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요한 바오로 2세 첫 회칙 - 인류의 구원자] 2. II. 구속의 신비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4-22 제 1151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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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와 방향은 그리스도여야 
과학의 발달은 더욱 복음을 필요로해
7. 그리스도의 신비안에서

금세기의 공의회가 교회의 나아갈 길을 설정하였고 故 교황 바오로 6세께서 그분의 첫 회칙에서 지적하신 길은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 모두가 따라야할 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이 새로운 단계에서 우리는 마땅히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떻게 어떤 방도로 이 길을 계속하여야 하는가? 다가오는 2천년대의 종막과 연관된 교회의 이 새로운 대림절에 성서가 「영원한 아버지」(Pater Futuri Saeculi)라고 일컫는 분에게 보다 가까이가기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몇 번이나 내리신『내 어린양들을 잘 돌보아라』-이 말씀은 나의 양떼의 목자가 되라는 뜻이다. -는 명령과 다시『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다오』하신 영령에 해당하는 부르심을 입어 새 교황이 신앙과 순종의 정신으로 그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마당에서 필히 자신에게 제기해야 하는 근본 되는 질문이다

사랑하는 형제들과 자녀들이여. 이 질문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정신은 한곳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의 지성과 의지와 마음이 향할 유일한 방향은 우리구원자 그리스도. 인간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분 외에는 아무에게도 구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베드로처럼『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읍니까?』라는 말씀을 거듭드리면서 그분을 향하여 서고자한다. 교회의 의식(意識)을 통해서 이 자기의식의 모든 지맥(支脈) 을 통해서 교회가 자신을 표현하고 발견하고 확인하는 모든 활동분야를 통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을 목표로 삼아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다.

그분은 「머리」이시며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며』『길이요 진리』이시자『부활이요 생명』이시며 그분을 뵈오면 곧 아버지를 뵙는 것이요. 협조자가 우리에게 오시어 진리의 성령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게하기 위하여 십자가상의 죽음과 하늘로 오르심으로 떠나가셔야 했다. 그 분에게『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고가 감추어져 있고』교회는 바로 그분의 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사와 비슷하다. 즉 교회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전 인류의 깊은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주는 표지이요 도구인 것이며』이 일치의 원천이 그분. 바로 구원자이신 그분이다.

교회는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기를 그치지 않는다.

교회는 그 말씀을 끊임없이 재독(再讀)한다. 교회는 크나큰 신심을 갖고서 그분의 생애의 세밀한 면을 일일이 복원(復元) 시킨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베드로와 함께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십니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건넨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인간으로서도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분의 생애. 그분의 인간성. 진리에 대한 충실. 만인을 포용하는 사랑이 말을 한다. 나아가서 십자가상의 그분의 죽음-그분의 고난과 자기포기의 불가사의한 발자취- 이 말을 한다. 교회는 그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그분이 부활을 회상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그것을 교회의 일상생활의 내용으로 삼는다.

또한 교회가 끊임없이 성찬을 거행하고 거기서『생명과 거룩함의 샘』을. 은총과 하느님과의 화애의 표지를.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발견하는 것도 교회의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친명(親名) 을 받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살며 지칠 줄 모르고 그 신비에 부착하며 자기의 스승이시요 주님이신 분의 이 신비를 인류. 즉 민족들과 국가들, 연이은 세대들과 인간개개인에게 가져다 줄 방도들을 모색한다. 이것은『내가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 달리신 그리스에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고 한 사도의 말씀을 다짐하는 것이라 하겠다. 교회는 교회생활과 사명의 근본원리가 되어 온 구속 신비의 테두리를 떠나지 않는다.

8. 구속은 새로운 창조

세상의 구원자! 창세기에서 천지창조에 관해서 이야기하며 몇 번이나 거듭하여『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고하던 창조의 근본진리가 그분에게서 새롭고 훨씬 놀라웁게 계시되었다.

善은 지혜와 사랑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느님이 사람을 위해서 만드신 세계. 죄가 들어오자『제구실을 못하게 된』可見的 세계는 본래 지녔던 지혜와 사랑이신 신적원천과의 유대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회복하였다. 참으로『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다』이유대가 인간 아담에 의해서 꾾어 졌듯이. 이유대가가시 이어진것도 인간그리스도에 의해서였다.

20세기에 사는 우리야말로『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것』과『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있다』는것과『피조물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었다』고한 사도의 웅변적인 말씀들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것이 아닐까?특별히 금세기에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영역에서 이루어진 전대미문의 거창한 진보가 또한 피조물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찌기 들어본 적이없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밝혀보이고 있지않는가? 급속한 공업화 분야에서 벌어지는 자연환경 오염의 위협이라든가. 끊임없이 거듭 발생하는 무력충돌 이라든가? 원자탄 수소탄 중성자탄 및 이와 유사한 무기들의 사용으로 자멸할지도 모르는 전망 등 몇가지 현상들만 지적해도 충분하다.

새 시대를 맞는 세계 우주여행의 세게 과학과 기술 공학상으로 미증유의 성과를당성한 세계를 동시에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있는』세계.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 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세계가 아닐까? 「현대세계」를 예리하게 분석하면서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인간이라는 가견적 세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에도 달하였다. 그리스도처럼 인간의식의 심층에 뚫고 들어가고 인간의 내면의 신비에 접함으로써 성서와 성서외의용어로「마음」이라고 표현하는 그 실재에 도달한 것이다. 세상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하고 일회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신비속으로 관통해 들어가셨고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신 분이시다.그래서 제2차「바티깐」공의회이 다음가르침은 참으로옳은것이다.

『사실 혈육을 취하신「말씀」의 신비를 떠나서는 인간의 신비가 참되게 밝혀지지 않는다. 첫째 인간 아담은 미래의 인간 즉 주 그리스도의 표사이었다.(로마5 ㆍ14)새 아담 그릿도는 성부와 그 사람의 신비를 알려주는 그 啓示로써 인간을 인간에게 완전히 드러내보여 주시고 인간이 높이 불리 웠음을 밝혀주신다.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골로1 ㆍ15)이신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아담의 후손들에게 최초의 범죄 때부터 이지러졌던 하느님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지만 소멸시키지 않으셨으므로 우리 안에서도 인간본성은 자동적으로 고상한 품위에 까지들어 높여졌다. 성자께서는 당신의 化身으로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모든 사람이 일치시키신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 일하시고 인간의 지력으로 생각하시고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시고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시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심으로써 우리종의 한 사람이 되셨으며 죄를 빼고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셨다』그분이 바로 인간의 구원자이시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