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수도서원 50주의 회고 - 지 에른스트 신부] 4

입력일 2011-05-02 수정일 2011-05-02 발행일 1980-08-31 제 121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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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 해도 역시 신부로 선교사의 길 걸을터”
이제 누가 나의 서원생활 50년, 아니 신학교입학부터 치자면 57년,이 세월에 대한 소감이 어떠한가 묻는다면 나의 답은 무엇일까?

가로 세로 2.6m, 3.2m짜리 단칸세방에서 3개월간 17명이 함께 지내야했던 시절의 일들은 결코 흥미진지했던 것이라고는 도저히 말할수 없는 것이도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위험한 낭떠러지를 헤매면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면서도 나무를 찍어야했던 때도 마찬가지다.

그땐 나도 정말 얼마나 심각했던지 어린시절에 알고있던 농담도 유행가도 부를 수 없었다. 이 모든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느 형제의 말 그래로『참으로 이 신앙의 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서로돕고 서로 사랑할수 있는 이 신앙의 힘』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또하나의 작은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치고자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본당은 신자수 4천2백여 명에 공소가 23개나 있는 곳이었다. 세상 어느 본당에서나 마찬가지이듯이 본당신부의 삶을 좀더 어렵게 해주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다른 형제가 함께 와서 고백성사와 미사성제를 보좌해주곤 하지만 본당신부는 그런날에도 강론을 3번씩이나 해야하는 것이 상례이다.

어떤 주일에는 그나마 보좌도 없이 혼자서 미사3대, 강론3번, 고백성사 등을 치러야 했다. 마침내 일이 어느정도 끝날때쯤이면 이미 늦은 시간에다 뼈속까지 시장기를 느끼게 된다. 마지막 고백자에게 죄를 사해주고 나오다보면 성당 마당에서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마지막 사람에게까지 인사를 다해주고 마지막순간까지 남아서 귀찮게 하는 이들까지도 다 보내놓고 난 다음에 나는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제대앞에 꿇어앉아 크게 기도한다.『사랑하는 주님, 불교도들이 주장하는 윤희설이(없지만) 있어서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아는 절대로 다시 신부나 수사가 되지않겠다고 선교사도 되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봐서 너무나 잘아니까요』라고. 그후 고요하게 약10초가 지난 다음 나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하고 다시 주님께『사랑하올 주님,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내가 다시 태어날수 있다해도 이 모든 것을 아니까 나는 다시 수도원에 갈것이고 신부가 되어 선교사로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습니까?』하고 아뢰었다.

오늘도 나는 꼭 그때와 같이 생각한다. 누구나 두푼어치 만큼의 좋은 의지를 가진 자라면 주님은 그를 꼭 견뎌내게 도와주실 것이다.

사랑하올 주임이시여, 나를 50년 이상이나 견뎌내게 해주신 이 기쁨과 행복을 당신 은혜와 당신 사랑을 감사하나이다. 50년동안에 만남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이렇게 긴세월동안을 행복하게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은혜를 천주여, 진심으로 감사하나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