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말씀을 심는다 - 일선 전교사의 체험기] 84.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김 이사벨라 수녀 21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9-09 제 117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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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발작 이후 깨어날줄 모르는 은숙이
병원선 냉대만-3일후 의식 찾았으나
유린당한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하나..
어느날이 있다. 4반에 있는 정신질환아이 은숙이가 간질을 하다가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너무나 허약해서 부산에 있는 우리 구호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다가 온지 2일밖에 안되었는데 다시 병이 난것이다.

낮으론 의사 선생님도 운전기사님도 계시니 그다지 긴장하지 않으나 많은 아이들 중 밤에 갑자기 아이들이 병이 나면 병원상담 수녀님은 몇 번 이고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개인병원을 찾아가야했다. 그날도 아이를 이불에 싸안고 택시를 잡아 급히 병원에 갔으나『가망 없는 아이요. 입원시킬 자리도 없으니 그냥 데려가시오』라고 했다. 새로 입회한 요세피나 자매가 따라갔는데 돌아와 울분을 참느라 무진 애쓴다.

『수녀님、세상에 진찰한번 안해보고 똥이라도 만지는 듯 손가락 두개로 이불을 들쳐보더니 수도가에가 손만 싹싹 씻는데가 어디 있읍니까』그녀는 사회에서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했지만 자신이 그러한 냉대를 처음받으니 무척 자존심이 상했던가보다. 그보다 아이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매、우리가 이런것 당하는건 아무것도 아니어요. 이애는 낳아서 이때까지 이런것、아니 이보다 더한 냉대와 수모를 당했던 거예요. 그럴수록 우선 우리가 이 아이에게 해줄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죽은듯 창백한 얼굴에 두 눈을 감고 약하게 팔닥 거리는 심장의 고동!

우린 그러한 은숙이에게 대세를 주고 이곳 암당의사 선생님께 처방을 받았다. 오랫동안 먹지 못하고 탈수증이 심할테니 IV를 꽂아 주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2일동안 링겔만을 꽂았으나 은숙이는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우린 졸면서 은숙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난 졸음을 이기기 위해 잠시 밖에 서있었다. 밤공기는 싸늘했다.

총총히 떠있는 수많은 별! 그날따라 무척이나 청초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구석의 작은별로 찬란히 빛나는 이쪽의 큰 별도 다 같이 하늘을 장식하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존재가치를 느끼는 높은 사람의 생명도 저보호자없이골방에서 죽어가는 무가치해 보이는 정신병 아이의 생명도 하느님 앞에선 똑같이 존귀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한 열들이다.

그런데 저 아이는 죽어간다 숱한 어린생명들이 무관심속에서 죽어갔었다. 은숙이가 다시 살아나면 다시 그녀는 간질을 하고 종이쪽을 주워 먹고 소대변을 벽에 마구 칠할 것이다.

그것이 그녀 삶의 전부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마땅히 제일 일등석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

주님께 받은 그 담당한 권리를 인간으로부터 빼앗기는 뼈아픈 모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밤3시30분쯤 되었을까 3일동안 죽은 듯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은숙이가 아-하고 하품을 하는 것이다. 잠시 후 초점 흐린 눈을 반쯤 뜬다.

『자매! 은숙이가 깨어났어요. 은숙이가 살았어요』우린 졸음도 피곤도 잊은채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여인이 해산전 근심하나 해산 후 아이가 출생한고로 그때의 고통을 잊어버린다는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고통은 즐거움으로 변했다.

따뜻한 보리차를 수저로 떠먹이니 받아먹고 또 입을 벌린다.

『수녀님 제비처럼 또 입을 벌려요』자매도 너무 기쁘고 신기해서 깔깔대며 웃었다.

한없이 고요한밤-죽음과 삶이 엇갈리던 밤! 아니 탈바꿈하던 신비스런 밤이었다고나 할까?…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