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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진단] 세기 말적 이상기류 현상과 사이비 종교… “전생과 환생 신드롬”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2-09 제 203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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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적 사고… 인간 의지 경시”
한국적 심성과 사회 풍조에 매스컴 가세 
“노력보다 연이나 업에 의해 모든 것 이루어진다” 생각
신자교육 강화, 무비판적 수용 막아야

글 싣는 순서

① 총론편: 전문가에게 듣는다

② 대중문화 속의 뉴에이지운동

③ 열풍처럼 번져가는 기 체험과 초능력 수행법

④ 전생과 환생 신드롬

⑤ 풍수지리

⑥ 결론편: 그리스도 신앙과의 관계 및 그리스도교의 역할

▲실태

「육체이탈」 「전생요법」 「윤회체험」 「이승과 저승을 알면 길이 보인다」 「전생의 나를 찾아서」 「전생을 봐 드립니다」….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서점으로 알려지고 있는 K문고의 종교서적 코너에는 20여 종을 넘는 전생 윤회 관련 서적들이 빼곡이 정리돼 있다.

이 중 「전생용법」「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나는 아흔 여덟 번 환생했다」등은 서점가 스테디셀러로 기록되고 있는 책들 중 하나이다.

이 책들 외에도 지난해 4월 초 출간된 「김영우와 함께 하는 전생여행」은 8만 부나 팔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사랑하던 두 남녀가 1천년 뒤에 환생해 사랑을 나눈다는 양귀자씨 소설 「천년의 사랑」도 높은 인기도를 유지했다. 이 같은 모습들은 현재 우리 사회 내에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전생설 환생설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쉽게 읽게 해주는 사례들이다.

최근 들어 영화와 TV 드라마 오락물 대중가요에서도 전생과 환생을 주제로 다룬 소재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초 인기를 끌었던 「은행나무 침대」. 사랑을 찾아 시공을 넘나드는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것은 매스컴을 통한 전생설 확산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외에 「고스트맘마」 등도 비슷한 얘기로 극장가에 등장했고 「8월의 신부」「환생」「베스트극장-사진을 만난 남자」등이 드라마를 통해 소개됐다.

가수 신승훈의 「8월의 신부」 장혜진의 「완전한 사랑」 신성우의 「슬픔이 올 때까지」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등도 전생 환생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모 일간 스포츠지는 「전생일기」라는 난을 마련, 고정적으로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전생설과 가톨릭 신자

전생설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대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의견들이다. K문고에서 「전생요법」을 열심히 탐독하던 한 청년에게 『전생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고 묻자 『최근 영화나 TV 등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인연을 찾는 내용들을 보게 됐고 「나의 전생은 어떨까,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과거의 어떤 일들과 연결이 되는 것일까」등의 의문을 가지게 됐다』면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답했다.

전생 환생에 대한 관심을 갖는 가톨릭 신자들도 이 청년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신과 의사의 전생 퇴행요법 임상체험 기록인 「김영우와 함께 하는 전생여행」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모 신자는 『몇백 년 전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현세와 연결되는 내용들이 흥미를 갖게 했다』면서 『책을 읽은 후 주위 신자들에게도 권해서 한 번 읽어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역시 같은 책을 읽었다는 한 여신자는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고 전하고 『불교의 윤회설을 받아들인다는 차원보다 토속적 정서를 보는 입장으로 보았다』고 밝혔다.

▲확산 원인

그러면 이 같은 전생 환생설이 전 사회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에게까지 폭넓게 확산되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단 이러한 모습들은 최근의 사회 풍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정보화 사회 안에서 점차 무력해져 가는 개인들의 모습, 노력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는 몰인격적 현실 등이 합리적 이성에 대한 회의를 가져오게 되고 비합리적인 힘 또는 운명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자신들의 모습이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보이지 않는 연에 의해 이루어지고 전생의 업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쉽게 가져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무속 유교 불교 도교사상 등 한국인이 갖고 있는 기본적 종교 바탕도 전생설 확산을 가져온 무시할 수 없는 한 요소로 꼽혀지고 있다.

84년 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연구에 따르면 「윤회에 대한 믿음」을 묻는 항목에서 불교 신자가 29.1% 개신교 신자가 21.4% 가톨릭 신자들이 24.5% 무교가 16.9%의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결국 가톨릭 불교 개신교 신자들의 20% 이상이 윤회를 믿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 결과는 한국인의 종교 욕구가 상당히 동질적이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결과로써 가톨릭 신자들 상당수도 전생 환생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관계자들은 이러한 한국인들의 기본적 심성이 전생 환생설 확산의 밑바탕을 이룬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 사회학자는 『대중 매스컵의 조작이 전생 환생설 붐 조성에 가장 큰 일조를 했다』고 밝히면서 『한국적 심성과 사회적 풍조 등이 뉴에이지 물결을 타면서 쉽게 전생 환생설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여겨진다』고 해석했다.

▲문제점

전생설 환생설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전생의 삶을 잘 이해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여유롭게 생각함으로써 훨씬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생여행」의 저자 김영우씨(루까·수유동본당)는 『자신의 경우 외국에서도 임상 방법적인 면으로 입증된 「전생 퇴행요법」에 관심을 갖고 치료방법 중 하나로 이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지한 학문적 분야로서 전생에 접근하고 있고 지난해 8월부터는 정신과 의사들로 구성된 연구모임도 시작됐다』고 밝힌 그는 『치료 방법적인 면에서 전생 퇴행요법에 대한 관심은 고무적이며 조만간 학문적으로도 가닥이 잡힐 전망』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전생 퇴행요법으로 인한 치료 효과에는 만족할 만하다』고 김씨는 덧붙이고 있다.

김씨는 최근 일고 있는 전생설에 대한 논란은 편견과 대중 매스컴으로 인한 거품적 관심 증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나 교회적 시각에서 전생 환생설을 볼 때 이는 모든 것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의지를 경시하게 되는 등 기존의 가톨릭 신앙관과 합치되지 않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교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것은 결국 윤리성의 배제현상까지도 몰고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심리학자들도 특히 젊은이들이 이러한 전생 환생설에 빠질 경우 「현실은 무의미하다」식의 현실 부적응적 의식을 갖게 되는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불교의 윤회설과 관련된 용어라 볼 수 있는 「전생」은 엄밀한 의미에서 불교적 의미와도 거리가 멀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윤회론의 주안점은 전생에 자신이 누구였는지 묻는다기보다 지금의 세상에서 더 착한 사람으로, 차후의 세상에서는 더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나자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과거에 자신이 누구였는지 관심을 갖는 최근의 전생설은 본래의 윤회론과는 동떨어진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하느님은 근본적으로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더 중요시하는 분』이라고 말하고 『하느님은 당신을 거듭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듭 용서를 베푸시고 미래를 보여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의 죄인들에게 거듭 용서를 베푸시면서 미래를 열어주셨다』면서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반복되는 삶을 통해 과거의 업보를 자신의 힘으로 청산해야 하는 불교의 윤회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들려줬다.

▲대책

교회 관계자들은 전생 환생설에 대한 신자들의 무비판적 수용과 탐닉을 막기 위한 교회의 대안은 교육적 방법으로 풀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회 내 한 사목자는 『현대사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환생 기 풍수지리 등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폭도 크고 신자들은 그런 현상을 어떤 신앙적 기준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욕구도 큰 만큼 사목자들은 신자들의 관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대한 신앙적 측면의 답을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려대 노길명 교수(사회학)는 『전생 환생에 대한 관심이 한국인의 토속적 종교 심성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전통사상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접목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교회 관계자들은 예비자교육 때부터 신앙의 확실성과 부활에 근거한 구원관 등 신앙 개념 정립을 위한 교육을 보완하는 등 교회의 대 신자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 특히 교육부분에서는 무엇보다 신자들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의 개발과 영성신학에 대한 교육, 신흥종교에 대한 교육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제시됐다.

중산층 「화이트 컬러」계층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 마련은 교회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전문가 제언] 가톨릭대 손희송 신부 - “철저한 신앙무장 필요”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용서를 받아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관을 신자들이 확실히 가지고 있고 생활 안에서 결단을 내린다면 최근의 전생 환생 윤회 해탈에 대한 이야기에는 의문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대학교 손희송 신부는 전생 환생설이 일반인들은 물론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널리 퍼지고 있는 것과 관련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의식화가 무척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면서 『오히려 이러한 세태는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되짚어보고 내용적으로 고찰해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생설이 불교의 윤회설과 연계되는 것이라고 할 때 불교에서는 「자력구원」이라는 말로 해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를 기워 갚는 것은 「용서」만으로 가능합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의 모든 죄를 없애간다는 것은 부분적이라면 모를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손 신부는 이런 차원으로 그리스도교의 「용서」와 윤회사상을 비교해 본다면 신자들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전생설에 매달리는 태도는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잠시 진통제를 먹는 것과 같다』고 밝힌 손 신부는 『그러나 진통제는 완전한 치료약이 될 수 없다』면서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현세는 도피가 아니라 인간적 노력에 의해 개척해가는 의미가 있으며 개척에 필요한 자양분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이다』고 얘기했다.

신앙적으로 확실하게 무장이 되어 있다면 「윤회설을 따를 수 없고 확실하지도 않은 전생에 대한 호기심 속에서 과거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손 신부는 『늘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신앙적 측면으로 사회의 제 현상들을 살펴보는 노력이 신앙인들에게는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한다.

『신앙은 전수 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자신의 것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손 신부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