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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ㆍ남미 주교총회 교황 개막연설 전문] 5. 정의를 위한 활동은 복음선교의 기본요소

입력일 2011-04-15 수정일 2011-04-15 발행일 1979-03-18 제 114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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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문제의 관여는 인간에 대한 봉사
형제적 일치안에서 임무수행해야
인권수호는 복음적 참여를 통해서
이것은 복음과 어린 양의 살과 피、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들 가운데서 살아계시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일치입니다.

위의 세 가지는 모두 서로 다른 상징이긴 하지만 이들 모두는 그리스도가 우리가운데 현존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들입니다.

사랑하올 형제 여러분、여러분은 총회에서 목자들의 이 일치를 체험할 참으로 귀중한 기회를 가지셨읍니다.

총회자체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일치의 상징이며 또 결과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뤄야할 보다 밀접하고 견고한 일치를 위한 시작이며 사전 준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형제적 일치의 분위기 속에서 일을 시작하십시오. 지금당장 이 일치가 복음 선교의 구성요소가 되도록 해야 하겠읍니다.

②사제들과 수도자 및 평신도의 일치ㆍ주교들 간의 일치는 사제들과 수도자 및 평신도의 일치에까지 확장돼야 하겠읍니다. 사제들은 주교의 사목활동에 있어 가장 가까운 협력자들이며 만일 주교와 사제들 간에 밀접한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주교의 사목활동은 손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남녀 수도자들 역시 이 일치에 있어 특히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라띤 아메리카대륙의 과거와 현재의 복음 선교에서 그들이 이바지해온 공헌을 잘 기억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신대륙발견의 여명기에 이곳에 왔으며 거의 모든 나라에 첫발을 내디뎠읍니다. 그들은 여기서 교구소속 성직자들과 계속 함께 일했읍니다. 그래서 현재 일부 국가에서는 사제들의 반수이상이、또 다른 나라에서는 절대다수가 수도회소속 사제들입니다.

이것은 곧 세계 어느 지역에서 보다 이곳의 수도자들이 그들 주교와 목적과 활동에 있어 견고한 일치를 이루고 또 성실히 이를 추구하는 것이 그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교들에게 주님은 양떼를 부양할 사명을 맡기셨으며 수도자들에게 그 사명은 복음 선교에 대한 길잡이 표적을 새기는데 달려 있읍니다. 그래서 주교들에게 수도자의 책임감 있고 능동적이며 동시에 양선하고 믿음직스런 협력이 결여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곧 수도자들의 협력은 자신들을 복음의 봉사에 더한층 맞갖은 행동가가 되게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교회 공동체 내의 모든 사람은 교회의 교도직과는 다른 권위에의 굴복은 피해야 할 의무가 있읍니다. 왜냐하면 그 같은 권위은 교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사목적으로도 그 바탕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들 역시 하느님의 왕국을 확장하는 일에 개별적으로 참여하든 혹은 사도직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든 이 일치의 주체들입니다. 그래서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여러 가지 할일과 매일의 임무를 수행하는 속에서 합법적인 사목자들과 일치하여 또 그들에 순명해서 이 세상을 그리스도께 봉헌해야할 사람들은 바로 평신도들입니다. 우리는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에 일치해서 하느님백성의 순례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이들 간에 이루고 있는 교회적일치의 고귀한 선물을 수호해야 하겠읍니다.

Ⅲ인간존엄성의 수호자와 촉진자들

①교회 역사에 정통한 사람들은 하느님이 자기들에게 맡긴 사람들의 인간 존엄성을 용감하게 수호하고 또 촉진시키기 위해 과감히 노력했던 위대한 주교들이 모든 시대에 걸쳐 존재해왔음을 잘 깨달을 것입니다. 주교들은 항상 주교의 사명으로 그렇게 하도록 재촉을 받아 왔읍니다.

왜냐하면 주교들은 인간존엄성이 창조주께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아니고서는 결코 가볍게 취급될 수 없는 복음적 가치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존엄성은 생명이나 기본적 재산권 육체 및 정신적 결합 신앙고백의 권리나 자유등에 관한 가치가 존중되지 않을 때 개인적 차원에서 침해를 받게 되며 또 인간이 참여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불법적이고 부당한 강제를 당하거나 혹은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고문을 당하게 될 때 사회적 또는 정치적 차원에서의 침해를 받게 됩니다.

저는 오늘날 라띤 아메리카 대륙 내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산적돼있는지 잘 알고 있읍니다. 주교들로서 여러분은 이들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의 존재에 특별한 그처럼 광범하고 중요한 분야를 고려해서 복음 선교와 인간 발전이나 해방간의 관계 혹은 의미 등을 신중히 반성하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읍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와 인간에 관한 진리를 언급하면서 취급해온 주제들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됩니다.

②만일 교회가 인간존엄성을 수호하고 촉진시키는 일에 참여한다면 교회는 그 사명에 따라서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명이 비록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이 아닌 종교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교회는 인간을 그 존재 전체로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모든 인간적 필요에 주의를 기울여야할 본보기를 제시 하셨으며(루까 10장 29절 참조) 또 최후심판 때 자신을 병들고 옥에 갇히고、굶주리고 외로운 처지에서 도움을 받아온 사람과 동일시하겠다(마태오 25장 31절)고 말씀하셨읍니다.

이들 복음과 또 다른 복음(마르꼬 6장 35~44절 참조) 말씀속에서 교회는 정의를 위한 활동과 인간 발전을 위한 임무를 복음 선교 사명의 기본요소(1971년 10월 주교 시노드 최종 교서 참조)로 삼아왔읍니다. 또한 복음 선교와 인류 발전 간에는 인간학이나 신학 또는 사랑이 밀접히 인연을 맺고 있으며(에반젤리이 눈씨안디 31 참조) 그래서『만일 복음 선교가 복음과 인간의 구체적 생활과의 관계 즉 복음과 개인적 사회적 생활 사이에 지속적으로 있는 상호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완전한 복음 선교라고 할 수 없다.』(에반젤리이 눈씨안디 29)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또 인류의 진보나 발전、정의나 개인의 여러가지 권리등과 같은 현세적 문제에 교회가 관여하는 것은 항상 인간에 대해 봉사하기 위한 것이며 교회는 인간을 교회가 받아들이는 인류학의 크리스찬적 비젼 속에서 고찰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의 해방안에서 협력하고 수호하며 또 사랑하기 위해서 이데올로기 적인 제도에 의지할 필요가 없읍니다. 즉 교회는 자신이 그의 전달자이며 보관자인 메시지의 중심에서 모든 류의 지배와 노예제、차별、폭력、인간에 대한 침범과 종교 자유침해 및 생명을 공격하는 그 어떤 것을 대항해서 정의와 평화 그리고 형제애를 실천키 위한 영감을 발견합니다.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26ㆍ27ㆍ29참조)

③그러므로「인류의 전문가」(1965년 10월 4일 UN에서 행한 바오로 6세의 연설)인 교회가 인권을 수호하는 일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통해서도、또 편의주의를 통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복음적 참여를 통해서이며 바로 그리스도께서 나타내 보이신 것처럼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위탁에 충실함으로써 교회는 경쟁적인 제도에 대해 자유스럽게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곧 인간만을 위한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고통이나 불행이 그 무엇이든 그것은 폭력이나 권력의 상호작용 혹은 정치제도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보다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에 관한 진리를 통해서 입니다.

④그러므로 교회는 고유성이라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전력해 왔읍니다. 이것의 증거가 그리스도교 1천년 동안에 나타난 교부들의 저술들입니다.(성 암브로스데 나부데 C12ㆍN53:PI14ㆍ747).

이것은 수없이 많이 되풀이해온 토마스 아퀴나스의 강력한 가르침에서 명백히 나타나 있읍니다. 우리들 시대에 교회는 최근 교황님들의 사회회칙과 같은 광범위한 교서들에서 그와 동일한 원칙들을 밝혀왔읍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회칙「민족들의 발전」에서 이 문제를 특별히 그리고 깊이 지적하셨읍니다. (노스23~24、어머니와 교사106 참조). <계속>

<푸에블라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