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말씀을 심는다 - 일선 전교사의 체험기] 76. 어린싹들/김 이사벨라 수녀 13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
입력일 2011-04-14 수정일 2011-04-14 발행일 1978-09-24 제 1122호 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쉽게 악에 물들어버리는 어린 마음들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펴야
처음 내가 이곳에 왔을 때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몸종처럼 부려먹는 찍지가 하나씩 있었다.

내가 이들을 돌보며 자주 낙담하고 실망한 것은, 뿌리 깊은 그들의 이기심과 서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강한아이는 약한 아이를, 정상 아이는 저능아를, 하물며 저능아까지 불구아를 괴롭히고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똑같이 간식을 주어도 어느새 약한 아이 것을 빼앗아 먹고 더구나 이빨 닦는 칫솔로 큰아이들의 운동화까지 빨아주고 또 그것으로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깜짝 놀라며 말리는 나에게『이것 안하면 혼나요』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적은 숫자의 강한 아이들 때문에 약한 아이는 짓밟히고 아무에게도 신뢰심을 갖지 않는 불안한 마음으로 항상 뒷 구석만 찾아다니며 또 자기보다 더 약한 아이를 찾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나쁜 아이들은 아니었다. 따라서 지금은 놀라우리만큼 발전하고 그때와 정반대로 약한 아이를 보살펴 준다. 그 예로 정말 흐뭇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작년여름 월말고사 때의 일이었다.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하기위해 부산소년의 집과 실력을 겨루기로 했다.

서울이 이기면 좋은 상품을 준다고 미리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정말 약속대로 그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를 해서 부산보다 평균점수가 더 높았던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상품을 먹는 것으로 준다고 하니 아이들 대부분은 시원한 하드와 새로 선전에 나오는 쭈쭈바를 사주기를 원했다.

식품에 대해선 아이들 건강에 맞도록 골고루 메뉴가 짜여있지만 혀끝이 달콤하고 시원한 하드 같은 것은 한 번도 못 먹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아이들은 약속대로 과연 쭈쭈바를 먹었다고 야단들이다.

그런데 화순이가 가방 속에서 무엇을 꺼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학교에서 준 쭈쭈바인데 비닐봉지에 들은 것이 녹아서 빨간 물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작은 컵을 가지고 와서 먼저 내게 맛을 보인 후 숫가락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 이이들에게 먹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우습고 마음 속 깊이 감동도 되고 한편으로는 한없이 화순이가 가엾기까지 했다.

나와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화순이는 얼굴이 빨간 채『정말 안 넘어갔어요』한다.

또 지난 성탄날이었다.

그날 아이들은 하사품의 사탕과 과자를 푸짐한 선물로 받았다. 모두 접시에 수북히 담아서 내 앞에 갖다놓는다. 난 안 받으면 섭섭할까봐 사탕을 각각 2개씩만 받고 다시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미화가 안 보인다. 조금 전 과자줄 때는 있었는데… 얼마 후 미화는 나에게 왔는데 과자봉지가 아주 적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화는 선물을 받자 곧 성당에 뛰어가 성당에 꾸며놓은 마굿간의 구유 옆에 과자를 소복히 놓고 왔던 것이다. 얼마나 맑고 깨끗한 마음인가? 어떻게 과자를 받자마자 그녀의 마음속에 예수아기가 생각났을까?

아기예수께선 미화의 아름다운 성탄선물을 얼마나 기쁘게 받으셨을까?

서로 빼앗아 먹고 서로 약자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이제 서로 약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난 갈수록 깨닫게 된다.

어린이들에겐 선도 악도 얼마나 쉽게 습관화 되는지… 그러기에 이들에겐 더욱 큰 보살핌과 사랑이 요구되는 것이다.

김 이사벨라 수녀ㆍ마리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