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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임종에 대한 질문과 해답] 18. 남은 말

퀴불러로쓰 저·이인복 역·문학박사·숙대교수·문학평론가
입력일 2011-05-02 수정일 2011-05-02 발행일 1980-03-16 제 119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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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에 충실ㆍ서로 사랑하는 삶돼야
일종환자들 苦惱거쳐 현재에 집중?충만한삶 영위
충실한 살의評價 追憶만이 父母의 진정한 선물
[문]〓제가 죽음의 병에 걸린 것을 처음 알았을때 저는 저의 미래를 빼앗긴 것을 알았읍니다. 선생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십니까?

[답]〓대부분의 환자들이 죽음의 병에 걸린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고통과 고뇌를 느끼고 미래가 박탈당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이것은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며 보통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있는 현재에 주의를 집중하여 보다 많은 인식을 가지고, 보다 깊게, 보다 집약적으로 나날을 삽니다. 많고 긴 미래의 날들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몇년전만해도 저 역시 마찬가지로 반응했을 것입니다.

[문]〓선생님께선 불멸하리라고 깊이 믿고 계십니까?

[답]〓우리의 육신은 죽으나 정신 혹은 영혼은 불멸이라고 믿습니다.

[문]〓선생님의 그 사업은 어떻게 자금조달이 되었읍니까? 죽음과 임종에 대한 봉사가 환자의 금전적 부담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늘 생각하십니까?

[답]〓저의 사업은 기금없이 진행됩니다. 저는 그들의 재산상태가 어떤지를 불문하고 죽어가는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준적이 전혀없읍니다. 저는 미국 캐나다 구라파를 다니며 연구집회와 강연회를 가지면서 강연료를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들을 무료로 돌 볼 수 있읍니다. 저는 한번도 회사금이나 또는 어디로부터 어떠한 돈도 받은 적이 없읍니다. 저는 임종환자를 돌보는 것은 성직자가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비용을 부과하는것을 볼 수 없읍니다. 오래끄는 불치병이 미국에서 아주 비용이 많이들기 때문만이 아니고, 임종환자를 돌보는것은 돈으로 지불받을 수 없는 인도주의적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사람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다른 방도를 찾을수 있도록 시간제로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남편이 제일에 보조금을 대주는 것을 원치 않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없는 여자이기에 분명코 큰 도움이 됩니다.

[문]〓선생님께서 치명적인 병에 걸려서 곧 죽게되리라는 것을 자식들에게 어떻게 말해주시겠읍니까?

[답]〓저는 애들을 개별적으로 하나씩 저와 마주 앉히고 제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것을 말한 뒤 그들의 질문에 대해 터놓고 솔직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모든 대답을 해줄것입니다. 우리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서 언제 사망할지 모르므로 그래서 가족에게 준비시킬 시간이 없으므로, 우리는 가정에서 죽음이 언제일어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면서 애들을 키워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생애의 마지막 날인양 알고 그 모든 순간을 함께 즐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충실하게 살았다는 평가와 추억만이 우리가 자식들에게 물려 줄수있는 진실한 선물입니다.

十 이글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연재를 시작하던때에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이 글은 3백50여 항목에 이르는 질문과 해답중에서 70여 항목의 문답을 연재해드린 셈이 됩니다. 고마운 독자들로부터 격려의 말씀도 많이 들었고 신문을 오려서 노트에 부치고 때때로 거듭읽으신다는 편지를 주신 간호원들도 계셨읍니다. 의과대학의 의사선생님 몇분은 친히 서신을 주셔서 제작업에 활기를 넣어주시기도 하셨읍니다. 신부님들로부터 이 책을 빨리 단행본으로 나오게 하라는 격려와 재촉도 받았읍니다 주성모님께 그리고 모든 독자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사물은 잠시도 제모습을 지니지 아니하고 항상 변화하며 사람은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그렇게 목숨을 거두어 대지의 한줌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도 곧 그렇게됩니다. 절대로, 정녕 절대로 죽음의 질서에서 우리만이 예외일 수 없읍니다. 세상에 태어날때 발 하나를 번쩍 치켜들고 거북한 자세로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언제라도 그 치켜올린 다리를 대지에 내려놓고 편한 자세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발을 드는것이 탄생이라면 발을 대지에 내리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완성시키는 삶의 목적은 바로 올바른 죽음이 아닐 수 없읍니다.

인류가 극복해내지 못한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창조와 죽음에서의 탈피뿐입니다. 이것만은 하느님의 소관에 있읍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려 일찍 죽으려 해서도 안되고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더 오래 살겠다고 발버둥쳐서도 안됩니다. 내게 주신 생명의 기간동안 참으로 열심히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주성모님을 사랑하면서 살을 완성시켜야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진리인듯 합니다만 가장 성공적인 삶은 부유와 권세와 명예를 누리는데 있는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하느님의 소명에 충실하여 하느님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도와주었느냐는데 있는듯 합니다. 성직자와 수도자와 의사와 간호원이 된다는 것은 바로 보다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돕기위해 사람을돕는 조직과 기구속에 나를 소속시키는 일이라고 봅니다. 죽음이 가까왔건만 죽음이 무서워서 괴로와하는사람들, 영원히 함께 살고싶었건만 나를 남겨둔 채 불의로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때문에 슬퍼하는 사람들, 그분들을 위로하고 돕는일을 저는 하고싶을 뿐입니다. 그러한 괴로움과 슬픔을 너무도 오랫동안 경험한후 주성모님의 은총으로 화평을 얻게된 일에 대하여 저는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릅니다.

이글을 마치면서 저는 이 글의 독자와 저 자신을 위해서 겸손의 덕과 신앙의 빛을 주십사고 슬픔에 잠겨 기도합니다. 7천번 이상의 세미나와 강연을 통해서 임종자를 돕는 문제를 토론하고 드디어는 미국의 베스트 10명의 여성으로 뽑히었던 이 글의 저자 퀴블러 로쓰바 교사가 최근에 이상한 사교(邪敎) 신자로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저서를 쓰고 유례없는 명성을 누리되 겸손과 신앙의 은총이 병행하지 못한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자각하면서 저는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머리숙여 기도합니다. 『퀴블러로쓰를 통하여 좋은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치신 주님! 그분의 교만을 용서하시어 다시 그분을 바른길로 불러주시고 우리들에게는 신앙과 사랑의 은총을 주시어 시험에 빠지지말게 하옵소서』. (끝)

퀴불러로쓰 저·이인복 역·문학박사·숙대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