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특별진단] 세기 말적 이상기류 현상과 사이비 종교…“기 체험과 초능력 수행법들”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2-02 제 2038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기를 신성시, 종교화까지”
자신에 맞는 조화로운 수련법 선택해야
태양의 기 마신다며 미사 참례 않고 새벽마다 산행
환생설과 밀접…그리스도 구원론 부정

글 싣는 순서

(1) 총론편: 전문가에게 듣는다

(2) 대중문화 속의 뉴에이지 운동

(3) 열풍처럼 번져가는 기 체험과 초능력 수행법

(4) 전생과 환생 신드롬

(5) 결론편:그리스도 신앙과의 관계 및 그리스도교의 역할

▲기 수련의 실태

『혹 기나 도에 관심 있지 않습니까?』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말끔히 차려 입은 젊은이가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한 번쯤 경험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기에 대한 관심은 대형 서적에서 전문 코너가 마련돼 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수십 종에 달하는 기 관련 서적들 중에는「기적을 일으키는 생기 기공 요법」「기적의 초능력 시술법」「기공 체조로 모든 병을 예방하고 거뜬히 치유하는 신비의 체동술」「기적의 천의선도」등 제목에 반드시「기적」「초능력」이란 용어가 들어 있는 기 서적들이 많다. 또 대학가에서는 방학 특강으로「민족 전통사상 강좌」형식으로 기 훈련이 시행되고 있는가 하면 동네 곳곳에도 기 도장이 있고 성당 안에서조차 기 수련 특강이 열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국선도, 단학선도, 천도선법, 선도기공, 엽력기공 등 현재 60여 종의 기 수련 기관이 성행하고 있는가 하면 컴퓨터 통신망에도 기 체험기가 뜨는가 하면, 수련 방법, 기 훈련 연습 교재가 소개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기에 대한 관심은 열풍적이다. 영성 개발을 위해 성당에서 기 수련 강연이 개최되고 있고, 일부 신자들은 이름 난 기 수련가를 찾아다니며 명상법과 치료법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요소도 있다. 맑고 새로운 기를 받아들인다며 기 치료사에게 증류수를 주사 맞는 위험천만한 사례들도 있기 때문이다.

기 수련이 많은 선익과 긍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부 기 수련자들 사이에서 개인적 체험을 초월시하거나 사적 계시화해 선의의 수련자들마저 피해를 주고 있어 가톨릭 정통 가르침과 조화된 올바른 기 수련 방법과 교회의 대책 등을 알아보았다.

▲긍정성과 위험성

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직접 체험하고 있듯이 육체적, 정신적 안정을 주고 질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선의적 부분이 많다.

가톨릭 신자들 중 기 수련을 통해 자기 내면을 정화하고 부드러워져 영성생활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난치병이 기 수련을 통해 치유되는가 하면, 수련한 기 능력으로 이웃을 도와주는 봉사적 삶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기 수련의 긍정적 측면도 불구하고 질병 치료, 스트레스 해소, 건강 증진의 차원을 넘어 개인의 잠재 능력과 초능력의 개발뿐만 아니라 기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삼는 변질되고 변형된 기 수련이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노길명 교수는 『기 수련을 하는 신자가 미사나 성사보다 매일 새벽에 「태양의 기」를 마신다며 산에 오르고 신앙생활보다 이것을 통해 더 기쁨을 느낄 때 문제가 되는 것이고 기를 종교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어떤 기 체험을 했을 때 이것을 절대화하고 개인적 메시지와 결부시킬 때 결국 사적 계시로 흐르고 만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교회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적 계시」의 상당수는 이러한 개인적 체험이 변형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에 대해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한 법사 역시『기 의 원리를 깊이 알수록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 놓았다.

이 법사의 말처럼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처음에는 건강 증진이나 정신적 안정을 목적으로 기 수련을 받기 시작하지만 그러한 수련을 통해 기 체험을 갖게 되면 기를 신앙의 대상이나 중심으로 삼은 신흥종교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국선도의 김호언 법사는『기 수련시 이적만을 쫓는다면 자신은 소외될 것』이라며『인간이 바로 우주에서 가장 존중되는 생명체임을 인식, 자신에게 맞고 조화로운 기 수련법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사례

기와 관련해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면 아직까지 우리 교회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우주천주교」(한우리회)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우주천주교는 경본격인「우주 천국 머리 말씀」첫 면에 『우주 천주께서 의로운 자에게 물으니 세상에 너희가 해 지는대로 기를 거두게 두랴?』는 글을 적어 기가 우주 천주교의 근본 원리임을 밝히고 있다.

신자들의 피해 사례도 적지 않다. 대전 모 본당의 이조옥(로사)씨의 경우 구 교우 집안의 독실한 신자였던 교사인 남편이 기 수련을 하면서 「천존님」이라 일컫는 스승을 신격화해 재산을 헌납하는가 하면 가족들도 강제적으로 끌어들이려 해 가정 불화를 심하게 겪고 있다.

인천 간석동 본당의 한 신자도 남편과 시댁 가족들이 기를 수련하지 않고 천주교를 믿는다고 폭언과 폭력을 가해 심한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다.

또 여호아의 증인과 같이 모 기 수련 단체에는 상당수의 천주교 신자들이 빠져 있는 것으로 발견되고 있고, 염력기공과 같은 일부 단체에서는 서울 본당에서 순회 강연회를 가지며 신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교리에 위배되는 요소들

신학자들과 종교 사회 학자들은 종교로 변질된 기 수련의 경우 인간에게 신적 요소가 있다고 강조, 가톨릭교회의 전통 가르침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을 희석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 기라고 설명하고 있는 이들은『물체는 모두 이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고, 죽더라도 이 에너지는 남아 다른 물체와 합성해 또다른 하나의 생명체로 나타난다』고 주장, 기 수련이 윤회, 환생설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변질된 기 수련에는 질량불변의 법칙에 기초한 물리학과 윤회를 바탕으로 한 변형된 불교 교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노길명 교수는 또『동양의 기 사상이 서양에서 번성, 뉴에이지 운동으로 역수입되고 있다』면서『일부 서점에 나와 있는 기 서적 중 창세기를 바탕으로 이론을 전개한 내용들이 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회학자들은 기 사상의 확산 원인에 대해 산업화 자본주의화에 따른 능률과 경쟁의 원리 지배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심리와 서구에서 밀려오는 뉴에이지 물결의 확산에 기인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실증적 예로 화이트 칼라 계층이 기에 많이 빠져 있는 점을 제시했다.

신학자들은 기 훈련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차원을 넘어 공중부양이나 유체이탈 투시 등과 같은 초능력을 강조하면서 기를 신앙의 중심이나 대상으로 삼게 된다면, 가톨릭 신앙을 훼손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학자들은 이 때에는 『인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이며 동시에 신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신앙의 대상을 창조주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내적 특성에 두게 된다』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또한『인간은 특정한 수련 방법을 통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기를 활용한다면 어떠한 초능력도 발휘할 수 있고 따라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가톨릭의 전통적 신앙을 전면적으로 부정케 한다』고 신학자들은 설명했다.

일본의 「옴 진리교」의 경우에서 드러난 것처럼 기 체험에 대한 집착은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신앙 형태를 수반할 가능성을 다분히 갖고 있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결론이다.

▲대책

노길명 교수는『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일컬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도 중시하려는 성향을 나타내 종교에 대해서도 교리나 신학과 같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체험을 갈망하게 된다』면서『오늘날 기 체험, 강신 체험, 성령 체험 등이 크게 확산되는 것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종교적 욕구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포스트 모더니즘은「윤리」「집단적 예배의식」「공동체성」등에서 탈피 오직 자연적 합일만이 덕이요 윤리이며, 선임을 주장, 사회의식, 공동체 의식, 윤리와 책임의식을 약화, 희석시키는 것이 특징』이라며『이러한 사상은 전통적인 가톨릭 신앙과 하느님의 나라의 건설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사명과는 상당한 거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신자들에 대한 보다 철저한 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노 교수는『종교적 체험을 분별하고 그 의미를 옳게 파악할 수 있도록 영성 신학에 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 교리 교육 자체가 신자들의 생활이나 체험에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도록 보다 체계화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또 영성 개발 프로그램들이 보다 다양화되어야 하고, 확산되는 신흥종교 현상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 활동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10년째 기 수련 인천가대 신교선 신부 - “기는 초능력이 아니다”

『종교인들에게는 더욱 바른 참 신앙인이 되도록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올바른 기 수련의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10여 년째 기 수련을 하고 있는 인천가톨릭대학교 성서학 교수이며 영성과 지도신부인 신교선 신부는『기 수련은 기적같이 A를 B로 바꾸어 놓거나 만병통치의 치료법이 결코 아니다』라면서『기를 초능력으로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그릇된 인식이 기의 긍정적 측면을 왜곡시키고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고 말했다.

신 신부는『기로써 인간은 결코 초월할 수 없다』면서『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감지한 것을 가지고「초월」이라고 말하려 하는 수련자들의 근본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 수련자들이 왜「공중부양」이나「장풍」등과 같은 반 자연적 본성적인 인간성에서 자꾸만 벗어나려고 시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신교선 신부는『만약 이런 수련을 한다면 살아있는 나무를 죽이거나 바람으로 촛불을 끄는 수련보다는 오히려 죽은 나무를 살리고 꺼진 촛불에 다시 불을 지피는 수련이 더 의미 있는 수련일 것』이라고 반문했다.

어떻게 수련할 것이냐 보다 기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신 신부는『기는 분노와 속임, 거짓에 차 있는 자신의 내면을 부드러움과 설득, 타이름으로 다스리고, 이웃을 돕고, 파괴가 아닌 생명의 건설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보다「심호흡」이란 용어를 더 즐겨쓰는 신 신부는『옆에 있는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몸 자체에도 무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심호흡과 같은 가장 자연적인 것이 올바른 기 수련법』이라고 설명했다.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