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예수 성심 공경 어제와 오늘

심상태 신부ㆍ신학박사ㆍ가톨릭대 교수
입력일 2011-05-02 수정일 2011-05-02 발행일 1980-06-29 제 121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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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사랑에 기도ㆍ희생ㆍ보속 등으로 보답해야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신심열도 냉각 - 현대인에 비합리적으로 보여진 탓 
소멸위험-과감한 신학적 고찰·신심형식 바꿀때
인간향한 그리스도의 인간적·신인적 사랑 함께 공경해
6월은 예수성심성월이다. 이달은 첫 금요일은 물론 성령강림 대축일 후 두 번째 주간에 맞는 금요일로 정해진 예수성심 대축일을 중심으로 미사와 성시간 예절을 비롯하여 각종 기도회와 행사를 통하여 예수성심을 각별하게 공경하는 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인류의 구원자로 믿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인류를 사랑하여 육화되고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십자가에 처형된 구세주를 공경하며 신앙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생활을 하도록 신앙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예수성심 공경은 고금을 막론하고 신앙생활에서 요청되는 중요한 신심 행우이다. 그런데 오늘날엔 이 신심 행위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예수성심성월을 무심히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수 聖心月論壇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은 이미 교부 시대에도 사적인 규모와 형태로 존속하고 있었다. 이 당시 예수의 마음 곧 심장은 생명의 샘、생명의 원천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늑백의 상처로부터 출생하였다는 가르침이 유래하며、성사의 풍요로움은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흐르는 생명수의 원천 속에 그 연원을 둔다는 통찰이 널리 퍼져 있었다.

예수성심 공경이 공적으로 전례축제화 한 것은 중세 이래의 일이었다. 예수 성심 공경이 오늘날 전개되는 권장되기까지는 성녀 마르가리따 마리아 알라꼭(1647~1690)에게 발생했던 사제 계시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고 분수 있다.

프랑스의 한 수도회인 「방문회」에 속했던 수녀 마르가리따 마리아 알라꼭에게 1673년 성요한사도축일부터 일련의 예수의 발현이 있었다. 발현한 예수는 자신의 마음 즉 심장이 인간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매월 첫 금요일 당신의 마음을 공경하는 날로 정하고 이러한 지향으로 성시간을 바칠 것을 요청하였다. 이 예수 발현의 절정은 1675년 성체축일 8부후 금요일에 일어났다.

이때 예수는 마르가리따 성녀에게 역시 자신의 심장을 열어 보이면서 인간들로부터 배신당하는 당신 사랑의 마음을 위로하는 기도와 보속을 바치며 예수성심 축일을 제정하여 모든 교회에서 성대하게 기념하라는 위탁을 발했다고 한다.

18세기초 프랑스의 민중들 사이에서는 예수성심 공경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공식 교회는 이 축일과 신심행사에 관련된 전례상의 문제를 취급하는데 극히 신중을 기하였다. 1765년에 교황 클레멘스 8세는 폴란드 주교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제한된 지역 안에서 예수성심 공경 지향의 미사와 기도문을 바칠 것을 허용하였다. 1856년에야 교황 삐오 9세가 예수성심을 전 세계 교회에서 공경할 것을 지시하고 예수성심 축일을 제정하였다.1899년 교황 레오 13세는 예수성심 축일의 전례상의 등급을 높이는 한편 세계를 예수성심께 봉헌하였다. 교황 삐오 11세는 1928년에 반포한 회칙「극히 자비로운 구원자」에서 예수성심 축일의 위한 기도문과 취지를 규정하고 세계의 예수성심 봉헌 예절을 매년 그리스도완 축일에 갱신할 것을 지시하였다. 1956년 교황 삐오 12세는 예수성심 축일 제정 1백주년을 맞아 이를 기리는 회칙「하우리에띠스 아콰스」를 반포하였다.

예수 성심 공경은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1백50여 년간 가톨릭 교회 안에서 열렬하게 이루어졌다.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지향으로 봉헌되는 미사와 성시간을 비롯한 신심행사가 세계 도처에서 거행되었으며, 예수성심을 주보로 하는 수많은 남녀 수도회와 성직자、그리고 평신도 신심 단체들이 창설되어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분기점으로 해서 예수성심 공경의 열도는 급격히 냉각된 느낌이다. 이 공의회는 반포한 16개의 공식 문헌에서 예수 성심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공의회가 성모 공경은 물론 성인 공경에 대해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레오 13세, 삐오 11세와 12세 교황들의 회칙들이 예수성심에 보여준 관심과 열도에 비하여 이 공의회의 침묵은 우연한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신자들의 신심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일반 평신도들은 물론 성직자나 수도자들도 예수 성심성월의 의미와 중요성을 별로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늘도 매월 첫 금요일이면 본당에서나 수도원에서는「첫첨례 6」을 지내는 의미로 예수 성심 공경 지향의 미사가 봉헌되고, 이 미사에는 평일보다는 다소 많은 신자들이 참여하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남녀 수도회나 신학교에서는 매월 첫 금요일 미사 봉헌에 앞서 성시를 가지거나 마르가리따 성녀에게 전해진 지향대로, 인간을 끝없이 사랑하시나 인간으로 부터 배온 망덕과 무시를 당하는 예수의 성심을 위로하며 보속의 정신으로 기도를 바치고는 있다. 하지만 이 성월에는 성모성월이나 복자성월 또는 위령성월에서처럼 다수 신자들의 열렬한 참석 하에 성대하게 거행되는 신심행사가 개최되지 않음은 물론이요, 다른 성월을 맞으면서 보여주는 신자들의 관심의 강도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과학과 기계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산업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과학과 기계 기술의 발달 이면에는 합리주의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도 이 시대를 지배하는 실증적이며 타산적인 합리주의의 심성에 젖어 들고 있다. 이런 상황 조건 하에서<태양보다 빛나고 수정같이 투명하며 눈에 띄는 상처를 지니고 가시로 둘러싸인 가운데 불꽃이 이는>모습을 한 예수의 심장을 특별히 공경한다는 이신 심이 현대인들에게 마디 비합리적이고 전시대적인 신심 행위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과거에 있었던 것처럼 열렬한 성심 상본 공경과 같은 전통적인 신심 형식이 더 이상 신자들에게서 발견될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예수성심 공경은 오늘날 전례와 교리면 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는 셈이다.

이렇게 소멸의 위험을 안고 있는 이 신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과감한 신학적 성찰과 이에 입각한 신심 형식의 방향전환이 요청된다고 믿는다.

앞으로는 예수성심 공경을 한 개인의 사적 발현(이를테면 성녀 마르가리따의 발현 체험) 내용과 지나치게 긴밀히 연결시키지 말고 일반적인 교리 전통속에서 그 타당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보편적인 교회의 신심 행위를 특정 시대에 살았던 한 개인에게 있었던 발현 사건에 지나치게 의존시킬 때, 판이하게 변화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신앙인들로부터 보편적인 호응을 얻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예수성심 공경이 인격체로서의 전인(全人)인 예수로부터 분리된 신체 기관의 일부인 심장을 따로 공경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통적 예수성심 공경이 고립된 신체 기관의 일부인 심장이 아니라、살아 있으며 천주 성자 위격과 일치된 심장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신자들의 관심을 인격 존재로서의 예수에게 보다. 신체 기관의 일부로서의 심장에로 집중시키는 인상을 자아내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공경 입장은 심장과 인격적 사랑의 본원적 단일성에 주목하지 않고, 심장이 사랑을 시사한다는 점을 후에 추가하는데에 머문다. 이러한 유형의 예수성심 공경은 사람들에게서 반발을 받을 것이다. 신체 기관으로서의 심장은 단순히 신체적 개념이 아니라 정신과 육신 모두를 포옹하는 전인적 개념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 곧 심장은 신체 기관으로서의 심장 근육이 아니라 한 인간의 전인적 행위에 그 나름의 고유한 성격을 부여하고 이 전인적 행위의 원천이 되는 중심을 의미한다.

마음은 육신과 영혼이 하나로 결합된 인격체의 중심기관이므로 예수성심 공경의 차원에서의 이 예수의 성심은 구세사적 의미에서의 중신 기관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실재 상징으로서의 신체적 마음을 보면서 그분의 인격을 공경하는 것이 예수성심 공경의 취지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의 심장을 공경하는 것은 이 신심 행위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이라는 장점을 지니기는 한다.

예수의 심장은 우리를 강생의 실재에로 이끈다. 살아 있으며 신체적인 심장은 강생의 신비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신심에서 공경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사랑뿐만 아니라 신인적(神人的) 사랑이다. 그리고 이 신인적 사랑은 인간들에 의해 배척당하고 수모를 입어 상처받는다는 사실도 아울러 강조된다.

신앙인들은 예수의 사랑에 참여토록 자신을 주께 봉헌하고 주께서 세계의 구원을 위해 성부께 바치는 속죄에 참여하는 보속의 정신을 지니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뒤따르려는 결의를 예수성심 공경을 통해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생활의 쇄신 내지 심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예수 성신 공경 신심이 쇠퇴한 것은 유감이다.

십자가에 처형되어 참으로 심장이 찔리기까지 아낌없이 자신을 바친 그리스도를 뒤따라야 할 신앙인 모두가 전통적인 예수성심 공경 형식의 답습이 아니라 이 신심의 올바른 의미와 그중 요성을 바로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심상태 신부ㆍ신학박사ㆍ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