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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대화] 76

김재만ㆍ교육학박사·대구교대 교수
입력일 2011-04-14 수정일 2011-04-14 발행일 1978-03-05 제 1095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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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려면 충분한 검토와 연구가 필요 
아는 건 곧 믿고 사랑하는것 
이혼과 별거는 부부의 이해부족이 원인
즉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연애가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그리고 오늘날이 혼이나 별거가 쉽게 나타나는 것은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자가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해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엔 용케 이해되었구나하고 놀라겠지만 옛날에도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이혼이나 별거가 나타나지 아니했던 것은 남성우위와 여성 측의 일방적인 인내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해하기위하여 서로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교육 같은 것을 들먹이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대방을 이해하기위한 것으로 해석해야할 것이며 그러자면 거기대한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원형으로 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 사제 간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스승의 제자에 대한 사랑은 어버이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을 지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무엇보다도 소위 교육애야 말로 사랑가운데서 지적 사랑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제가 지성을 정점으로 양립하는 의미에서 지적이요 스승의 아동애를 기초로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점에서 지적이요 아동애의 본질이 아동의 이해요 아동이해의 본질이 아동에 관한 지식이란 점에서도 지적입니다.

교사가 피교육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육을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전부를 포괄하고 있는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요 부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고 무소무재하며 전선(全善)하신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대로 사람을 빚어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아픔은 곧 하느님의 아픔인 것입니다.

아는 것이 사랑하는 길이다고 하는 명제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누구보다도 잘 사랑할 수 있읍니다. 그는 다 알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신념을 낳게 하지만 신념이 지식으로 귀착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잘 무엇을 안다고 하는 말을 무엇을 믿는다로 대치하는 수가 있는데 그럴 때 안다는 말과 믿는다는 말은 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엇에 대해서 안다는 사실은 무엇에 대하여 믿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그 대상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을 잘 안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믿는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말로 하던지 명백한 사실은 누구에 대한 신뢰나 신용은 그 사람을 잘 알고 나서의 일이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믿음이란 첫째사람과 사람과의 신의나 신용을 기초로 한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에는 사람의 말로부터 형성되어 언약. 약속의 의미를 기초로 하는 것입니다.

이때 믿음성이 없는 사람은 사랑의 자격이 없읍니다.

둘째 믿음은 기본이라는 뜻의 「밑」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재만ㆍ교육학박사·대구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