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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평신도를 찾습니다] 15「우리농」전국본부 사무차장 박영범씨

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1-04-14 수정일 2011-04-14 발행일 1997-03-30 제 204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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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뼈 묻을 각오로 투신”
도농간 결연운동 확대에 노력 지역 특성 맞는 지역농업 육성
「한 점 돌파하자」는 소신대로 농촌 살리기에 전력

UR 협상 타결로 농촌의 터전이 완전 상실될 위기에 처했을 때 전 교회 구성원이 힘을 합쳐 탄생시킨 우리농촌살리기운동.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지난 94년 6월에 우리농촌살리기 운동본부가 창립됐을 당시만 해도 우리농 본부에는 재원도 없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력도 부족했다.

물론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해 항상 미지급금을 남겨 두어야 했을 정도로 우리농 본부의 제반 여건이 미비했지만 오직 죽어가는 농촌을 위해 뭔가 자신의 역할을 찾자며 우리농운동에 뛰어든 젊은 평신도가 있다.

『우선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고 우리농 본부에서 일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농촌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기반을 잃은 우리 농촌에, 또 용기와 희망이 꺾인 농민들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농촌살리운동 전국본부 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박영범(아우구스티노·33·수원 매교동본당)씨가 우리농운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울대 농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실천적인 농업연구」를 표방하고 있는「서울대 농업정책연구회」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됏다.

『다른 직장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농민운동이나 농업 관련 단체로 진출, 살아있는 현장농업, 실천농업을 부르짖어 왔던 자신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사무차장도 겸하고 있는 박영범씨는 처음엔 영세도 하지 않은 비신자였지만 우리농운동과 함께 교리를 익혀 지난해 말 김승오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특히 박영범씨는 우리농운동 초창기 시절, 어떻게 우리농운동이 나아가야 할지 방향은 정해져 있었으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어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었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박영범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도시와 농촌의 연대를 통한 도농간의 결연,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농업 육성 등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직도 월급을 다 받지 못해 미지급금을 남겨둘 정도로 어려운 살림이지만 뚜렷하게 재원 조달할 방법이 없는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는 박영범씨는 앞으로 우리농 상표가 등록돼 우리농 상표 사용료를 생산자들로부터 받게 되면 어느 정도 숨통은 트일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부인에게 내밀기가 민망할 정도로 얇고 날짜가 일정하지 않은 월급이지만『그래도 가슴으로 이해해 주는 애기 엄마가 있어 우리농운동에 별 분심없이 일할 수 있다』는 박영범씨.

『한 점을 돌파하자』라는 평소 소신처럼 박영범씨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서울 각 본당 소비자들과 경기도 안성 고삼농협 생산자들간에 맺어진 도농간의 결연운동을 한 점의 사례로 인식, 이런 사례들을 점차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