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말씀을 심는다 - 일선 전교사의 체험기] 82. 사랑의 손길펴는사람들/김 이사벨라 수녀 19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8-26 제 1168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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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잃은 이들에겐 뭣보다 사랑 아쉬워
사랑과 관심으로 그들에게 용기와 힘주어
한 치대생의 사랑과 끈기, 후배들도 전승
『슬퍼하지 말라 먹구름 저편엔 태양이 찬란히 빛나고 있다』언제 어디서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주 되뇌이는 브라우닝의 시 한 귀절이다. 파산된 가정에서 부모를 잃고 어두운 거리를 방황했던 이 아이들에겐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도 필요한 것은 이들의 멍든 가슴을 이해하고 어루만져줄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손길이었다. 넌 자주 이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깊은 번뇌의 고갈 속에서 누구엔가의 사랑을 구걸할 때가있다. 작은 영혼 속에 소용돌이치는 그들의 슬픔을 만끽하면서…

하루 두 세번 드나드는 철문이 굳게 잠긴 웅크리고 앉아있는 어린눈동자들을 볼 때 마다 사회에 냉대 받고 부모에게 내버림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그들의 마음을 누군가가 매만져 주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지난 부활 때 용암동 본당 신자들이 사순절 때 모은 성금으로 아이들 학용품을 사오셨다. 난 아이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했다. 여러분은 결코 외로운 학생만은 아니어요. 이들이 보내신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에는 여러분께 대한 풍성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10년 동안 식모살이해서 번 돈을 몽땅 소년의집에 기부했던 어느 눈물겨운 이야기도 들려주며 이들의 마음에 힘과 용기를 갖게 했다.

지난해 어린이 날이었다. 등에 애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사과 1상자를 머리에 이고 오셨다.

『수녀님、몇 천명의 아이들에 이 사과를 누구 입에 붙일수도 없지만 저의 정성된마음의 선물이니 받아주세요』한다.

난 아주머니의 핼쑥한 얼굴과 까칠한 아기를 번갈아 보는데『수녀님 우리애기는 가난해도 엄마의 품속이 있잖아요? 어느날 밤 우리 애기가 아파서 밤1시까지 잠 못 이루고 있는데 어디선가 엄마하고 외치는 소리에 밖을 나와보니 커다란 소년의집 건물7층에서 어떤 아이가 창문을 내다보며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계속「엄마」라고 외치는 거예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건져달라고 아우성치듯 절규에 찬 그 애달픈 음성을 잊을수가 없었어요』

다시 눈물을 글썽인다.『아주머니 고마워요. 한 상자가 아니고 사과 한개라도 우리 아이들의 슬픔을 동감하는 아주머니의 선물은 비싼거여요』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어린이날 이들이 생각나 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를 이고 오셨던 아주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두고두고 가슴뿌듯한 인정을 느끼게 된다.

또 고마운분들이 계신다. 뇌파학을 연구하신 김임 박사님과 안창호 선생님께선 벌써 몇 년동안 바쁘신 중에도 2주일에 한번 씩 우리 정신이상 아이들과 간질하는 아이들을 진찰해 주러 오신다. 쓰레기 취급당했던 정신이상 아이들에게 소아과담당 의사와 정신과 주치의가 계신다는 것은 얼마나 미덥고 흐뭇한 일인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이상의 괴상한 발작 증세를 우린 그들에게 마음 놓고 호소하며 처방을 받는다.

고마운 분들은 그들뿐만 아니었다. 일년 훨씬 전 부터 서울대학 칫과학생이었던 훤칠한 키에 눈도 커 이국적인 인상을 풍기던 나호덕이라는 학생이 같은 동료들을 인솔하여 주일마다 와서 우리아이들 치아를 튼튼히 해주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항상 말없이 혼자 찾아와 일할준비를 해놓고 동료들을 기다렸다. 다른 학생들은 모처럼의 일요일이니 친구와의 약속이나 볼일이 있다며 때론 일찍 돌아가기도 했으나 그만은 단 한번도 그런약속도 없는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줄곧 일에만 몰두해있었다.

착상과 시상이 떠오를 때의 예술인처럼 집중된 시선으로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을 함축하여 담은 듯한 그의 성실한 미덕 속에 넘치는 그 풍성함. 물론 의사가 되기 위해 실습과정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컸다.

그들은 치료만 해줄뿐 아니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우리중학생들과 기타를 튕기며 친밀한 대화로써 아이들의 정서를 살찌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의무실에가니『수녀님! 나호덕이라는 사람 군대에 간다고 인사하러 왔었는데 수녀님 안 계셔서 그냥 갔어요』간호원이 말했다.

난좀 가책을 느꼈다. 아니 섭섭하기까지 했다. 의무실 담당이라곤 하지만 또 아이도 맡고 있으니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이 오면 의무실 문만 열어줄 뿐 그들의 애로상에 신경을 써주지도 못했으며 1년 이상 봉사한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으니 말이다. 학교로 연락을 취했으나 학교졸업 후 군대에 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아이들의 섭섭함은 더 컸다. 일요일이면 의무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중학생들!『애들아 이제 집으로가. 그분들은 이제 안오셔!』

『예? 정말이어요?』순간 난 그들 눈 속에 깊이 스며드는 고독을 응시한다. 어쩜 울음이라도 곧 터뜨릴 것 같은 시선이다.『세상은 다 그런거야 정들면 헤어지고 헤어졌다 또 만나고…』

『그 형들 참 좋았는데…』『그래 너희들도 그 형들처럼 소년집 꼬마들의 좋은 형이되는거다』『예』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준이、제법 의젓한 의지의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며칠 전의 일이다. 뜻밖에 나호덕이라는 학생이 왔다. 그것도 겨우 2일 휴가중에 이곳을 찾아와주었다. 정말 반가왔다. 『생각나서 왔습니다. 서울에 살면서도 난 이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제 알았으니 우리 꼬마친구들 보러 계속와도 되겠지요?』이제 그의 후배 학생들이 몇 년 동안 계속오기로 했다. 나호덕이라는 학생이 바톤을 넘긴 셈이랄까. 다행히 학교 내 가톨릭학생회 클럽이라서 더욱 기대가 크다. 주일이면 열댓명의 하얀 까운의 물결속에 밀물처럼 모여드는 아이들.『이빨이 아파요!』『그래 여기 앉거라』하루 1백명이상의 아이들을 검진하고 치석을 제거하고 치료하고 또 썩은「이」를 뽑아준다.

난 이 시간 군에서 한참 훈련 중인 나호덕(베드로)씨와 주일마다 학생들을 인솔해와 앞으로 수고해줄 야고버 학생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리며 그들의 하는 일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린다.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