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요한 바오로 2세 첫 회칙 - 인류의 구원자] 10.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6-17 제 1159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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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배제한 봉사로「왕직」에 참여
참된 회개와 성체성사는 우리를 구속신비로 이끌어
각자의 소명에 충실-공동체 형성
20. 聖體聖事와 告白聖事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그 근본투신과 가견적 은총 및 초자연적 힘의 원천을 성체성사 생활과 성체신심에서 끊임없이 길러내고 향상시키도록 되어있으며 성체성사의 분위기속에서 온전히 성장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이유로도 참으로 지극히 거룩한 이 성사로부터 그 위대함과 그 본질적 의미를 제거하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 이 성사는 동시에 회생의 성사요、친교(親交)의 성사요 현존(現存)의 성사이다. 성체성사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이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인간적 형제애를 가장 깊게 계시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성사가 그 형제애를 드러내기 위한「기회」(機會)로만 간주될 수는 없다.

주님의 몸과 피의 성사를 거행할 때에는 신적신비의 위대함이 온전히 존중되어야한다.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시고 영혼에게 은총과 장차 올 영광의 담보가 주어지는 이 성사적 표지의 뜻 전체가 존중되어야 한다. 전체규정을 엄수할 의무와 하느님께 바치는 공동체 예배를 나타내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수할 의무가 여기서 비롯한다.

각별한 이유를 든다면 하느님이 이 성사적 표지에서 우리에게 한없는 신뢰를 기울이시어 마치 우리의 인간적 나약、우리의 무가치함、관습의 힘과 판에 박힌 행동、심지어 모욕을 끼쳐 드릴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도 전혀 안중에 두시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성원、그중에서도 특별히 주교와 사제는 이 사랑의 성사가 하느님의 백성의 생활에 중심을 이루도록 노력할 것이니、그렇게 함으로써 그에 합당한 예배의 온갖 표현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사랑에 보답하는 사랑』으로 다시 봉헌되고 참으로『우리 영혼의 생명』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로서는 성 바오로의 다음 말씀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한다』

사도의 이 경고는 간접적으로나마 성체성사와 고백성사의 밀접한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의 첫마디、기쁜 소식 복음의 첫 귀절이『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었을진대 수난과 십자가와 부활의 성사가 우리 영혼에 이 부르심을 전혀 특수한 모양으로 강화하고 공고히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의 정신과 참다운 그리스도교 생활의 정신에 입각한 본연의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성체성사와 고백성사는 어느 면에서 긴밀히 연결된 두 차원을 이룬다. 성찬의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같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참회를 권하시며「회개하라」는 말씀을 거듭하신다. 회개하려는 끊임없는 새로운 노력이 없다면 성체성사에 참여 하는 일에 구속적 효과가 완전히 발휘되지 못할 우려가 있으며 하느님께 영적인 희생 제사-우리는 이 희생 제사를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양식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 한다- 를 바치려는 우리의 각별한 마음자세가 상실 되거나 적어도 약화될 우려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제직이 그분의 희생제사、아버지께 드린 자기증여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 희생제사가 한계가 없는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에서、수많은 한계에 종속되어있는 우리인간 존재로서는 늘보다 성숙한 모양으로 또 항구하고 늘보다 깊이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난 여러 해 동안 교회의 실천에 있어서 참회、특히 고백성사의 공동체적 측면이 크게 강조되었는데 이것은 교회의 가장 오래된 전통과도 부합한다.

그렇지만 회개라는 것은 특히 깊은 내적행위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다. 그것은 타인들이 대신해 줄 수도 없으며 공동체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참회 식에 신자들의 형제적 공동체가 참여하는 것은 개인의 회개행위에 크나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결국 이 행위에서는 개인 당사자가 자기양심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죄책감과 하느님께 신뢰하는 마음으로、시편 작가처럼 하느님 대전에서『당신께 죄를 얻은 몸』이라고 고백하는 행위가 반드시 있어야했다. 수세기에 걸친 고백성사의 관습은 개인 각자가 인격적인 통회와 행실을 고치며 보상하겠다는 각오를 세우고서 개별적인 고백을 하도록 되어있다.

이 관습을 충실히 고수함으로써 교회는 인간 영혼의 개인적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다

인간이 화해의 성사의 집권자를 통해서 그리스도、십자가에 달리셔서 용서하시는 그리스도、『너도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고『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말라』하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와 보다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편에서도 당신께 구속받은 각 사람에 대한 권리임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와 용서의 순간이라는 한 영혼론의 생활의 가장 중요한순간에 우리 각자와 만나보실 권리가 있으시다. 교회는 고백의 성사를 옹호함으로써 구속의 신비를 살아있고 생명을 주는 실재 (實在)로 믿는 그 믿음을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니 이것은 인간의 내면의 진리와도 부합하고 인간의 죄책과도 부합하며 아울러 인간 양심의 소망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고백의 성사는 구원자께로부터 친히 오는 義를 갖고서 인간을 만족시키는 수단이다.

특히 오늘날은 교회가 특별히 성체의 주위에 모이고 진정한 성체의 공동체가 모든 그리스도신자들의 보다 성숙해가는 일치의 표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한 교회에서라면 응당 성사적 측면에서나 德으로서의 참회에 있어서나 참회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껴야 마땅할 것이다. 德으로서의 참회에 관해서는 바오로 6세께서 사도적 권고「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별도로 천명하신 바 있다.

이봉헌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게 하는 일이 교회과업의 하나가 되겠다. 그리고 공동성찰을 통해서 이 주제를 보다 깊이 연구해야하겠다.

또 사목적공동성(司牧的共同性)의 정신에 입각해서 이 문제에 관한 각이한 전통들을 존중하고 현대인이 살고 있는 각이한 환경을 고려하면서 보다 많은 결정이 내려져야 하겠다.

그러나 새로운 대립절을 맞은 교회、주님의 다시 오심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는 교회는 성체 성사와 고백성사의 교회여야 한다.

교회의 생활과 활동을 이러한 영성적 측면에서 볼 때에만 교회는 신적사명을 받은 교회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교회의 본질로 천명한 그대로『사명수임 (使命受任) 중인』교회로 나타날 것이다.

21. 봉사(奉仕)와 왕직(王職)에 부름 받는 크리스찬 昭命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교회상(敎會像)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근본부터 재정립하였다. 그리스도의 사명을 삼중(三重)으로 제시하면서 그 사명에의 참여를 통해서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였다. 공의회의 이 가르침에서 그리스도교 소명의 특성 가운데서「왕직」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대목은 가히 절정을 이룬다. 공의회의 가르침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제시하려면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의 여러章과 항목을 인용해야 하고 공의회의 그밖의문헌 들을 예거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풍부한 요소들 가운데서 한 가지가 더욱 빼어나게 보인다. 그리스도의 왕다운 사명에 참여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가히「왕직」이라고 일컬을 만큼 우리소명의 특별한 존엄성을 우리자신에게서와 타인에게서 재발견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 존엄성은、「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그리스도의 모범을 명심하여 남에게 봉사하려는 준비자세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의 이태도로 미루어 본다면「왕이 된다」는 것은「종이됨」으로서만 가능하며、「종이 된다」는 것은「왕이 된다」고 할 정도로 고귀한 영성적 성숙을 요하는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