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고 요한 바오로 1세 서거 1주기를 추모하며

변갑선 신부ㆍ가톨릭대 신학부교수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10-28 제 1177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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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교황 고 요한 바오로 1세
「그리스도의 미소」만인에게 보여줬던 분
겸손과 사랑에 찼던 서민적 교황
추기경시절 자전거 타고 다니며 인사나눠
비록 34일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가톨릭신자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큰 영향과 감격을 남겨주신 故 요한 바오로 1世께서 別世하신지도 一年이 지났다. 이 분의 죽음을 전해들은 세계의 萬人이 애타게 슬퍼한 理由는 말하지 않아도 다같이 共感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卽位하신지 한달도 못되어 갑자기 울려퍼진 悲聞이 萬人마음을 아프게 한것은 事實이지만 世上사람들은 교황님이야말로 現代人이말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牧者임을 잘알고 있었기 떄문에 더욱슬퍼했다. 이분의 겸손과 人情에찬 人間味가 흘러넘쳤던 敎皇님의 人間像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켰다고한다. 흔히 敎會指導者들은 말과行動이 一致하지않는 空論家와 같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인 이제에 實踐을 일삼고 生活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드러낸 敎皇님은 더욱 希貴한 人物 아니 主님의 큰 祝福이었다고 말해야 마땅할것이다. 교황님의 겸손과 희생과 庶民精神은 일찌기 少年時부터 천천히 育成된 것이지 급작스럽게 솟아난 것이 아님을 一般新聞紙上이나 잡지에서도 충분히 보도되었다고 본다.

1978년 10일 9일자 TIME誌가 전한 記事의 한토막을 소개해본다

敎皇님은 어렸을때 오두막집에서 사시고 나막신을 신고 다니며 나물을 잡수시고 사시는 등 가난하게 생활하셨다. 그러나 物質的 빈곤속에서도 奉仕정신이 强한 少年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그처럼 가난한 가정에서는 구경도 할수없는 흰빵을 어디서 구했는지 한조각 얻어가지고 와서는 형에게 주었다고한다. 형 에드아르는 그 빵을 어떻게나 맛있게 먹었는지 오늘까지도 그맛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記者에게 전했다. 그런빵을 처음 먹어볼 만큼 교황님의 가정은 가난에 처해 있었다고한다. 나자렛촌에서 庶民으로 지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뜨고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德行을 生活속에서 체험을 通하여 연마하셨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敎皇님께서는 解放神學을 찬성하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그누구보다도 컸다고본다. 베니스의 總大主敎 재직시에 敎區內의 본당신부들에게 敎會의 값진 물건들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 하라고 권고했지만 共産主義는 그누구보다도 강력히 論駁하였다고TIME誌는 전하고있다. 다른 日刊紙에서는 敎皇님께서 베니스의 추기경으로 계실때勿論專用車도 所有하셨지만 가끔 自轉車를 다고 다니며 길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庶民들과 自然스런 對話를 나누셨다는 記事를 읽은적이있다 敎皇님의 이같은 庶民的인 生活을 점잖은 信者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될수있다. 추기경님으로써 교황님으로써 自身의 위치를알고 品位를 지켰어야 하지않느냐 하는 것이다. 현대는 그리스도가 나귀를 타고 다니신 二千年전과는 다른 20세기 후반기가 아니냐하는 비난을 받을수도 있다고 생각할것이다. 敎皇님이 되시고도 화려한 敎皇冠을 쓰시기를 거절하시고 觀案속을 지나 가실때도 가마를 타시기를 거절하셨다고 한다. 결국 가마를 타는것은 교황님을 위한 대접이 아니고 수많은 관중이 교황님을 볼수있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설득한 다음에야 가마를 타셨다고한다. 物質과 文明의所産은 宗敎人도 사용할수있는 膳物임은 事實이다.

그러나 事物과 기계는 사용에 가치가있는 동시에 人格의 표현의 구실을 하기때문에 그들을 사용하는데있어서도 수양을 쌓아야만한다. 그렇지않으면 그들이 인간을 매혹시키고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되기때문이다. 美國에서는 교양이 낮은층의 사람들이 Cadillac(고급승용차)을 많이 타고다니며 몸의 치장을 많이한다는말을 들은적이 있지만 문명의 소산인 기계가 人格의 表示가 되기때문에 수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물질로서 자신의 부족감을 補償(Compensation)하는 심리현상이 일어난다는말에 일리가있다고 본다. 못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선진국인 외국에 가서 기계를 사는것을 보면 선진국인들도 감히 소유하지 못하는 값진 물건들을 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고한다. 카메라나 전축과 같은 것을 별로 사용하지도않으면서도 척척 사들이는 이유는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재산목록으로 마련한다는 주장도하지만 결국 가난한 처지에서 그와같은 기계를 어렸을때부터 對해보지 못했으므로 기계사용에 대한 生活敎育을 받지못한데서 갑자기 출세하거나 외국에 갔을때 기계의 이용가치보다는 人格의 부족함을 相殺하는 想像에 휘마리어 사치의 노예가 된다는 말에도 一理가있다고 보는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나막신을 신고 다닌 요한 바오로 1世가 그정도의 出世(?)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노예가 되시지않은 이유는 어디있는가? 그리스도와 같이 겸손과 德望을 갖추신때문이 아니고 다른이유가 있겠는가? 敎會의 지도자로서 身分과 처지에 맞는 생활을 해야한다는 상식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敎會指導者가 절대로 貴族的인 王이 아니며 종과같은 봉사자임을 행동으로 가르치시고 서민을 위하여 서민이되신 그리스도의 表樣을 본받아서 생활해야함은 福音의 道理임이 틀림없을것이다. 한마디로 요한 바오로 1世께서 세상에 그처럼 큰 영향을 남긴 이유는 물질적 가난을 동반한 마음의 겸손이었다고 본다. 겸손은 현실을 기피하거나 氣力이 없음을 의미하지않는다.

나의 能力을 감추는것이 겸손이아니라 내가 實力을 다발휘하지마는 그능력을 自己의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自身에게 영광은 돌리며 남을 경멸하는 교만과는 달리 自身이 成功하게된 힘이 主님의 은혜이며 환경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성공에 主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웃에게 감사할줄 아는 마음을 의미한다. 마음이 차있는 부유한 사람은 오만에 부풀어있는 상태에서 불만에 휩쓸려 이웃을 경멸하고 괴롭히려 들지만 마음으로 겸손한 사람은 主님안에서 富를 차지하고 힘을 얻고있기 때문에 平和로우며 이웃을 이해하고 도우려든다.

겸손한 종으로서 평화의 왕이되신 그리스도를 본떠서 世上에 알리고 증거하신 교황님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서 우리에게 光明이되어 주셨다.

현대인은 위선이 없는 사랑과 理論이 아닌 實踐을 갈망하고 있기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사람들은 이웃을 억누르고 自身의 能力을 과시하려는 오만을 對敵할수있는 겸손한 使徒를 苦待하고있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1세는 결코 약한분이 아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소박하고 庶民的인 生活信條로써 산 그리스도를 증거할수있었다. 박력있는 그의 실천적 웅변이 많은 사람들에게 길이 간직될것이다. 겸손과 사랑에 찬 교황님은『하느님의 미소』를 萬人에게 보여주셨다. 슬픔과 고민이 많은 現世에 교황님의 인자하고 친절하고 미소가 풍부한 표정은 世上을 밝은 빛으로 비추신 光明과 마찬가지라고 전한다. 263代 그리스도의 代理者로서의 任務는 짧은기간에 完成된것이다.

변갑선 신부ㆍ가톨릭대 신학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