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2백만 신자화를 위한 제언 - 한국교회 2백주년을 앞두고] 1. 소극적 선교 태도의 탈피 필요성

정옥동ㆍ레지오 마리애 서울세나뚜스 의장
입력일 2011-05-02 수정일 2011-05-02 발행일 1980-10-19 제 122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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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ㆍ능력 총동원, 선교의 양ㆍ질적증가 병행토록
신자률 총인구의 3.3% - 2백년동안 6.~90% 신자화한 나라도
순교선열들의 피 헛되지 않게 선교자세 쇄신을
서울ㆍ광주세나뚜스는 지난해7월 서울서 모임을 갖고 1984년 한국교회 2백주년을 맞아 2백만신자화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한바 있다. 이에따라 레지오 마리애는 향후 5개년 민족복음화 활동계획을 수립, 추진해오고있다. 전교의 달을 맞아 2백만신자화운동을 추진하고있는 서울 세나뚜스 정옥동 의장을 통해 2백만 신자화률 향한 제언을 들어보기로 한다.

憲敎는 우리임무

불원간 교회창립 2백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여러가지 행사가 거론되고 가슴을 부풀게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행사든지 복음선포와 무관할때는 무가치하며 따라서 어떠한 행사가 가장 값있는 것이냐 하는 것은 어떤 행사가 선교에 가장 효과있느냐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존재이유는 복음선포에 있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도를 세우심도 이 복음선포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는『나그네 길을 걷고 있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선교2항)고 했으며 교회헌장에서도 『성부께서 성자를 보내신것처럼 성자는 보내신것처럼 성자는 사도들을 보내시며 너희는 가서 만백성을 가르치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다 지키도록 가르치라…하시었다. 교회는 구원의 진리를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이장엄한 명령을 사도들한테서 받았고 세상끝까지 이 명령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17항) 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물론 성직자도 평신자도 그 존재의미를 상실하고 선교하면 할수록 성직자다운 성직자, 신자다운 신자가 됨은 자명한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교회2백년동안 과연 만족할만한 복음선포를 하였는가를 먼저 반성해보고 그다음 우리나라에 있어서 복음선포의 특수한 의의를 논한다음 마지막으로 2백만 신자화를 위한 복음선포의 방안을 제시코자한다.

소극적 자세 反省을

흔히 우리나라에는 선교가 잘 된다고 좋아들한다. 그러나 과연 선교가 잘되며 잘되어 온것일까?

우선 전체적인 숫자로서 말해보자. 교회창립 2백주년을 맞이하면서 신자수는 총인구의 3.3%에 불과한 1백24만이다. 이를 두고 2백년동안에 선교를 잘했다고 만족할것인가? 하느님께서 열심히 선교하였다고 상을 주시겠는가?

우리 순교자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보낼것인가, 아니면 순교자의 피를 헛되게 했다고 노할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보아야겠다. 혹시 우리는 우리순교 선열들앞에 다리를 걷어 올리고 종아리를 맞아야 하지 않을지 냉정히 반성하여 2백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정신자세를 가다듬어야 하겠다. 시대와 사회여건이 다르지만 2백년안에 국민의 30%, 60%, 90%를 신자로 만든 나라들이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것이다.

로마는 313년 콘스탄틴황제의 밀라노 칙령이 내리기까지 네로, 도미티아누스뜨라야누스 등 수많은 황제의 10회에 걸친 모진 박해속에서도 한사람을 죽이면 두명이 늘어나고, 두명을 죽이면 네명이 늘어날 정도로, 신자는 늘어났으며 197년에 뗄뚤리아누스는 황제에게 신자들이 물러가면 호령할 백성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할만큼 그수효는 많았으며 394년에는 「로마」시에서 이교를 전페시킨다는 법령이 통과될 정도였다. 스페인 전영역에 그리스도를 믿게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독일에서도 2세기 후반에 선교되어 4세기에는 이교도의 신전이 파괴될 정도였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승훈 수세후 10년에 4천명이나되는 열심한 신자가 있었고 주문무 신부 입국5년만에 4천명이던 신자가 1만명이 되었다.

그다음 1975년 이후 근래에와서 일년에 4~5만의 신자가 증가하는 것을 두고 선교가 잘된다고 할것인가? 과거15년간 인구증가율이 2.1%이니 신자의 자연증가율로 따져도 1년에 2만명은 증가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실제 입교자수는 1년에 2~3만명 증가한 셈이다.

일년에 인구증가수가 70만이나 되는데 2~3만명, 즉 증가된 인구의 3~4%, 총인구의 0.1%도 안되는 선교율이다. 이러한 거북이 걸음으로 어느 천년에 국민의 30%나 60%를 신자화 할 수 있단말인가? 더구나 냉담자수는 신자증가수의 평균 3배수는 신자증가수의 평균3배에 이른다. 예컨대 1979년 신자1백24만6천2백68명중 전년도보다 증가수5만6천4백5명에 냉담자수는 16만32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개신교신자 증가율과 비교해볼 때 선교1백년에 4백만이나 되는데 우린 이제 겨우 1백만을 넘어섰다. 근간 선교율을 비교해볼 때 개신교와 우리사이에 점점 간격이 벌어지고 우리교회가 따라가지 못하고있는 형편이다.

이런식으로 선교한다면 1천9백년대에는 인구 5천만에 신자수는 겨우2백만이 될까말까할 것이고 신자비율은 겨우 국민의 4%내외가 될것이다.

이래도 좋을것인가? 이래도 선교가 잘된다고 기고만장할것인가? 파스칼이 말하기를 사람은 두 종류가 있는데 죄인이라고 자처하는 의인과,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되인이라고 했다. 죄인중에도 죄인은, 죄중에 있으면서 죄를 모르는자 이듯이 선교를 잘하지 못하면서 잘하는것으로 착각하고 있는것만큼 큰 잘못은 없다. 혹시 우리는 그러한 꿈속에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대오각성하여 하루바삐 망상에서 깨어나 선교에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2백살이나되는 한국교회가 취할 태도이다.

체념은 禁物

흔히 신자의 양만 늘린다고 되느냐, 질을 높여야지 하는 얘기가있지만 질이 높으면 양이 많아지게 마련이고 신자수가 많아지면 질도높아질것이다. 얼마나 질이 낮았으면 이정도밖에 신자가 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도 필요하다. 질의척도는 양이라고 할수없을까? 아무튼 우리의 2백만 신자화활동은 얼렁뚱땅 신자수만 많게 하자는 것이아니다. 양을 늘리면서 질을 높이고, 질을 높이면서 양을 늘리자는 윤동이다. 장작불도 한가치만으로는 잘타지않지만 많이 모이면 물에젖은 것도 잘타듯이 신자수가 많아지면 냉담자의 회개율도 높아질것이고 신자의 수준도 향상될 것이며 열심한 성직자 수도자도 늘어날것이다.

또 어떤이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웃거나 반신반의 하기도한다. 물론 어렵다. 그러나 황당무계한 공상도아니요, 더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이 있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제자들이 고물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듯이(마태8ㆍ25) 우리도 기도로써 예수님을 깨워일으켜야 할것이다. 그리고 빨의 기적에서 보듯이 우리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선뜻내어놓은 소년처럼(요한6ㆍ9)우리가 가진시간, 지력 정력 재력을 바치면되는 것이다. 빵의 기적에서 소년이가진 것을 아까와 예수님 앞에 내어놓기를 거절했다면 5천명을 먹이고 남는 빵의 기적이 일어났을것인가 우리도 내조그만 힘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고 내가 가진 것을 숨기지 말고 내놓아야 한다.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돈이있는 사람은 돈을, 특수기술이 있는 사람은 그기술을, 각자 나름대로 가진 것을 내놓아야한다. 이렇게 우리가 복음전파에 역량을 쏟고 핍진할 때, 하느님께서 개입하실것이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복음전파에 역량을 쏟고 핍진할 때, 하느님께서 개입하실것이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다음엔 2백만 아니라 2천만도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불가능하다고 체념하는 것만큼 위험한 생각은 없다 내일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우선 우리의 지혜와 능력과 조직을 선교를 위해 총동원하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것이다. <계속>

정옥동ㆍ레지오 마리애 서울세나뚜스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