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과 태양의 나라 멕시코 - 진교훈 교수 남미 순례기] 14. 멕시코만의 요지「캄페챠」

진교훈 교수ㆍ중앙대 철학과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9-09 제 117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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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ㆍ치클ㆍ로프ㆍ꿀의 산지
아메리카대륙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곳
십자가상「새까만 예수」흑인노예 위한듯
「칸쿤」에서 묵은 호텔의 주인과 사귀게 되어 그의 친절한 안내로「틀룸」의 고적지를 踏査했다. 틀룸은 마야문명의 關門이라고 할 수 있는곳이며 과테말라와 英領은 듀라스 페루 등지와 交易이 성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內陸깊이 運河를파서 商船이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칸쿤」에 며칠 더 묵고 싶지만「메리다」로 돌아왔다 도중에 버스가 고장이 났다. 노상에서 버스를 수리 하는동안 나는 인근마을을 찾아갔다. 그곳 사람들은 마야인의 사투리로 말한다. 손짓과 얼굴표정으로 간단한 의사를 소통하고、음료수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를 사먹었다. 여기서 우연히 페루정부의 대학탄압에 항거를 하고 쫓겨난 인류학교수를 만났다. 이분과 서너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南美의 여러 가지 사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해방신학과 反聖職主義의 배정에 대해서도 말해주었고、성직자의 특권의식과 우월감과 교회당국의 文言(?)정책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했다. 공산게릴라의 준동과 군사독재는 安逸을 일삼은 교회 지도자의 短見과 無知가낳은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도착시간보다 4시간 늦게「메리다」驛에 도착했다. 車가 없어서 1시간을 걸어서 수도원에오니 새벽2시. 하루를 쉬고 나서「비야헬모사」의 원시 밀림지대로 들어가려고 준비했다. 수사님들이 위험하다고 걱정을 하신다. 저녁때「캄페챠」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교장을 하시는 분원장이「유까데꼬」민속음악제가 여기서 열린다고 보러오셨다. 미국「휴스톤」의 돈 많은 의사들이 스폰서가 되어 10년 만에 열린다고 한다.

4시간동안 판소리類의 노래와「하나라」라고 불리우는 포크댄스를 듣고 보았다. 이 춤은 경쾌하고 신선미가 있다 남자는 손을 등 뒤에 두고、여자는 화려하게 수놓은 드레스를 돌때마다 살짝 걷어 올리면서 일종의 탭댄스처럼 추는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도 보급 됐으면 싶은 건전한 춤이다. 이 분원장님이「캄페챠」에 나를 납치하다시피 다음날 끌고 갔다. 그곳까지 2백50㎞.

「캄페챠」는 멕시코灣의 중요항구、새우와 치를 로프、꿀의 産地、아메리카대륙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 곳으로 유명해졌다.

수도원에서 짐을 풀고 몇군데 성당을 둘러보고는 바닷가로 나갔다. 해적을 방비하기위하여、海邊을 따라 城이 축조되어있다. 때마침 저녁노을이 서녘바다로 곱게 물들기 시작했다. 해변으로 드라이브하다가 日沒직전의 해를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했다.

차에서 내려、지는 해를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해온다.

「빅톨위고」의 황혼이라는 시귀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왜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을 이다지도 아프게 하는 것일까?

「캄페챠」에 있는 프란치스꼬 수도회의 성당에는「새까만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다. 그런데 이 새까만 예수님의표정은 처음 보면 이상하지만 몇 번 보면 그렇게 은근할 수가 없다.

옛날 흑인노예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 같다

순간적으로 내가 흑인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그분의 품안에 폭 안기고 싶었다. 다음날 새벽 젊은 수사님들이 장보러 가는데 쫓아갔다. 내가 주문 하는 대로 장을 보았다. 8살 때 처음 엄마 따라 장엘 갔었는데 그때처럼 나는 흐뭇했다

누가보아도 우리를 어린애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어린애들처럼 즐겁게 지냈다.

내가 이틀 후「빨렌께」로 기어이 가야 한다고 하니 섭섭해 하다 못해 7순이 되신 수사님은 나를 따라나섰다. 여기서 민속음악 녹음한 것과「해목」(그네침대)을 선물 받았고 꿀 한병을 샀다.

여기 꿀은 香味도 좋으려니와 약으로도 좋다고 하기에 가져 왔지만 이 꿀 때문에 갖고 다니느라고 애도 먹었고 여러 사람에게서 놀림도 당했다. 그러나 이 꿀을 좋아하는 분이 있는 걸 생각하면 千金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걸…여기는 한약재를 파는 노점들도 있다.

다음날 노인 수사님과 함께「빨렌께」로 왔다. 약6백㎞ 이곳은 문자 그대로 열대지방이다. 스콜이 오기 전에는 40도까지 수은주가 올라간다.

파나마모자 하나를 사서 쓰고 왔으나 누구든지 나를 인디안으로 볼 정도로 검게 탔다.

여기는 크고 작은 寺院이 무려 21개가 있다. 아직도 도시의 일부가 장글에 묻혀있다. 독일ㆍ프랑스ㆍ스페인ㆍ중공에서온 관광단들과도 만났다.

너무나 더워 개울을 찾아 가서 수영을 했다. 수사님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시지만.

그리고 나서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린 오렌지를 3개 먹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700년경에 이미 담배를 종교의식에 사용한 浮調의 그림을 보았다. (계속)

진교훈 교수ㆍ중앙대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