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4백년만의 추기경 특별회의 무엇을 다루었나?] 2. NC기자가 밝힌 추기경 회의일지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12-02 제 1182호 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비밀회의에 기자들 불평 끝내 체념
의제많아 예정보다 회의 하루 연장
올해 재정적자 2천24만불로 밝혀져
▩11월 6일

청명한 하늘에 서늘한 가을 날씨가 계속 됐다. 그러나 추기경들과 보도진의 표정은 날씨와는 딴판이었다.

소식통들에 의하면 전날 밤 두 사람의 연설 후 45분간에 걸친 논쟁이 있었다. 그것은 회의에 관한 비밀문제였다. 한소식통은 미국「필라델피아」대교구장인 죤크롤 추기경이 회의를 좀 더 공개 할 것을 주장한 사람들 속에 끼어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고 전했다.

그래서 어떤 추기경도 회의 내용을 보도진에 발설하지 않기로 굳은 결정이 내려졌다. 따라서 모든 매스콤은 교황청홍보국에 의해 조정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날 아침 보도원들의 표정은 희망과 실망으로 엇갈렸다. 이들 대부분은 전날 밤 교황의 연설문이 늦게 나온데 대해 투덜거렸다.

불평 속에서도 전달된 교황연설문은 보도진에게 또 다른 희망을 갖게 했다.

그것은 교황청 국무원장 까사롤리 추기경을 비롯한 다른 성성관리들이 발표한 자료집들도 공개 될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날 정오가지나 가진 기자회견은 그 희망을 깡그리 묵살시켜 버렸다. 판치돌리 신부는 회의 진행에 관한 간략한 발표를 하고는 다른 문서들을 공개할 아무런 계획이 없음을 통고했다.

판치롤리 신부는 교황청재정과 교황청 학술원들에 대한 연설이 약30분간씩 진행됐으며 그 후 추기경들은 한 시간에 걸쳐 질문하고 논평하기 30분간의 커피타임을 가진 후 6개 언어별로 나뉘어 소그룹회의에 들어갔다고만 밝혔다. 언어그룹은 얼마 전에 발표 된대로 라띤어 영어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그리고 이태리어 등이다.

회의내용에 대해 바티깐 당국이 공식적으로 침묵을 지키기로 한 이상 유일한 방법은 비록 비밀서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추기경들을 인터뷰 하는 길 밖에 없었다.

공식발표가 끝난 것은 오후1시 조금 전 이었다. 이때 몇몇 보도원들은 추기경들이 아침회의를 끝마치고 나오는 바티깐주차장 문 쪽을 향해 거의 뛰다 시피 성 베드로 광장을 지난 재판소광장으로 향했다.

몇 몇 추기경들은 보도진들의 모든 질문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엄격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크롤추기경은 어떤 정보라도 교황청홍보국에서 나와야 할 것이라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미국「디트로이트」대교구장 죤 디어딘 추기경은 몇 몇 뉴스기관들이 공식요청한대로 미국추기경들이 어떤 계획된 합동기자회견을 가질 것 인가 라는 질문에『절대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크롤추기경과 디어딘 추기경이 차를 타고 지나간 후「워싱턴」대교구장 윌리암바움 추기경이 계단을 내려왔다. 보도기자5명이 순식간에 그를 둘러쌌다. 바움 추기경은 정중하고도 확고하게 회의에 관한 모든 질문을 슬쩍 받아넘겼다. 그는 교황청 재정에 관한 연설들은「보도꺼리」였다고 말하고 그러나 재빨리『나는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것을 얘기 할 수 있기를 원 한다』고 덧붙이면서 자기 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바움 추기경의 언급은 어느 누구도 얻어 낼 수 없었던 그날 토의내용에 가장 정밀한 것 이었다. 다른 추기경들은『아무런 언급을 할 수 없다』혹은『나는 어떤 질문에도 답 할 수 없다』고 말했다.

▩11월 7日

이날 온종일은『더욱더 비밀적』이었다는 두 단어로 요약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날 12시30분 짤막하게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밝혀진 가장 흥미 있는 발표는 대한민국의 김 스테파노 추기경이 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이었다. 김 추기경의 도착으로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추기경수는1백 21명이 됐다.

한보도원은 추기경회의가 어떤 새로운 뉴스도 없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을 몹시 비꼬면서 1면 머릿기사에「추기경들 회의 세계신기록 수립」이라고 보도해야겠다고 투덜거렸다.

▩11월 8일

추기경들은 하루 반에 걸친 소그룹 토의 후 이날 아침 본 회의를 위해 전원이 다시 모였다. 교황도 참석했다. 이날아침 서독「쾰른」대교구장 요셉 회프너 추기경이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전체추기경수는 1백22명이 됐다.

보도원들 가운데는 체념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비밀의 베일은 견고했으며단지 대수롭지 않은 토픽뉴스들만 추기경들과의 접촉에서 새나왔다.

오후 1시30분 판치롤리 신부는 보도자료 브리핑을 통해 그날정말 뉴스 같은 내용하나를 제공해줬다. 그는 추기경들이회의를 하루 더 연장 9일까지 계속하게 될 것 같다는 예고를 발표했다. 그는 또 회프너 추기경의 회의참석과 교황의아침본회의참석 그리고 매우일반적인 내용으로 그날아침 토의내용을 전해줬다.

그 내용들은 교황청 각 부서들의 쇄신과 혁신 및 간소화ㆍ교황청 부서들간 및 이들 부서와 세계 주교들 간의 보다 폭 넓은 상호협력, 그리고 특히 교황청 학술원들에 있어 교회는 어떻게 이들의 연구와 활동을 촉진 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토의가 시작됐다는 것 등이었다.

판치롤리 신부는 추기경들의 저녁본회의는 아마도 언어별 그룹 토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와 같은 추측을 낳게 한 것은 교황이 이날저녁 연례총회를 갖기 위해 모여있는 2만명의 이태리 철도직원들을 위해 기차를 타고「로마」로가 그곳에서 미사를 집전하기로 약속돼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는 추기경들이 아직도 그룹토의를 다 끝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옵서버들은 이번 회의의 중요의제인 바티깐 재정에 관한 까다로운 문제는 실무진들에 보다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11월 9일

현대역사에서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전 세계 추기경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개최된 제1회 추기경회의는 오늘 폐막됐다 많은 추기경들은 교황이 폐막연설에서 추기경단을 가리켜「이처럼 훌륭한 기구, 추기경단의 부흥」이라고 말 한데 대해 깊은 만족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추기경회의가 새 교황을 선출하는 것 이외 다른 어떤 일을 하기위해 소집된 것은 4백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추기경회의는 아침회의로 끝났으나 예정보다 20분이 초과돼 오후1시20분에야 폐막됐다.

라띤어로 행한 교황의 폐막연설은 3가지 의제들에 관해 추기경들이 논평이나 제안 등을 통해 나타내 보여준 교회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을 열렬히 환영했다.

교황청 홍보국은 교황의 폐막 연설문을 배포했으며 오후7시경에는 콤뮤니케가 발표 될 것이라고 밝혔다.

콤뮤니케가 발표될 오후 7시전에 보도진은 교황청기자실로 모여들었다. 비록 부드럽기 이를데없는 어떤 보도 자료가 제공 될 것이지만 3일 동안 완전한 비밀 속에서 진행된 회의 후 발표되는 콤뮤니케라 흥분과 긴장이 감돌았다.

콤뮤니케는 어떤 보도꺼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1979년 교황청의 재정적자가 2천 24만달라 이었으며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숫자는 소유물 투자액 및 단체수입원들로 부터의 수입에 기초를 둔 것이다. 재정적자는 최근 수년간 가톨릭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바치는 헌금액이 줄어든데 기인하고 있다.

이 콤뮤니케는 교황청에 기본적으로 보장돼있는 수입이『전적으로 부족한 것』이라고 말하고 교황청은 앞으로 여러 해 동안 현 상태대로 운영을 계속 할 경우『심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콤뮤니케는 영어와 이태리어로 발표됐다. 영어는 다소 완곡하게『심한 압박』으로 표현했으나 이태리어는『위급한 곤경』이라고 표현했다.

바티깐 당국이 공식적으로 처음 밝힌 재정적자 곧 재정문제에 관한뉴스는 콤뮤니케 속에 내포된 다른 뉴스들을 거의 완전히 덮어버렸다.

콤뮤니케는 추기경들이 교황청기구의 구조를 개선하기위해 몇 가지 제안을 했으며 그러나 교황청의 방침과 활동 등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일치했다고 전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