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과 태양의 나라 멕시코 - 진교훈 교수 남미 순례기] 12. 인디오의 마을「체말」

진교훈 교수ㆍ중앙대 철학과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8-26 제 1168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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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동안 같은방식으로 생활
남자 모자 밟고 춤추는 무희 모습이 인상적
부드럽고 섬세하나 원색적ㆍ잔인한 면도 지녀
「라빨라빠」호텔에 와서 얼음과자를 먹었다. 이 호텔이 자랑하는 特味. 各楊各色의 風味가 그만이다. 칭찬해 주고、또 주문했더니 골고루 갖다준다. 요리사가 와서 인사를 한다. 어디서나 음식 만드는 분들은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그러니 조금 자만해질 수밖에.

밤이 이슥해지니、관광객들은 客氣로 빠에가서 술마시고 춤춘다. 때가되니 화려한 원색의 옷을 입은 춤꾼이 쌍쌍으로 나와 판초의 가락에 맞추어 플라밍고와 라틴탱고를 열정적으로 춘다. 멕시코의 고유한 전통적인 춤인 모자춤(하라베 따빠띠오)은 매우 인상적이다. 남자의 지배에 대하여 분풀이 하려는듯 無姬가 남자의 모자를 밟고 춤춘다. 멕시코에서는 여자는 남자를 버릴 수 없지만 남자는 여자를 버려도 흉이안 된다. 여기에 덧붙여 천주교의 이혼금지가 逆作用을 일으킨다. 그러니 첩과 자식이 많을 수밖에. 이것이 아직도 자랑꺼리가 된다고 한다. 춤으로나마 한을 푸나보다. 그러나 여기 분위기가 너무 짙다. 기름가마 속에서 質나쁜 기름이 끓고 덴뿌라가 튀겨지는 것 같다. 구리스(윤활유)를 바른 것 같은 번질번질한 얼굴들 역한냄새 술 취한 늙은 창부의 풀어헤친 젖가슴마냥 역겹고 징그럽다. 방안의 熟氣가 싫어서 나는 밖으로 나왔다.

「戰士의 寺院」주위를 맴돌았다. 白樂天이 琵琶行을 쓰던 밤의 情景이 이랬을까. 月白鳳淸! 하염없는 哀愁에 젖어 나는 달을 쳐다보고 넋두리를 했다.『아픈 가슴을 어쩌란 말이냐? 虛空에 던져진 것이 나만은 아닐 텐데、네가 그렇고 수많은 별들이 다 그렇거늘…』

이 호텔이 자랑하는 水晶굴에서 헤엄을 쳤다. 지치도록.

다음날 달팽이 모양을 하고 있는 천문대를 구경했다. 望臺로 올라가는 길이 迷路처럼 되어있다. 적의 침입을 몹시 경계하고 지은 것 같다. 다른 궁전들도 다 迷路가 있다 낮선자는 집안으로 잠입해 들어와도 길을 잃게끔 만들었다. 나도 몇 번 길을 잃고 당황했다. 몇 개 유적을 더 보았다. 여행사의 일정에 의하면 점심먹은 후「메리다」시로 돌아가게 되어있는데、나는 인근에 있는 원주민부락들을 둘러보고 싶었다. 내가 앞장서서 미국사람 노부부 세쌍을 모아가지고 여행사의 차를 빌려 타고 천년동안이나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체말」로 찾아갔다. 일종의 초가집들이 옹기 종기있다. 野生의 과일나무들이 집주위에 널려있다. 바나나 빠빠야 망고…. 집안을 들여다보니 돼지와 개가 사람과 같이 살고 있다. 방하나가 집의 모든 기능을 다하게 되어있다. 나중에 지은 집들은 칸막이가 있어서 방이 두 세개 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것은 집집마다 几錠 (喪廳)과 비슷한 것이있다. 중앙에 십자가가 있거나 木刻으로된 聖像이있고 제단이 있고 그 위에는 술잔과 향로와 造花가 있다. 삼원색이 주가된 헝겊을 길게 드리우기도 했다. 또 어떤 집은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인형을 모시었다.

옷을 형편에 따라 갈아 입히는것 같다. 우리나라의 서낭당 같기도 한데 인디안의 샤마니즘이 그리스도교적(?)으로 묘하게 토속화됐다. 시골로 들어갈수록 더 그로데스끄한 장면을 볼수 있는데 아기예수나 어른예수 성모마리아와 성인성녀들에게 옷을 해입힌다. 옷들은 대개 먼지와 끄름으로 더럽혀지기도 하고 색이 바랬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유리상자안에 성상을 모셔두기도 한다. 또 아기예수는 인형친구와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수도 있다. 심심해 하실까봐 자상한 배려를 많이 했다. 말쎄리노 聖人과 같은 심정을 가진분들이 멕시코에는 많은것 같다.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 가하면 이와는 달리 원색적이고 잔인한 면도있다. 대부분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참혹한 모습을 하고있다. 방금 찔린듯 샛빨간 덩어리피가 철철 흘러 나오는것 같으며 예수는 몹시 고통스러워 보인다. 쳐다보기가 민망스럽고 고통스럽다.

「체말」은 언젠가는 발굴작업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떤 폐허위에서 나는 一望無際의 푸른 平原을 내려다보면서 徐廷柱의「石窟{}觀世音의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湖水와 같은 그리움으로/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푸른 숨결은 내것이로다… 사랑한다고… 이한마디 말만 님께 아뢰고 나도 이제는 바다에 돌아갔으면!』

<계속>

진교훈 교수ㆍ중앙대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