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죽음과 임종에 대한 질문과 해답] 11. 노후의 문제들

퀴블러로쓰 저, 이인복 역·문학박사·문학평론가
입력일 2011-04-19 수정일 2011-04-19 발행일 1980-01-13 제 1187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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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에 대한 체념이 죽음 생각케해
타인위한 봉사의 기회 부여, 사회의 구성체로 느끼게해야
젊은 날의 일을 노년에도 재적용 - 체념서 수낙으로 유도
사람들은 흔히 죽음이란 나이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친구라고 믿습니다. 이 말은 어떤의미에 있어서는 진실이지만 그러나 「노년」을 『즐겁게 죽는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는 많은 수의 나이많은 환자들은 죽음을 수락하는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의 생애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에서 오는 일종의 체념상태에 있는 것 일 수도 있읍니다.

양로원들은 우리사회에 결핍되어 있는 경로(敬老)정신의 슬픈 반영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아직도 인류사회를 위하여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읍니다. 그들이 할수있는 유일한 분야의 봉사 - 즉 그들의 수십년간 쌓아올린 모든 분야의 지혜와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렸읍니다.

삶이란 주고받는것, 즉 다른사람에게서 받기도하고 또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가끔 놓쳐버리는 것이 바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인생이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문]=죽고싶다고는 말하지만 가까운 시일안에 죽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노인들을 선생님은 어떻게 다루십니까

[답]=당신은 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무가치하게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가능하다면 그들의욕구를 충족시켜 만족을 느끼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문]=항상 진작 죽어버렸으면 좋았겠다고 말은 하지만 노쇠해지셨다는것 이외에 특별한 병이 없어서, 가까운 장래에 돌아가시지도 않을 노인과 더불어 죽음과 임종문제가 가져다 주는 노인들의 공포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이 괜찮습니까?

[답]=그분들이 노쇠하시기전에 우리는 그 문제를 미리 논의하여야 합니다.

[문]=너무 늙고 쇠약하여 『죽었으면 좋겠는데』 한다든지 『죽고 싶어』 라고 말하는 환자에게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답]=우선 그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옆에 앉아 그분의 생활환경에서 무엇이 특별히 그를 괴롭게 하는가를 말하시게합니다. 그러면 그 노인은 그가 너무나 외롭다는 것과 자기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두지않는다는 말을 하실것입니다. 그럴때 나는 그런 노인들을 방문하여 그노인이 아직도 사회의중요한 구성체라는 감정을 인식하시도록 말씀드립니다.

만일 그노인의 문제가 육체적인 불편과 고통이라면 지속적인 치료를 받는가도 살펴보겠읍니다.

만일 노인을 괴롭히는것이 재정적인 것이라면 나는 사회사업가의 도움을 청하겠읍니다. 만일 그분의 문제가 단순히 자기는 일생을 살았고 거기 만족을 느끼고 있으며 이제 살만큼 살아서 더 살아보았자 무의미하고 느끼는 것이라면 그때 비로소 나는 나도 그노인의 말씀에 공감한다고 말하겠읍니다.

[문]=늙고 정신이 혼미해진 노인과는 어떻게 죽음의 문제를 다툴수 있읍니까?

[답]=늙어서 정신이 혼미해진분과는 의미있는 대화를 하기가 매우 힘이듭니다. 그런 환자를위해서 당신이 하실수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및 영신상의 보살핌을 해드리는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그분들이 모를때에는 번번이 그분들에게 당신을 재인식시켜야 합니다. 가령 『메리 수녀가 또 왔어요. 참 화창한 9월 아침이예요. 오늘은 우리 멋진 아침식사를 해요』 등을 말할 수 있읍니다.

그들이 가지고있는 죽음의 개념이나 완결되지 못한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그분들의 정신이 혼미해졌을때는 이미 늦은것입니다.

[문]=노인들의 병동에서도 죽음과 임종에 관해 토론하실수 있으십니까? 환자들이 『나는 살만큼 살았다』 고 말할때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응수하시겠읍니까?

[답]=나는 이렇게 말하겠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이렇게 살아계신 이상, 노인께서 돌아가실때까지 정말로 사는것처럼 살 수 있게끔 삶을 가치있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혹시 없을런지요?』

[문]=노인들에게 나타나는 체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양로원에 계신 노인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드리는게 좋을까요?

[답]=어떤 사람이 나이 들어 필요없는 인간이 되었다고 느낄때,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더이상 쓸모가 없어졌다고 느낄때, 그는 대체로 체념의 상태에 빠집니다. 인생은 이제 의미를 상실하였고 아무런 목적도 없는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그는 진실로 더이상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환자들을 방문하러 오신 성직자로서 당신은 그들과 더불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실 수 있읍니다. 인생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 말하라는것이아니고, 젊었던 시절에 그들이 경험했던 의미의 대상들이 무엇이었던가를 말하라는것입니다. 이런 일들 가운데 어떤것이 노년에와서도 재적용될 수 있는지 찾아내십시요. 그러면 당신은 그 노인들을 체념의 상태에서 행복한 수단의 단계로 옮겨 줄 수 있읍니다.

[문]=늙은 부모가 장성한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답]=어떠한 부모라도 자식을 잃으면 무서운 상실감에 빠져서 자식이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해하기까지는 오랜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자식이 다섯살이냐 쉰살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않습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항상 어린아이입니다. 당신은 그런 부모를 끊임없이 찾아가서 그들이 자기자식의 죽음에 대해 감정을 털어놓게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십시요. 부모마다 그 원하는 바가 다릅니다.(계속)

퀴블러로쓰 저, 이인복 역·문학박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