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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ㆍ남미 주교총회 교황 개막연설 전문] 2. “예수는 정치인도 혁명가도 아니다”

입력일 2011-04-15 수정일 2011-04-15 발행일 1979-02-25 제 1143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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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통한 완전한 구원이 주의 사명
확고한 신앙으로 세계와 역사 앞에 주 고백해야
그리스도의 신비 등한시 경향 경고
③ 그 다음 우리는 사도 베드로께서『당신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아들』(마레오 16장 16절)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는 확신을 가지고 세계와 역사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하겠읍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기쁜 소식에 의해서 또 이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읍니다. 즉 교회는 어떤 국가나 문화 종족이나 시대 그리고 연령이나 지위의 구별 없이 모든이에게 제공해야할 그 모든 것을 바로 이 기쁜 소식에서 이끌어냅니다. 이런 까닭에서『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부터 하느님 백성과 구원의 거룩한 역사는 새로운 요청을 떠맡지 않으면 안 됩니다.』(1978년 10월 22일 교황즉위식에서 행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연설)이것은 하나인 복음이며 그리고 바오로사도께서 너무나 명백하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갈라디아 1장 8절)『우리들이나 혹은 하늘의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설교한 것과 위배되는 복음을 가르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야할 것입니다.』

④ 실로 오늘날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복음을 다시 읽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읍니다. 이 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만 이 같은 현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하거나 혹은 복음에 진정으로 위탁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론적인 사색의 결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 현상들은 교회 신앙의 중심적인 기준에서 이탈됨으로써 혼란을 야기시키고 또 일부 사람들은 뻔뻔스럽게도 이런 현상을 교리교육이라는 미명아래 크리스찬 공동체에 침투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간혹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이 침묵 속에 무시되거나 또 실지로 몇몇 사람들은 교회의 신앙과 모순되는 임의적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하느님과의 왕국과 사랑을 선포한 단순한 한 예언자일 뿐 하느님의 참 아들이 아니며 따라서 바로 그 복음 메시지의 중심도 또 목적도 아닌 것으로 간주 됩니다. 또 다른 경우에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로마 제국 위정자들과 그들의 압박에 대항해서 투쟁한 정치적인 인물이나 혹은 계급 투쟁에 가담한 사람으로 내세우려주장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정치적인 인물이나 혁명가 또는「나자렛」에서온 위험인물로 취급하는 것은 교회의 교리교육과는 부합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사람들은 예수 자신의 마음가짐과는 전혀 다르게 예수를 고발한 자들이 꾸며낸 교활한 간계를 혼동함으로써 예수의 죽음을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해석하는 나머지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주님의 마음이나 자신의 구속 사명에 대한 의식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치 않읍니다.

이에 대해 복음들은 예수가 야훼의 종으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바꾸려는 그 어떤 것도 하나의 유혹(루까 4장 5절) 이었읍니다. 그는 하느님의 일을 단지 정치적인 일과 혼합한 자들의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마테오 22장 21절ㆍ마르꼬 12장 17절ㆍ요한 18장 36절)

그는 폭력에 의지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의 회개의 메시지를 세리(稅吏)들도 빼놓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개방합니다. 그의 사명에 대한 전망은 더욱 더 심오합니다. 그것은 곧 화해하고 용서하며 평화를 건설하고 변화시키는 사람을 통한 완전한 구원에 있읍니다.

더욱이 이 모든 것은 자기의 보잘것없는 형제와 가난한 사람、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노약자등 한마디로 그들 생활에서 주님의 슬픈 얼굴을 나타내 보이는(루멘겐씨움ㆍ8)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봉사하기를 원하는 크리스찬에게 강력히 요구되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⑤ 그러므로 복음을 재독(再讀)함과 이로부터 흘러나오는 화려하고 연약하며 또 모순된 가정(假定)들에 대처해서「라띤 아메리카 현재와 미래의 복음화」는 결코 교회의 신앙을 확인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즉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인(에반젤리이 눈씨안디 19ㆍ27) 자신의 신비와 구원의 능력을 통해 자신을 인간에게 제공하시고 또 인간과 가까이 계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여러분의 역사에 충만한 신앙이며 또 이 신앙은 여러분의 신앙인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형성케 했읍니다.

그래서 이 신앙은 그들 미래의 동력(動力)이 되는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해 계속 보존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또 통합의 강력한 인자(因子)가 돼온 교회가 이 희망의 대륙에서 전쟁의 위험을 몰아내야 할 조화와 일치의 성소(聖召)를 나타내는 신앙이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신앙은 라띤 아메리카 모든 신자들이 활력 있고 다양한 그런 방법으로 자신들의 종 생활과 대중 신심을 통해서 표현하는 그런 신앙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 대한 이 신앙과 또 교회의 가슴 속으로부터 우리는 형제자매들과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로부터 복음이 그들의 문화 속에 전파되고 사람들을 변화시켜 마침내는 각종제도와 구조들이 보다 인간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겠읍니다.

교회의 신앙과 어긋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에 대해 침묵을 지키거나 등한시 하거나 훼손하는 어떤 형태도、또한 불충분하게 강조하는 것 등은 복음화의 올바른 내용이 될 수 없읍니다. <계속>

<푸에블라ㆍ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