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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임종에 대한 질문과 대답] 10. 남은 가족이 직면한 문제들

저자=퀴블러로쓰, 역자=이인복ㆍ문학박사ㆍ문화평론가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12-02 제 1182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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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가족들에게 거짓말해선 안돼
가장 훌륭한 위안이란 가족의 말에 귀기울이는 일
사별당한 가족들에 대한 방문도 큰 도움줄 수 있어
(문)=환자가 사망하였을 때 의료를 맡고 있던 진료진도 자기의 슬픈 감정을 나타내보일 수 있읍니까?

(답)=물론이지요. 슬픔을 감추어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읍니다.

(문)=사별의 애통은 어떤 한계를 지나면 병적인 반응으로 간주됩니까? 내가 도와드리려고 애쓰는분은 너무도 심각한 죄책감에 빠져있기때문에 아무래도 정신과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것 같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과 말다툼을 했읍니다. 그리고나서 남편이 별안간 죽었기때문에 아내는 절망적인 가책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나를 지적하여 함께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 여자의 주치의를 침해하고싶지 않습니다. 또 나는 단지 간호원에 불과한데요.

(답)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기전에 당신의 마지막말을 한번 더 생각할 보아야 하겠읍니다. 단지 간호원일뿐이라는 것은 무슨 뜻으로하신 말입니까? 간호원이라는 이유때문에 스스로 자기의 정당한 권한을 격하시킨다는 말입니까? 요즘은 임종환자들이 점점 더 간호원의 도움을 즐겨 받는다는 것을 나는 보아 왔읍니다. 간호원과 설직자들이 아니었더라면 그 수백명의 환자들에게 어떤일이 일어났을지를 상상할 수 없읍니다.

동정심이있는 간호원은 분명히『울지마세요』라는 강압적인 태도보다는 다른방법으로 그 여인의 죄책감을 씻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여자옆에 앉아 한없이 그의 슬프고 죄스러운 가책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당신은 어느사이엔가 그녀가 눈물을 거두게 되었다는것을 발견할것입니다.

(문)=환자의 가족이 당신에게『환자가 고통속에서 숨을 거두었읍니까?』라고 물을때에、 혹은『숨을 거두기전에 제 이름을 불렀읍니까?』하고 물을때 선생님은 사실대로 말하십니까?

(답)=사실 환자가 임종했을때 그 이름을 부른 바가 없다면 나는 그 가족에게 불렀다고 대답하지 않겠읍니다. 가족되는분들이 통증에 대해 물었고 환자가 통증을 느꼈을때에는『고통스러워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해 편안히 해드리려고 노력했읍니다』라고 말할것입니다.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서 말한다면 가족은 벌써 그것을 알아차리고 사실보다 훨씬 나쁜상황에서 숨을 거둔 것이 아닐까하고 의심하게 될수도 있을것입니다.

(문)=임종의 여러단계들(거부ㆍ분노ㆍ타협ㆍ절망ㆍ수락)이 사망 이전에 가족들에게서 소화되지 못했을경우에、 일단 집안사람이 사망하였을때、 어떻게 그 가족을 도우십니까? 임종의 단계가 가족의 사망이후에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갈수 있겠읍니까?

(답)=가족되는 분들은 일단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경우 한번 더 그 다섯가지 심리적 단계를 거쳐야합니다.

(문)=환자가 죽었을때에 의료진의 한사람으로 자기의 정서를 나타내야만 합니까? 일을 처음 사작하였을때에 선생님은 눈물을 많이 흘리셨읍니까?

(답)=나는 아직도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문)=남편이 돌아가시기 며칠전에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의 임종시에 그녀가 꼭 옆에 지키고 있겠노라고 약속했읍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이 임종했을때 아내는 그 옆에 없었읍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내는 약속불이행을 가슴 아파하고 있읍니다.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답)=그 여인과 함께 앉아서 죄책감과 약속불이행의 괴로움을 털어놓을때 끈기있고 성실하게 들어주십시요. 우리들도 환자들에게 그들의 임종시에 함께 있어주마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주말을 가족과함께 지내고나서 월요일에 출근하였을때、 우리는 우리들의 환자가 임종하였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이런일이 가족 사이에서 일어났을 경우에는 물론 더욱더 받아들이기 힘들것입니다. 이런분들에게는 우리 인간은 모두 초인이 아니라는것을 말하며 서로 위로하자고 말해보십시요. 다음번에 우리가 좀더 조심해서『함께 있도록 노력하겠어요』라고 완곡하게 말할줄 알게 될것입니다.

(문)=임종환자를 둔 가족이나 친구、또 이왕 죽은 사람을 아직도 머리속에 두고있는 가족에게 어떤 말을하여 위로할수 있을까요? 죽음에대한 의미와 이유를 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왜 죽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답)=죽음을 정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수한 경우에도 그 이류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이고 사람이 죽었을때、특히 어린아이나 젊은이의 죽음에 직면했을때、인간의 죽음이 당연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들 자신을 합리화하고자하는 요구로부터 발생되었다고 봅니다. 환자의 죽음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까닭은 그 가족에게 위안을 주기위해서입니다.

가장 훌륭한 위안이란 그저 가족의 손을 꼭 잡고 가족이 슬퍼서 터뜨리는 온갖 말들을 성심껏 들어주는 일입니다. 사별을 당한 가족들을 잊어버리지않고 가끔 방문한다면、애통의 단계를 거치는 그 가족들에게 당신은 큰 도움을 주실 수 있을겁니다.

(문)=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도 자주 묘소를 찾아가고자하는 어린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를 도와줄수 있는방법이 무엇이겠읍니까?

(답)=나라면、 내차에 태워 그애를 아버지 묘소에 데리고 갈지언정、 결코 묘소에 자주 찾아가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겠읍니다. 내가 오히려 관심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은、사실을 직시하고 자주 묘소를 찾아가서 자기의 애통을 해소하는 사람이 아니고、 죽은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회피하고 그 묘소를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계속)

저자=퀴블러로쓰, 역자=이인복ㆍ문학박사ㆍ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