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세기의 전통을 깨고 비이탈리아인으로서 제2백64대 로마 가톨릭교황에 선출되어 요한 바오로 2세로 명명한 폴란드의 카롤 보이티아 추기경은 오랫동안 공산권세계의 교회대변인으로 인식돼 왔으며 온후한 성격에 잘 흥분하지 않으나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며 한번 선택한 일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왔다.
새 교황은 1920년 폴란드의 크라코프주 「바로비체」에서 육군준사관의 아들로 태어나 중등학교와 대학을 마치는 동안 줄 곧 고학을 했다.
학비를 벌기위해 그가 일했던「솔바이」화학공장에서도 그는 신앙심이 깊었던 만큼 동료들을 위한 레크레이션도 곧 잘 지도했다.
그는 1943년부터 야게론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2차 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운동에 가담한 일이 있으며 전쟁이 끝난 후 46년1월 25세의 나이로 사제서품을 받은 후 즉시 「로마」로 가서 2년만에 도미니칸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획득했다.
그 후 폴란드에 다시 돌아온 그는 크라코프 교구에서 일하면서 신학박사학위도 획득했는데 이때 그는 프랑스잡지에 철학논문도 발표하고 독일철학자 막스쉘러에 관한 저술도 했다.
1950년대에는「크라코프」와 「루블린」의 대학에서 도덕신학을 강의했는데 1964년「크라코프」대주교에 임명되었으며 1967년 고 바오로 6세로부터 추기경에 서임 받았다.
교황청 소식통들은 가톨릭교회가 중도적 진보파인 보이티아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출한 것은 고 바오로 6세가 시작한 가톨릭교회의 국제화과정에서의 또 하나의 전진적 조치라고 풀이했다 20세기에 들어 최연소자로 교황직을 맡은 요한 바오로 2세는 전 세계를 널리 여행했고 미국과 오스트렐리아에서 윤리와 교회 모럴문제에 관해 강연하기도 했다.
그는 라틴어 외에 영어 이탈리아어ㆍ프랑스 및 독일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하다.
가톨릭교회 등 신학적 문제에 있어서는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교의를 충실히 추종하고 있으며 의견이 분분한 산아제한 및 성직자의 독신문제에 있어서는 중도적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그는 전임자 요한 바오로 1세와는 달리 잘 웃지는 않으나 웃을 때는 따뜻한 감정을 표시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