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어디까지 와 있나? - 해외 교포 사목 시찰기] 1. 해외 교포들의 신앙 현실

박정일 주교ㆍ제주교구장ㆍ한국 주교회의 해외교포 사목부담당
입력일 2011-04-18 수정일 2011-04-18 발행일 1979-04-08 제 1149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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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엔 난점 없고 독일에선 영세자 늘어 
교포 사목엔 국내 신자들의 관심 요망돼
1978년 춘계 주교총회에서 나는 해외교포 사목부 담당주교로 선임되었다. 해외교포 사목부는 전국가정 사목부 및 이향 신자 사목부와 더불어 한국 주교회이 산하의 특별 사목부의 하나다. 한국 교포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산재해 있음에 비추어 그들을 특별히 돌봐야하는 한국 교회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설정된 부서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현재 한국교포는 일본과 북남미를 비롯해서 구라파 전역과 중동. 호주 등 거의 안가 있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여러 나라에 많이 나가있다 그리고 교포가 가있는 곳에는 어디나 신자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들은 신자생활을 하면서 전교에도 대단한 열을 올리고 있다. 해외교포들은 언어가 잘 통하지 않고 풍속이 다른 타국에서 살기 때문에 나라 안에 사는 우리들이 미처 상상도하지 못하는 많은 영성적 어려움을 겪어가며 살고 있다. 그래서 모국교회는 그들을 특별히 돌봐주어야 하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신부파견과 기타 여러 가지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해외교포 사목부를 담당한 후부터 선임 주교님(윤 대주교님)의 말씀과 직접 서신연락을 통하여 해외교포 사목의 실태파악에 노력을 기울였고 또 사무 처리를 해왔다. 교포사목에 종사하고 계시는 여러 신부님으로부터의 사무적인 서신연락을 비롯하여 많은 교포신자들로부터 보내오는 서신도 끊일 날이 없었다.

그러나『百聞이 不如一見』이라는 우리 격언같이 서신 연락만으로는 도저히 교포사목의 확실한 실태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 담당 주교로서 실제로 교포사목을 맡아 수고하고 계시는 우리 신부님들과 교포신자들을 한번 찾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작년 10월 중순부터 12월 초까지 약 1개월 반 동안 구라파지역 특히 우리교포가 많이 살고 있는 독일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이제 간단히 지상을 통하여 이번 교포사목 시찰기를 소개하면서 교포사목에 대하여 국내 신자 여러분이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나아가서 시급한 이 문제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많은 협력이 있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순서를 따라 지역별 방문기. 그리고 결론적으로 해외 교포사목에 관한 전반적 문제점 및 애로사항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1、生活 어려운 로마

작년 10월 19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출발하였다 북극을 통하여 직행한지라 20일 정오에는 이미「로마」에 도착하였다. 마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등극 미사가 22일(주일)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에서 거행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참석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다. 「로마」에는 현재 백여명의 신자가 살고 있다.

유학중인 신부님이 30명이나 되며(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신부님이 로마에 유학하기는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신학생이 5명 수녀님이 11명 전교사가 3명 그리고 남녀 평신도가 약 80명이었다. 그들은 가톨릭 한인회를 조직하여 매월 정기적으로 한번모여서 미사를 봉헌하고 서로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인회의 지도는 유학중인 신부님들 중에서 한분이 선출되어 일년씩 그 책임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선출된 지도신부는 공부하는 입장에서 그 책임을 지게 되니 공부에 상당한 지장이 있긴 하지만 필요한 사목적 배려라고 생각되었다. 작년 일년은 제주교구 김창훈 신부님이 수고를 했고 금년은 서울교구 차인현 신부님이 그 책임을 지고 있다.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나는 유학중의 신부님들을 한자리(포교성성 성 바오로 신학원)에서 만날 기회(김 추기경님과 함께)를 가졌고 수녀님들과도 동석할 기회가 있었으며 로마근교「후라스까띠」라는 휘콜타테 운동 본거지에 있는 사제학교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한국 신부님들과 신학생들(합하여 7명)을 방문할 기회도 가졌다.

그리고 29일 주일에는 마침 한인회 월례회가 있어서 주 바티깐 한국대사이신 신 대사님을 비롯하여 약 50명의 신자들이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기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이태리 내에는 교포사목에 큰 애로점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교포사목의 문제점이라면 주로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애로점 해결을 들 수 있는데 로마에는 한국 신부의 수효가 많다보니 신자들이 신부님들의 지도를 받는 일이나 성사를 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 이다.

그리고 교포신자들이 대부분 학생이거나 외교관 가족 아니면 무역상사 직원 가족들이고 보면 사회생활면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는 층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앞날의 사목활동을 목표로 면학에 여념이 없는 30여명의 신부ㆍ신학생ㆍ교리교사 및 수녀님들에게는 면학생활에 있어서도 경시할 수 없는 경제조건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는 듯하였다. 포교성성에서 지급되는 장학금이 충분한 것이 못되어 매우 어려운 형편이면서도 동료들은 사목일선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유학까지 나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 처지이고 보니 고충을 솔직이 털어놓기조차 어려운 것이 우리 유학하는 신부님들의 솔직한 심정인 것 같았다. 신학생과 교리교사들의 생활실정은 더욱 어려운 듯하였다.

2、西獨 교포 20%가 信者

이번 나의 시찰여행의 본 목적지는 독일이었다. 왜냐하면 독일에는 한국 교포가 1만여명이나 살고 있고 우리 주교회의에서 교포사목을 위하여 파견한 신부 수만 해도 6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독일에 우리교포가 많이 살고 있는 것은 우리정부의 인력수출정책에 의한 것이다. 1963년 12월 2백47명의 한국광부가 서독광산에 취업하기 위하여 서독에 진출한 것을 효시로 1965년부터는 많은 간호원이 또한 서독병원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들은 3년 계약기간으로 일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계약기간을 연장하여 더 오래 체류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장기체류가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서독에 체류하고 있는 우리 근로자들은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사람들과 이미 장기체류가 허용되어있는 일부 사람들이다. 서독체류 5년 이상이 되는 근로자에 한해서는 본인이 원하는 장기체류를 허가한다는 것이 현재 서독정부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방침이다. 그리고 서독정부에서는 앞으론 더 한국 간호원을 취업시키지 않을 방침이며 광부는 도리어 한국 정부에서 더 이상 파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서독체류 5년 미만인 우리 근로자들이 계약기간이 끝나서 귀국하게 되면 실지로 한국의 서독 인력수출은 이제 막을 내리게 되는 셈이다. 지난 15년 동안 독일에 진출한 우리 근로자수는 간호원이 약 1만명 광부가 약8천명. 그리고 기능공이 약 1천명으로 도합 약1만9천명이 된다. 현재 취업중인 근로자는 간호원이 4천9백명 광부가 1천3백명 기능공 및 긴타 근로자가 약 1천3백명으로 도합 약 7천5백명이 된다고 주독 대사관 노무관은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학중인 학생들과 외교관 가족 무역상사 직원 등을 합하면 현재 서독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교포 수는 대개 1만명으로 추산이 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ㆍ3년내로 계약기간 3년이 끝나는 간호원과 광부들이 귀국하게되면 서독 거주 한국인수는 대개 현재의 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인다.

그러면 가톨릭신자의 현황은 어떠한가? 확실한 통계숫자는 알아 볼 도리가 없다. 대개 사목을 담당하고 계시는 신부님들의 보고를 종합하면 약 2천명으로 추산이 된다. 그러니까 독일거주 교포 전체의 약 15내지 20%가 신자라는계산이 나온다. 국내의 신자비율 3%에 비하면 대단히 높은 비율이다. 이것은 신자들의 해외진출이 많다는 것과 기독교 사회인 구라파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된다. 실지로 교포사회에서 많은 영세자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가、아욱스부르크

독일의 남부지방을 바이에론 지방이라고 부른다.

나의 독일교포 사목시찰은 이곳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뮌헨대교구에 이철우 신부님(부산교구)과 아욱스부르크 교구에 백남익 신부님(대전교구)이 계시면서 교포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처음으로 들린 곳이 아욱스부르크 교구였는데 그곳 교포 수는 불과 30명 정도 밖에 안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간호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계약기간 만료로 귀국하였기 때문이다.

바이에론 지방의 주 정부 시책에 의하여 한국 노무자들이 북독에서 보다 빨리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한때 한국간호원 들이 많았을 때는 교포신자들의 활동이 활발하였으며 따라서 그곳 주교님께서 특별히 한국교포를 위하여 한국의집을 마련해 주시는 등 많은 관심과 원조를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거기에 국내에서도 부족한 신부님이 전담으로 계시면서 한국 교포만을 위해 일할 만한 처지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거기에 계시는 백 신부님은 대전교구와 그곳 교구와의 특별한 관계로 어떤 소도시의 정식 본당 신부로 계시면서 겸사겸사 한국교포를 돌보고 있다.

박정일 주교ㆍ제주교구장ㆍ한국 주교회의 해외교포 사목부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