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신강림 대축일 논단] 기쁨과 평화의 날

이한택 신부ㆍ예수회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6-03 제 1157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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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의 은혜는 공동체의 이익위한 것
그리스도의 사랑과 현존의 보증으로 이 세상에 강림
이끄심에 순응할 때 기쁨과 평화 체험
오늘 우리는 성신강림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주님께서만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기쁨과 평화를 새롭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성신께서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원으로 부터 세상마칠 영원까지 하느님이심을 믿어왔고 또 우리와 함께 오셨음도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 새삼스럽게 기쁨과 평화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 이유 중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우리 삶의 여건과 상황이라 하겠다. 급변하는 세계정세는 우리마음의 안정을 계속 뒤흔들고 여기에 부수적으로 그러나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많은 부작용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이러한 부작용 중에는 크리스찬 생활은 말 할 것도 없고 인간으로서의 삶 자체를 위협하고 도전하는 요소가 심각할 정도로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가치관의 붕괴로 인한 윤리도덕의 부재、비인간화 현상내지는 인간성 상실、황금만능주의、권력을 포함한 온갖 형태의 폭력의 횡포 등은 우리의 삶을 매일매일 압박해오고 있다.

이모든 현상은 하느님과 종교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물질주의나 세속주의에서 원인이 되고 종국에는 바로 그 무신론적 물질주의와 허무주의로 귀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몸부림치고 있고 우리 스스로가 이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당하는 뭇 형제 자매들에게도 구원의 손을 뻗쳐야겠다. 그러기에 우리는 극도로 비인간화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기쁨을 목말라하고 평화를 배고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또 한 번의 성신강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2、오늘 우리가 기뻐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신은 창조의 얼이실 뿐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약혹하신 진리의 영이시며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고 어둠만이 있었을 때 이 어둠에 싸인 물위를 감돌면서 만물을 생기게 하신 창조주의 얼이시며 진흙으로 빚어진 사삼의 코에 친히 당신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신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얼이시다.(창세기1ㆍ2、2ㆍ7) 또 이 성신은 예수께서 이 지상 생활을 마치시면서 끝내 사랑하시던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현존을 보증하기위하여 보내시기로 한 협조자이시다.(요한14、15、16、7)이 협조자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평화를 주시며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여 주실 분이시다.(14、26~27、16、13)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마음대로 말씀 하시지 않고 성부와 성자께 받으신 것만을 말씀하시고 알려주실 것입니다.(16、13-15)

3、우리는 오늘 복음과 독서에서 예수님의 약속이 과연 이루어졌음과 성신의 놀라우신 일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자기들이 철석같이 의지하고 따르던 주님을 잃은 사도들의 몸서리쳐지는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와 비슷한 공포를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목격하거나 우리가 직접 체험할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까지 걸어 잠가 버리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성령을 불어넣어주신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의 두려움은 가시어 평화가 깃들게 된다.(요한20ㆍ19-23)

또 첫 성신강림(오임절) 때는 사도들안에서 임하시는 성신의 놀라운 일은 유대아인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목격한 이방인들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사도행전2ㆍ1-11)

4、루까 성서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이 성신께서 초대교회 안에서 얼마나 활발하게 역사 하엿는가를 전하고 있다 이미 지적한바와 같이 성신을 받은 사람들은 방언을 하기도 하고(사도행전2ㆍ1~11)또 어떤 사람은 예언을 하기도 하고(동11ㆍ27) 스테파노에게 있어서는 성령의 힘이 지혜로 나타나기도 한다.(동6ㆍ5ㆍ10) 이 중에서도 가장 괄목 할 만한일은 성신께서 약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용기라 하겠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수난 때는 주님을 세 번 씩이나 배반할 정도로 마음이 약하셨지만 성령의 힘을 얻은 다음에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죽으셨다.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구세주시라는 것을 증언할 뿐 아니라 그것을 선포하기에 이른다.(4ㆍ1~22 5ㆍ17~42)스테파노 부제는 성신의 충만함을 힘입어 예수님께 관하여 열렬한 강론을 한 다음 장렬한 순교를 하신다.(6ㆍ8ㆍ~7ㆍ60)

5、오늘의 전례에서 바오로 사도 역시 성신의 선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여주신다. 우리가 특별히 명심할 것은 성신의 열매는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영적인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성신의 도우심 없이는『예수는 주님이시다.』소리마저 못하는 것이다.(꼬리토 전12ㆍ3)그리고 성신의 은혜(선물)는 다양할 뿐만 아니라다 한결같이 유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 같이 한 성신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꼬린토 전12ㆍ4~11)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라 봉사라든가 선물이라 하겠다.

성신 스스로가 성부와 성자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시는 선물이시고、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죽기까지 봉사하신 주 예수님의 봉사야말로 성신의 선물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우리가 할수 있는 모든 활동이 그 원동력을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아버지께 둔다면 이것 역시 성신의 은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즉 이렇게 다양한 성신의 선물이 우리 각 사람에게 나누어지는 목적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꼬린토전12ㆍ7) 한 분이 선 성령으로부터 받은 이 모든 선물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모셔야할 그 한분을 섬기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고 그분의 교회와 왕국을 건설하기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교회와 왕국은 서로 나눌 수 있고 함께할 수 있고 서로에게 봉사하는 공동체에서만 이룩되는 것이다.

6、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차다 하더라도 또 우리에게 해결의 묘안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오늘 우리 맘에 다시 일하시는 성신께 겸손되이 귀 기울이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순명하기만한다면 첫 성신강림 때 제자들이 체험한 그 평화와 그 놀라움을 우리도 오늘 여기서 체험할 것이다.

『주여、주께서 입김을 불어넣으시면 다시 소생하고 땅의 모습은 새로워집니다』

(시편104、30)

이한택 신부ㆍ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