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사랑의 대화] 77

김재만ㆍ교육학 박사·대구교대 교수
입력일 2011-04-14 수정일 2011-04-14 발행일 1978-03-12 제 109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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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및 고관일수록 미신 신봉자 많아 
무종교인이라도 신앙적 본능은 있어
밑이라고 하는 말은 가장 기본 되는 것을 뜻합니다.

신라의 미추왕은 바로 이 밑둥 되는 왕이란 뜻의「밑」에서 유리하며 사랑이 밑과 관계되는 양상은 인간관계의 밑(기본)으로 연결 지을 수 있읍니다.

세째는 누구가 누구에게 또는 무엇이 무엇에게 영향을「미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한사람의 호의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으니 두 사람의 거래의 양상을 말한다고 보겠습니다.

네째로 정상이 아닌 이상 상태로서 미치는(狂)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의 사랑과의 연결은 사랑에는 불합리성과 맹목이 있음을 가지고 풀이할 수가 있겠습니다.

사랑을 정렬로 표현할 때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렬하고 맹목적인 상태를 가리켜 미쳤다(狂)하는 것입니다.

결국 믿는다는 뜻은 어떤 양상으로든지 사랑에 관계하고 있음을 의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과 앎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믿음이란 신앙으로 대표된다고 하겠읍니다. 헤르바르트는 종교적 흥미를 가정해놓고 있읍니다만 그 본질은 신(神)에 연결되는 신앙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신앙적인 본능이 있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가령 종교의식에 참여하지 아니하는 무종교인은 있어도 신앙이 없는 무신앙의 사람은 없다고 보아서 틀림이 없읍니다.

다시 말하자면 근대적 의미의 종교는 갖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종교인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정도의 신앙적 본능이라고 할 만한 종교적 흥미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라도 무슨 종교라도 전교가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 믿으려고 하며 있는 것 이상으로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원시신앙이나 현대 신앙이나 이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문명 안에서도 점술가가 돈을 벌고 무당이 부자가 되고 현대식 건물에 부적이 붙어있는 것은 다 그런 의유 때문인 것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큰 부자 재벌일수록 점을 많이 치고 고관일수록 미신을 많이 믿는다고 하니 이 무슨 현대적 아이러니일까요?

그런 것은 다 믿음과 바람(順)의 본능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옛날부터 샤머니즘신앙에 젖어 왔습니다.

그래서 화랑도니 또는 무천 연둥 팔관 등의 집단의식까지 그것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으며 현대적 신앙도 그러한 밑바탕 되는 신앙양식을 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집회 안에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샤머니즘요소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힘이 되는 원리는 그런 분위기적인 영향이 크다고 본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악기가 다거기에 알맞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북이며 징이며 괭가리거기다가 행매며 그 복장들이 충분히 신을 울리기에 알맞은 것이며 지금도 그런 광경을 보게 되면 역시 굿을 보는 감회로 느껴지기 마련인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양식이 내면화하게 되면 더욱 강력한 힘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이 얼마나 힘이 센 것인지 좋은 비유가 있읍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대로 되리라고 믿기 만하면 이산더러『번쩍 들려서 저 바다로 빠져라』하더라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르꼬11·23)

이 말은 참으로 훌륭한 교훈입니다.

그리고 신앙을 위한 위대한 복음인 것입니다. 사랑은 믿음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항상 믿음을 근거로 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역(周易)에서는 초자연의 이치를 주장합니다. 영혼의 우위성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힘은 음파나 광파(光波)와같이 확신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힘없이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직선으로 추적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소위 영파(靈波)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파도(波())라는 뜻입니다.

그 파장은 그 사람의 신앙의 강도에 따라서 길이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백리 밖의 사람에게도 소식을 전할 수가 있고 천리 길도 단숨에 가는 축지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요가의 원리에도 그런 것이 있다고 합니다. 육체의 단련에 있어서 비상한 힘을 과시하는 것이 요가이지만 영혼요법을 쓰면 영혼도 비상한 힘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김재만ㆍ교육학 박사·대구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