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렇게 말씀을 전했다 - 베버 저「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통해 본 선교의 발자취] 4. 종현 고아원 방문

해설=최석우 신부ㆍ교회사연구소장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5-20 제 1155호 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국인의 종교적 소질 풍부함에 놀라
남녀 구별 위해 성당 중앙 가로지른 간막이가 이채로와
천주교에 대한 호의도 가난에는 무력
용산을 방문한데 이어 이튿날(3월 8일) 베버 총원장은 종현의 고아원과 서소문밖 약현의 성 요셉 성당을 방문했다. 고아원은 대성당으로 부터 불과 몇 발짝 거리에 있었다.

여기서 수녀들이 2백명의 소녀들을 기르며 가르치고 있다. 5명의 프랑스 수녀가 한국수녀들의 수련을 맡고 있다. 최소한 40명의 처녀들이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봉사에 온전히 헌신하고자 여기모여 있다. 이미 한국 수녀들은 6개 도시에 진출하여 매일같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원장수녀가 어린이들이 있는 방으로 베버 총원장을 안내했다. 거기엔 12~13세 가량의 30~40명의 소녀들이 긴 탁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소녀들이 만든 물건을 미국부인들이 즐겨 사간다고 한다.

소녀들은 모두 한복차림의 제복을 입고 있는데 방마다 제복이 달랐다. 처음 들어간 방의 소녀들은 초록치마에다 홍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베버 총원장 일행에게 한국식으로 인사하였다. 큰절이란 그 절차가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다. 이 절을 아름답고 정확하게 하려면 오랜 연습과 갖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멋진 절을 옳게 배운 딸은 어머니 못지않게 뽐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녀들에게는 이미 그들의 큰절을 보고 뽐낼 어머니는 없었다.

「순교자의 문」으로 불리는 서소문을 나오니 거기가 성 요셉 성당이 있는 곳이다.

곧 넓은 길이 끝나고 좁은 골목길이 시작되면서 주위에는 가난한 판잣집 뿐이었다. 한국사람은 이웃이나 중국사람보다 더욱 교적인 소질을 갖고 있다. 그러니 한국인의 그러한 높은 이상도 가난과 비참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천주교에 대한 호의 또한 가난에 억눌려 있었다.

고딕식 벽돌건축의 약현성당은 안팎으로 별로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지만 소박하고 깨끗하게 보였다. 남녀를 구별하기위해 성당중앙을 가로지로고 있는 간막이가 이채로왔다. 이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이 시대와 더불어 변천될 수밖에 없었다면 간막이는 한국교회의 영광스러웠던 시대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성당 좀 아래쪽에 여학교가 있다. 두 명의 한국수녀가 학교를 맡고 있다. 학교 옆에 오두막집이 서있다. 여기가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두수녀의 수도원이다. 그들은 가난한 이를 돕고자 이렇게 가난을 택한 것이다. 맞은쪽의 남학교는 더욱 빈약해 보였다.

「가난한사람이 복음을 들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의해 한국교회는 발전되었고 오늘날 9만의 신자를 가진 교회로 자랐다. 교회가 가난과 가난한 사람을 얻어 보지 못하는 날은 없을 것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또한 선교사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더라면 한국교회는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한국의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 선교사들이 피로써 싸워 얻은 종교자유의 덕택으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었다.

프로테스트교회는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재력의 지원을 받으며 돈을 마음대로 쓰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을 거느리고 있는 한 장로교 선교사는 가톨릭 선교사 46명 전체가 쓰는 것보다 더 많은 봉급을 받고 있다. 가톨릭은 돈이 없어서 최근 30개 학교의 문을 닫았다. 프로테스탄트는 이미 20여만명, 이렇게 불과 수십년 사이에 가톨릭을 앞지른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해설=최석우 신부ㆍ교회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