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말씀을 심는다 - 일선 전교사의 체험기] 80. 카네이션 한 송이/김 이사벨라 수녀 17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5-13 제 1154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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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실패,술집 여자로 전락한 한 여인
밤새만든 딸의 카네이션 외면했으나…
딸의 영세로 다시 옛날의「어머니」로 돌아와
해마다 5월이 되면 누구나 꿈이 가득한 어린이들을 생각하고 그 꿈을 키워줄 바다처럼 넓고 충만한 어버이의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난 이제 그 넓고 포근한 어버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청순한 꿈도 소망도 갈기갈기 찢겨져 버리는 사랑에 굶주린 어린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까이서 더욱 가까이서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 비가 안 오면 물이라도 주어야 그 곡식은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도 각 곳에서 저수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그들의 성장에비의 역할과 같은 부모님의 손길을 그들은 이미 잃어 버렸기에 그들은 이미 잃어 버렸기에 그들은 저수지의 물이 나마 간절히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목마름에 지친 가엾은 영들을….

그보다 따뜻한 부모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의 갈망에 찬 시선을…. 얼마나 자주 내 마음을 울려주었던가

어버이날로 결정되기 전 5월 8일 어머니날 이었다. 일을 마치고 챠트를 정리하는데 무엇인가 예감이 이상해서 창문을 보니 14살짜리 영미가 흰 백합꽃을 한 아름 안고 한손엔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 한 송이를 따로 들고서 있는 게 아닌가.

난 가만히 보고 있었다. 몹시도 창백한 얼굴의 영미와 들고 있는 순결한 백합꽃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영미도 막상 꽃을 들고는 왔지만 나에게 건네줄 용기는 없었는지…아니면 자기엄마에게 드릴 꽃 이었기에 더욱 내놓기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아뭏든 영미는 꽃을 꼭 안고 서있었다. 난 정말 영미의 꽃을 받을 자격이 없을뿐더러 그 꽃을 사양하고 싶었지만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그 애의 슬픈 눈망울을 의식하고「영미야 이 꽃 참 예쁜데 나 정말 받아도 되는 거니?」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애썼다.

영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꽃을 건네주었다. 「그래 영미는 오늘 어머니께 꽃 달아드렸어?」

그녀는 눈을 아래로 깔며 머리를 옆으로 흔든다. 「음, 왜 엄마는 영미 하나만을 위해 고생하시는데…오라! 엄마께서 어디를 가신게로구나 그 꽃을 들고 있는 것 보니…」그녀는 말이 없었다.

난 그녀를 데리고 성모상 앞에 갔다. 그리고 그 꽃을 성모님께 부담 없이 드리며 동시에 영미를 성모님께 바쳐드렸다. 외로운 영미의 마음속에 성모님의 풍성한 사랑을 구했던 것이다.

얼마 후 영미는 입을 열었다「저는 어제 밤 밤을 새워 이 꽃을 만들었어요. 제가 만든 꽃을 엄마께 달아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나 엄마께선 술이 고주가 되어 늦게 들어오시고 내가 일어나기도전에 일찍 나가셨어요.

수녀님 엄마는 변했어요.

매일 매일 화장을 짙게 하고 술을 마시고, 그리곤 남의 집 빨래나 설음질을 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하셔요」

「영미야, 너는 뭔가 엄마를 오해하고 있어. 영미도 크면 알겠지만 여자란 누구나 화장을 하는 법이란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아주는 걸 어떡해. 그리고 엄마는 정말 일이 많아서 일거야」난 영미와 남아있는 빵을 같이 먹으며 이야길 했다.

몇 끼 째 건빵 한 봉지씩 사서 끼니를 이었다는 불쌍한 영미. 난 문득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임신중독으로 온몸이 통통 붓고 호흡이 곤란해 우리병원에 입원하여 생명을 겨우 건졌던 그를….

그의 말에 의하면 영미 아빠는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바람을 피우며 얼마 전엔 범행을 저질러 감옥에 들어간 있다고 했다.

영미 아빠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그의 오빠께선 기어이 이혼까지 하게했다며 그는 임신한 아기까지 없애려다 병까지 얻었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그는 추운겨울에도 거리에다 미심을 놓고 오고가는 노동자들의 옷을 누비며 삯바느질을 했었다. 난 자주 귀엽고 영리한 영미를 봐서라도 용기 내어 살자고 격려했었다.

그러한 그가 외로움에 못 이겨 타락했단 말인가. 난 영미의 말만을 듣고 뭐가 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으며 그렇다고 이것저것 세밀히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난 그날 영미에게 내가 영미와 같은 나이에 성당에 나갔던 일을 이야기해주고 성당에 나가라고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난 좁은 골목길에서 영미 엄마와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자 어디로 숨으려하더니 안되겠는지 인사를 하는데 난 도대체 그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은 성형수술을 해서 더욱 커지고 긴 속눈썹을 달았으며 머리모양이며 사치스런 옷차림. 그는 눈을 가리려고 손을 드는데 매니큐어를 칠한 그의 뽀족한 손톱이 왜 그렇듯 추해보였을까. 한마디로 천박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난 그러한 단장을 하는 여성의 미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의 그러한 모습에서 한없이 깨끗하고 순결한 영미의 아픈 마음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 일거다.

난 영미의 카네이션 이야길 했다.

「아무리 바쁘셔도 어머니날 꽃을 달아 줄 기회는 마련해주셔야지요」

「수녀님 다 알고 있었어요 영미는 지금도 나를 증오하고 있어요. 돈 좀 더 벌려다 이렇게 되었지요.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지요. 시장바닥에 앉아 미싱을 돌려야하겠어요」

그 후 영미는 너무도 성당에 열심히 다니며 어머니도 같이 성당에 다니겠다는 약속을 받고 영미혼자 영세를 받았었다.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