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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심는다 - 일선 전교사의 체험기] 79. 감동ㆍ충격ㆍ아픔/김 이사벨라 수녀 16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4-15 제 115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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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로 감동ㆍ충격ㆍ아픔 느끼는「소년의 집」
잃었던 아들 찾아 기뻐하는 어머니 모습에 목메여
날로 향상 돼가는 아이들보며 하느님 은총에 감사
이곳엔 항상 새로운 일이 전개된다. 마음속 가득 감동과 충격을 받을 때도 있었으나 그보다 짜릿한 아픔을 그들과 함께 체험할 때가 더 많았다. 난 이안에서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이들의 어린 가슴에 지탱할 수 없었던 심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 마음속깊이 용솟음치는 선과 악의반응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그러기에 이 어린영혼 속에 신앙을 불어넣어 앞으론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강박의식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솔직이 난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주께선 당신 양들을 내게 맡기셨으니 무엇인가 해야 했으나 그저 마음만 분주할 뿐이었다. 그럴 때면『말따야 말따야 넌 왜 여러 가지 일에 마음 쓰느냐 중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했다.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내고 남아있는 아이들과 게임을 한다. 그러나 난 게임도중 내가 낭독할 묵상준비를 생각한다. 또 아이들 교리수업도 준비해야하고 내일이 아이들 목욕날이니 떨어진 옷도 기워야한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이학교에서 돌아온다. 그러면 난 그 재잘거림 속에 파묻히게 된다.

그때였다. 『수녀님 우리아들 좀 찾아주소 내 앞으로는 성당에 열심히 댕길 꺼구만요 제발우리아들 좀 찾아주소』아들을 잃어버려 초조와 긴장으로 얼룩진 아주머니의 울부짖음이다. 『아주머니 아이 찾는것과 성당에 나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성당에 안나가셔도 아이만 찾으면 마땅히 돌려드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인걸요』『수녀님 글쎄 내가 죄를 받는 갑소 내가 엘리사벳이란 본명으로 영세한지가 5년이나 됐어요. 그런데 남편 없이 먹고사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성당에 안 나간지 3년이나 되었다오. 아마 내가 벌을 받는 갑소.』『아니 철아 이놈아 철아』한창 넋두리에 여념이 없던 아주머니가 어느새 멀리서 축구하는 아이 한명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얼싸안고 그냥 흐느껴 운다.

멀리서 모자의 상봉을 지켜보는 나의 눈에도 눈물이 핑돌았다. 『수녀님 약속했지예. 내 꼭 성당에 나가 예수님께 용서를 빌랍니다. 철아 너도 약속하자. 어머니랑 같이 꼭 성당에 나가겠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철이의 얼굴엔 엄마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잔뜩 서려있었다. 난 한참서서 사라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기도 전에『야 이자슥아 빨랑 들어가지 못해』하는 소리에 돌아다보니 파출소 순경이 3명의 아이를 각각 다리한쪽씩을 묶은 채 줄을 붙잡고 강아지처럼 몰고 왔다.

이들을 끌고온 순경아저씨도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이마엔 땀이 비오듯했다. 애들이 밤새껏 파출소에서 얼마나 반항을 하고 유리창을 모조리 깨트리고 해서 차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그냥 끌고 왔다고 했다. 『아저씨 이 묶여진 발 좀 풀어주세요.』『얘 너희들이 갈집은 저기 파란 대문 있는 집이야. 이왕 왔으니 순순히 가라』

그들은 순한 양처럼 묵묵히 걸어 들어왔다. 『거참 이상하단 말야. 그렇게 난동을 부리던 놈들도 여기만 오면 저렇게 고분고분해지니….수녀님은 혹시 유도나 태권도라도 배워서 애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난 빙긋 웃고 말았지만 그때마다 마음속 깊이 하느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드린다. 사실 이들은 놀랄 만큼 변하고 있고 천진한 소년답게 열심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