리기위해 내다보던 창문도 그대로 남았었다. 그리고 그집은 이곳 경당 지도신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장소에 세워진 제대 양편에는 이곳에서 기도하고 옹달샘물을 마시고 발라 즉각 나은 병자들이 감사의 뜻으로 송염장(松葉杖)을 바치고 갔는데 나는 그 수를 몇번이나 세어보다가 하도 많아서 그만두고 말았다.

또한 성당내부와 마리에뜨의 집벽에는 감사석판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더 오래 묵었으면 좋으련만 9월 13일「파띠마」이 국제적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섭섭함을 뒤로 하고 벨지움의 수도「브뤼셀」로 향했다.

(벨지움「부루셀」에서)

오기선 신부ㆍ교회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