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76) 성 요한 보스코 (2)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2011-04-17 제 274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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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천국의 열쇠가 필요합니다”
9세 때 예수님체험 후 평생 성모님 의탁
청소년기 사제와 생활하며 내면 깊어져
요한 보스코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성인도 드물다. 지극히 인간적이었으며, 예민한 감수성으로 청소년과 소외된 이웃을 사랑했고, 교회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했다.

그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다.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해 사막으로 가지 않았다. 봉쇄 생활을 하지도 않았고, 기도를 위해 하루 몇 시간씩 성당에서 무릎 꿇지도 않았다. 성인은 소위 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관상가가 아니었다. 또한 그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희생과 절제의 생활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도 아니었다.

그는 교구 신학생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으며, 끼에리 대신학교 생활을 거쳐 한 교구의 사제요 사목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본당과 교구 중심의 한국교회에서 요한 보스코가 더 가깝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요한 보스코 성인이 기도나 관상을 멀리했다는 말은 아니다. 요한 보스코에게 있어서 기도는 ‘교육적 기도’였고 ‘청원기도’였으며 무엇보다 ‘삶의 기도’였다. 한 회원이 “저는 한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말했을 때 성인이 한 말은 “그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까?”였다.

교황 비오 11세는 그런 요한 보스코를 가리켜 “만사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그의 생각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요한 보스코는 일마저도 기도로 승화시킬 수 있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요한 보스코는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과 대 데레사 성녀를 무척 좋아했다. 데레사 성녀로부터는 하느님의 위엄성에 대한 깊은 헌신을 이어 받았으며, 이냐시오 성인으로부터는 악에 대한 열성적 싸움과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한 노력을 이어 받았다. 특히 그는 육체적 금욕보다는 정신적 금욕을 강조했다.

그의 삶을 처음부터 찬찬히 들여다 보자. 1815년에 탄생하셨고 1881년에 선종하셨으니까 65세를 사셨다. 인생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요한 보스코도 예외가 아니다. 가난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어린 시절부터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는 신심 깊은 분이셨고, 늘 기도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이었다. 요한 보스코는 당연히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신심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고, 영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요한 보스코가 9세 때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하는 것도 이러한 가정환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린 요한 보스코는 발현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성모님께서 앞길을 비춰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는다. 어린아이는 듣는 대로, 보는 대로, 체험한 대로 행동하는 법이다. 어린 시절에 다가온 이러한 체험은 요한 보스코의 마음에 평생동안 각인되었을 것이다. 요한 보스코가 평생동안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요한 보스코는 청소년 시기를 보내면서 줄곧 성모님 안에서 덕행과 극기 금욕의 삶을 잘 살았고, 더 나아가 성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요한 보스코는 결정적으로 천사같은 인물을 만나는데 바로 숙부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요한 보스코는 숙부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살고 있었는데, 그 숙부가 요한 보스코의 그릇이 큼을 알아보았다. 사제의 길을 뒷바라지해 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숙부는 그 길로 한 사제에게 요한 보스코를 보냈다. 감수성 많고,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청소년기에 사제와 함께 생활한 것은 행운이었다. 성직자와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영성적 성향으로 형성되어오던 요한 보스코의 내면 형성을 더욱 깊게 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름다운 일화를 발견하게 된다. 요한 보스코와 함께 생활하던 사제가 얼마 후 죽음을 앞두게 됐다. 그는 죽으면서 요한 보스코에게 작은 금고와 열쇠를 물려준다. 금고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요한 보스코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인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어린 나이의 요한 보스코가 보인 반응이 놀랍다.

“저에게는 현세의 열쇠는 필요 없습니다. 천국의 열쇠가 필요합니다.”

요한 보스코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물질적인 것이 아닌 초자연적인 것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런 요한 보스코가 20세가 됐다.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가 갈 곳은 오직 한 곳뿐이었다. 바로 신학교였다.

정영식 신부 (효명고등학교 교장),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