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화보로 엮어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발자취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10-28 제 117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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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의 역정1년
다망ㆍ경탄의 교황재위 1년
화보로 엮어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발자취
대국제문제는 여느 역사 교황보다 활발
「영신의 아버지」바오로 6세 정책계승
첫회칙「인류의 구원자」발표
역사적인 4개국 순방 UN연설
전통적 교회규율은 엄격히 고수
요한 바오로 II세

1년전 전세계 추기경들이 사상 최초로 공산국 폴란드 출신의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했을때 교회안팎의 많은 사람들은 교황이 역대 교황들과는 좀 다르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렇지만 그 다른 정도가 얼마나 될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폴란드「크라코프」대교구장 이던 카톨 보이티야 추기경이 지난해10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즉위한지 만1년을 맞아 교황재위 1년을 간추려본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직무수행은 한마디로 매우 분주한가운데 놀라운 사건들로 연속됐다. 1년 동안 교황은 멕시코를 비롯 고국 폴란드 아일랜드와 미국 등 4개국을 순방하면서 UN과 6개국에 발을 디뎠다. 뿐만 아니라 역대 어느 교황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한 해 동안 이태리 여러 지역과 수많은「로마」본당을 방문했다.

또한 교황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첫 번째 회칙「인류의 구원자」를 발표했으며 칠레와 아르헨티나간 영토분쟁의 중재자로 나서기도했다. 이것은 국제분쟁에 교황청이 중재를 맡은 것으로는 금세기 최초의 일이기도 하다.

교황은 또 한해에 약2천명의 사제가 그들의 사제 직무에서 벗어난 용이한 환속결차에 쐐기를 박았으며 화란주교들의 특별 시노드를 내년1월「로마」에서 개최토록 요청했는가하면 전 세계 모든 추기경들이 오는 11월「로마」에서 특별모임을 갖도록 이미 회의를 소집 해놓고 있다. 약1세기만에 처음 열리게 되는 추기경단 특별회의는 교회의 現관심사를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 되고있다.

교황은 매주 일반알현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지난겨울에는 주1회에서 2회로, 그다음에는 매주3회씩 일반알현회수를 늘리도록 요청받았으며 마침내는 단한번의 모임에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야외알현을 베풀도록 요청받았다.

이로 인해「로마」관리들은 새교황이 불러들인 예상외 관광수입으로 감격을 감추지 못했으나 역시 교황으로 인한 교통 혼잡에 대해서는 불평하기도 했다.

그리고 흔히「베드로좌」의 주인공에 대해 별로 너그러운 표현을 좀체로하지 않아온 이태리신분도 새 폴란드 출신 교황에 대해 기뻐하며 최근에는 찬사에 가득 찬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이들 별명 가운데는 교황의 왕성한 회오리바람과도 같은 걸음걸이에 대해『회오리바람 보이티야』、교황의 급작스런 대중인기에 대해『성령의 요한 트라볼타』, 그리고 교황의 지칠줄 모르는 하느님말씀 전파와 운동가적인 경기태도를 가리켜『하느님의운동가』로 부르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년 전 교황 요한 23세가 제2차「바티깐」공의회를 소집했을 때보다 더욱 전 세계에 가톨릭교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집중케 했다. 그 예로 교황이 멕시코 폴란드 아일랜드 및 미국방문 때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TV특별프로나 생방송프로를 제쳐놓고도 교황은 한 해 동안에「뉴스위크」紙표지에 5회, 「타임즈」紙에 4회나 등장한 것을 봐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교황에 대한 이 같은 열렬한 관심은 대중이 교황을 얼핏 지나치기만 해도 대중에게 흥분과 때로는 열광을 불러일으키는 교황의 카리스마적인 인격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에 대한 교황의 솔직한 사랑과 모든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대하는 능력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교황이 어린이들과 함께 놀아주거나 병자를 방문해서 오랫동안 위로의 말을 하거나 혹은 극심한 불수자나 지체부자유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교황의 이런 면들만이 뉴스미디어로부터 받은 그토록 큰 관심을 설명할 수는 없다. 교황은 괄목할만한 사건들의「뉴스메이커」였다.

교황의 노쟁적인 문제들로부터 후퇴하지 않았다. 사실 교황은 가끔 이런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기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금년1월 상징적으로는 중남미주교들의 총회였기에 중남미전체를 순방한 것과도 다를 바 없는 멕시코여행에서 교황은 중남미교회의 최대논쟁적인 문제 중의 하나인 해방신학의 가장기본적인 교의에 자신이 일치함을 선언하면서 크리스찬메시지를 여하한 정치 이데올르기와 결부 시키는 것과 평신도의 역할을 사회 정치적인 지도자로 내세우는 사제들과 수녀들의 태도를 단호히 경고했다.

교황은 또 멕시코의 구조적인세속주의와 반(反) 성직법에 대해 친절한 언급을 잊지 않았는데 그 결과로 몇 몇 옵소버들은 교황이 바티깐과 멕시코간의 외교관계회복의 기반을 다졌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6월 고국 폴란드방문에서 교황은 일반적인人權과 교회의 권리문제를 강조했으며 교황청의 동유럽국가와의 화해정책에 대한 자신의 기본입장을 피력했다. 교황은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한 참여를 지지했으나, 그러나 완전한 관계수립은 교회의 권리가 보장될 때만 가능하다고 공산주의 정부들에 경고했다.

9월말 아일랜드 방문에서 교황은 폭력이 그리스도정신에 위해 된다는 점을 단호히、그리고 되풀이해서 선언하면서 북 에이레의 어떤 내전도 종교전쟁이라고 일컫는 것을 배척했다.

미국방문에서 교황은「검소한 생활방식」을 요청했다. 교황은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를 비판하면서 미국민들에게 그들이 누리는 물질적인 풍요는 그들의 富를 전 세계의 빈자들과 함께 나누어야할 특별한 책임이 있음을 깨우쳤다. 10월 2일「양키스타디움」에서 행한 연설에서 교황은『여러분들은 여러분자신의 풍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여러분의 재산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미국방문에 앞서 UN총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교황은 인권과 평화、富의 재분배, 그리고 무기경쟁의 종식을 호소했다. 교황은 인권、특히 인간의 정신적인權利들이 보호유지 되지 않고서는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거의 모든 행동과 결정에서 자신이 늘 자기의「영신의 아버지」로 부르는 교황 바오로 6세의 정책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바오로 6세가 재임 맡기에 노령에다 관절염으로 거의 과도지도 체제였던 데서 새로운 활력을 갖고 일을 처리했다.

1년 동안 교황이 교황청에 소수의 직무개편을 단행함으로써 교황청의 국제화를 계속해오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바오로 6세 때의 주요정책결정자들이 포함돼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또 교황청의 외교접촉과 세계지도자들과의 만남을 증가시킨 바오로6세의 정책을 계속 고수해오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바오로 6세보다 국제 문제에 있어 보다 활동가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오로 6세와 같이 요한 바오로 2세도 동성애 이혼 인공산아제한과 낙태와 같은 도덕문제에 있어서의 교회전통적인 가르침과 사제 독신제나 교파간 영성체와 같은 전통적인 교회규율 등을 굳건하고도 강경히 고수해오고 있다.

교회일치에 대해서 교황은 여러 차례 강력한 지지를 표명해오고 있으나 아직 한 번도 신학위원회가 최근 발표, 교회의 공식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대화성명서들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도 밝히지 않고 있다. 새 교황은 무엇보다 성모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을 설교하고 또 모범으로 나타내 보여 왔다. 특히 이태리 각지 여행이나 멕시코 폴란드 아일랜드방문에서 성모께 대한 신심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미국방문에서는 성모신심을 강조하지 않았다.

철학과 크리스찬 윤리문제에 있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현대사상에 친숙한 요한 바오로2세는 인권이나 사회정의 문제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들에 새로운 신학적인 깊이를 가미시키고 있다. 교황은 논조는 과거 교황의 발언이 가끔 회선한데 비해 명확하고 더욱 평범하게 서술되고 있다

교황은 국제적인 제도나 관계 등에 있어 정의를 요청 할 때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그리고 명백하게 호소한다.

최근「워싱턴 포스트」紙는 교황의 미국 방문을 언급하면서 교황을 가리켜 제3세계의「최고의 친구」이며「최상의대변자」라고 지적했다. 그것은『경쟁이 그토록 빈약하기 때문이 아니다』고 언급한 同紙 사설은, 그 이유는『이교황은 세계의 富와빈곤, 개인의 쾌락과 고통의 문제가 한편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며 또 확신과 신념을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논평했다.

<바티깐市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