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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교회를 아십니까?] 26 본보 통해 보는 한국 교회 그때 그 모습

이윤자 취재국장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2-09 제 203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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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2월 1일자 일본 가톨릭의 발전상
1950년대 가톨릭신보를 역으로 훑어보다가 바로 이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가톨릭의 발전상이라는 기사였다. 1952년 12월 1일자 4면 톱 자리에 올라간「일본 가톨릭의 발전상」이라는 기사는 당시「현저한 발전」을 하고 있는 일본 가톨릭교회에 대한 한국 교회의 부러움을 하나 가득 담은 그런 기사였다.

물론 지금의 한국 교회와 일본 교회의 상황 속에서 보면 참으로 이상한 기사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기사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당시 가톨릭신보의 눈에 비친「부러운」일본 교회의 신자 상황을 살펴보자.『동경의 교황 공사관 발표에 의하면 일본의 가톨릭 신자 총수는 지난 6월 말(1952년) 현재 17만1천7백85명으로 작년(1951년)도의 15만7천2백41명에 비해 1년간 1만4천5백여 명이 증가했으며 현재의 예비신자(영세 준비자) 2만8천3백52명까지 가산하면 그 수는 20만14명으로 7년 전의 약 2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어디 그뿐인가.『1945년 당시에는 약 1백 명의 신부가 있었는데 현재는 일본인 신부 2백13명 외국인 선교사 7백60명으로 약 1천 명에 달하는 사제들이 전국의 도시와 촌락에서 교회를 신설하고 신자 수를 증가시키며 근면하고 착한 성덕으로서 사회적 영향을 주면서 교회 발전에 정진하고 있다』고 가톨릭신보는 일본 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일본 교회를 그렇게나 부러워한 한국 교회의 실상은 어떠했을가. 한국 교회의 1952년은 참혹한 전쟁의 여운이 국토 전역을 감돌고 있었고 교회 역시 피난지 대구와 부산에서 옹색하고 힘겨운 살림살이를 꾸려가고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3년 교세 통계표는 한국 교회의 52년도 신자 총수를 16만6천4백71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결국 신자 총수만 계산한다면 52년 당시 일본 교회 신자는 한국 교회보다 불과 5천3백여 명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당시 일본 교회는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1백66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고 12종의 신문 22종의 잡지 등을 보유하고 있는, 말하자면 이미 다각적으로 풍요함을 누리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로부터 45년 여의 세월이 지난 지금, 두 나라 교회 상황을 비교해 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여 년 사이 40만 명이라는 수치에서 주저앉은 일본 교회에 비해 한국 교회는 신자 총수 3백50만 명을 넘어서는 호황을 누리고 있고 일본 교회는 이 같은 한국 교회의 성장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단순 비교해 봐도 일본 교회가 한 해 5천 명의 신자를 배출하는 데 급급하는 동안 한국 교회는 년간 6만 명 이상의 신자를 새 식구로 맞아들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쯤 되면 역전도 엄청난 역전이 아닐 수 없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일본 교회의 성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70년대라면 일본이 엄청난 경제 성장으로 국력을 키우고 선진국 대열로 도약하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눈부신 도약과 성장 역시 여기저기서 걸림돌들이 나타나고 있다. 성장 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하면서 활황을 누리던 한국 교회의 성장 분위기가 일단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진단은 경제 성장과 종교 성장이 반비례하는 현상을 초래한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언뜻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 교회가 일본 교회와 비교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우리 교회는 우리 식의 심성과 우리 식의 정서로 우리의 신앙을 생활 속에서 멋있게 구현해 나가면서 현재의 걸림돌쯤이야 훌쩍 뛰어넘어설 저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윤자 취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