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복음화의 현장] 3. 화곡동본당편

입력일 2011-05-02 수정일 2011-05-02 발행일 1980-04-27 제 1202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친교의 바탕위에 신앙공동체 구현
본당의 외적 비대화와 병행、내실에 주력
전셋방서 출발、천막ㆍ콘센트전전 1년만에 성전 건립-새 본당 분가 
9개 지역 조직 갖춘 부인회는 모성애 살려 이웃사랑 실천에 앞장
내일에의 꿈을 안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샐러리맨들이 내짐 마련의 감격 속에 찾아드는 禾谷洞- 이 샐러리맨들이 교회인화곡동본당(주임ㆍ최용록 신부)은 지체를 자처하는 신자들의 겸허와 협력이 이룬 친교의 바탕위에 생활하는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두드러지게 뛰어난 사랑은 없다 』 는 이 본당 사목위원의 솔직하고 평범한 소감은 자신의 역할에 따라 스스로 봉사하는 관절로써 굳게 연결된 화곡동본당 신자들이 높은 지체의식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지난달 12일로 본당설정 11주년을 맞은 화곡동본당은 화곡본동과 화곡1ㆍ2동 신월1동 4천7백여 명의 신자수를 가진 大型급 본당으로 성장했다. 아직도 허허벌관위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던 개척자들의 의지와 강한 형제의식이 숨쉬고 있는 화곡동본당의 탄생과 성장은 70년대 두드러지게 성장한 대도시 외곽지대본당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준 전형적인 케이스.

도시팽창과 더불어 봉급생활자들의 주택마련이 어려워짐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획기적인 도시계획정책을 마련 , 66년 11월 서울시의 남서쪽 광활한 10만평의 대지위에 대단위 주택단지를 조성했다. 이 신천지의 주인이된 주민들은 회사원ㆍ교수ㆍ교사는 봉급생활자로 이른바 中産層을 이루는 지성인들이었다.

이같이 치밀한 도시계획에 따라 조성된 화곡동 국민주택단지에는 가장 의욕이 넘치는 동일한 계층의 세대가 모였기 때문에 이곳은 서울의 어느 지역보다 지역주민들의 연대의식이 강한 곳으로 앞서가는 지역사회가 되었던 것.

그런데 이 공감대의 영역 안에서 신자들은 더욱 강한 형제의식을 갖게 됐고 신자들의 집이 곧 공소가 되는 가운데 68년 9월에는 정식으로 양화진본당 공소가 설립되는 기쁨을 맛보게 됐다. 당시 신자들이 열렬한 열망과 수차례에 걸친 탄원(?) 끝에 공소설립 6개월 만에 화곡동에는 김형식 신부를 초대주임신부로, 본당부지조차 없는 본당이 발족됐다.

신자들의 집과 똑같은 국민주택을 빌어 전세방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한 김형식 신부를 구심점으로 하나가된 화곡동신자들은 국민주택의 마루에서 천막ㆍ콘서트로 이어지는 엉성한 성당의 형태에는 아랑곳없이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키워갔다. 교구가 3백97평의 대지를 마련해줬지만 99%가 봉급생활자로 이제 겨우 내 집을 마련한 화곡동본당 신자들에게 성전건립이란 과제는 너무도 풀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신자들은 자신들의 월급 한 달분을 성전건립기금으로 봉헌하고 자신들이 능력에 맞도록 단계적으로 장기적인 성전건립계획을 마련하는 슬기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본당설정후 9년 동안 착실하게 성당과 사제관ㆍ교육관ㆍ수녀원등 본당으로서의 시설을 완비한 화곡동본당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신자수를 감당할 수 없어 78년 아파트 밀집지역에 발산동본당을 분가시켰다.

화곡동본당 신자들은 2대주임 김정진 신부 재임시기인 78년도 발산동본당 분가 때에도 4천만 원의 신축기금으로 발산동성당 신축에 참가、천막교회에서 싹튼 형제적 사랑의 나눔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황무지에서 서울대교구 18번째 본당으로 급성장한 화곡동본당의 성장은 화곡동지역 개발품에 의한 당연할 결과라고 분수도 있지만 처음 이주하는 각 가정마다 「화곡동에 입주하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라는 팸플릿을 배포하여 기성신자와 예비신자를 발굴해낸 화곡동본당 사목위원들의 숨은 노력이 그 밑거름이 돼왔다 .

그러나 본당의 비대화와 함께 대부분의 남성 신자들이 직장의 중견사원으로 직무에 쫓겨 조직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문제점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화곡동본당은 25개의 반조직, 레지오마리에, 성서모임 등으로 친교의 바탕이 확고해진 부인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부인회」 은 조직했다. 현재 1백60여 명의 실회원을 확보한 부인회는 타본당의 부인회와 달리 독자적인 9개의 지역조직을 갖고 활동을 펴고 있는데 모성의 무한한 능력을 계발, 교회와 지역사회에 그 사람을 나눌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진 단체로서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주일미사중 제1ㆍ제2독서를 부부가 나눠읽는 등 부부중심의 사고가 두드러진 화곡동본당의 풍토 속에 여성의 역할을 확대시켜 나가는데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이 본당주임 최용록 신부는 『구역별 신자간의 친교가 화곡동본당신자들의 가장 큰 저력』 이라고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발산동본당 분가 불과 1년여 만에 새로운 본당 신설이 불가피할 만큼 급성장을 이룩한 화곡동본당은 이제 안정권의 문턱에서 내실을 다지고 신자공동체의 일체감을 더욱 강화시키는 숙제를 안고 있다는 총회장 강영순(니고나오)씨는 그러기위해서는 초대교회와 천막교회신자들의 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의 끊임없는 의욕과 열정으로 알찬 성장을 주도해온 화곡동본당신자들은 사랑 안에서 자신을 건설하는 지체로서、자신들이 처한 장소와 환경속에 교회를 현존케하고 활동케하는 크리스천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오늘도 남모르게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