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지방시대 지방교회를 연다] 2. 안동교구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1-26 제 203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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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의 교회로
지역민과 더불어 함께 사는 마을교회 지향
새 교회상에 걸맞는 의식 전환 교육에 전념 
농촌을 공소 중심의 신앙마을 공동체로 육성
◆“농민과 함께 해온 애환의 30년 역사”

안동교구의 2천년대를 향한 선택은「생명」과「공동체」다.

1969년 교구 설정 이후 현재까지 사목을 하는 과정에서 농민사목에 역점을 두어 농촌 개발사업을 시작으로 농민 의식화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지역 주민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온 안동교구는 이미 89년부터 농민사목의 방향을 생명운동쪽으로 확대 변경해 실천하고 있다.

안동교구의 이러한 선택은 사목 지역이 생명을 키우고 가꾸는 농촌지역일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생명」을 위해 사랑으로 몸 바쳐 투신하는 데 있다는 정신에 바탕한 것으로 생명은 본성상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안동교구는 지역사회, 지역민과의 삶과 유기적으로 관련된 가운데 생활 속에서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마을교회, 동네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즉 농촌이면 농촌, 도시면 도시에서 그 지역의 현안들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가면서 신앙을 증거하는 신앙생활 공동체가 2천년대 안동교구의 모습이다.

제도 중심의 교회에서 공동체 중심의 교회로 탈바꿈하고 있는 안동교구는 2천년대를 3년 앞두고 있는 올해부터 새로운 교회상을 위한 그 실천적 방향으로 이끌고 갈 계획이며 그 첫해인 올해의 사목지표를 지역사회 봉사와 선교의 해로 잡았다.

그동안 한국 교회가 2천년대를 위한 새로운 사목 방안으로 소공동체 운동을 제시했지만 각 교구마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미흡한 실정을 안동교구는 직시하고 이는 새로운 교회상인 소공동체 운동에 걸맞는 의식 전환이 무르익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판단해 교구민들의 의식 교육에 역점을 두고 연수 피정 등 각종 교육 활동을 펼쳐왔다.

공소 봉사자학교, 공소 현장교육, 지구별 구역 반장 연수 등 지난 수 년간 꾸준히 펼쳐온 교육 활동들의 주제들이 대부분「기쁘고 떳떳하게 사는 작은 교회」,「활기차게 생명을 나누는 작은 하느님 나라」등 공동체 운동과 관련된 것들이다.

안동교구의 이러한 공동체 운동은 몇몇 가시적인 형태로 결실을 맺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생명의 공동체」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유기농 정신과 두레정신을 바탕으로 90년에 탄생한 생명의 공동체는 신자 여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지역민들이 대거 참여해 생활 실천운동으로 확산, 전국 도농 공동체의 모델이 됐다.

농민회원들의 출자로 탄생한 우리 농산 한생명 또한 지속적으로 생명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올해 농민주일에 맞추어 발족될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안동본부 역시 지역민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한국 교회 내 처음 농민사목부 설치”

안동교구는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농촌 지역을 사목하고 있으며 관할 구역이 11개 시군을 사목하는 작은 교구로서 95년 말 통계에 따르면 본당 28개에 공소 95개 신자 수 4만에 사제 수 49명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이 4%로 전국 복음화율 7.69%에 못 미치고 있다.

이 통계는 지역의 열악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70~80년대의 이농현상으로 신자 수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교구 설정 당시 2백60만이던 지역 인구가 95년에는 95만으로 감소할 정도의 극심한 이농현상에도 불구하고 교구 설정 당시 신자 수 2만에서 두 배로 불어난 것은 지역민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안동교구의 삶을 대변해 준다.

농촌 지역에 속한 안동교구의 역사는 농민들과 함께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교구 설립과 함께 농촌지역 개발과 농민의식 개혁 및 올바른 농촌정책 수립을 위한 비판과 대안 제시, 농민들의 자립 교육을 꾸준히 실시해 왔으며 한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사목국 내에 농민사목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70년대 경제 성장 위주의 정책에 반대해 농민들의 권익 대변에 나선 안동교구의 활동을 자연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져 많은 교구 사제들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

가톨릭농민회 안동연합회 창립 후 소위 오원춘 사건으로 불리는 안동농민회 사건을 비롯, 벼 품종 선택권 쟁취 투쟁, 수세 시정, 강제 출자 거부 등 농촌을 회생시키기 위한 각종 운동을 벌였다.

특히 오원춘 사건은 유신독재의 종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대 사회적 활동과 더불어 80년대부터는 농촌마을 공동체 형성에 박차를 가해 이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명을 위한 유기농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농촌을 공소 중심의 마을 공동체로 육성”

안동교구는 특히 교구 내에 산재한 공소들을 살리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 왔는데 교구 설립 다음해인 70년 2월에 공소 기초 조사와 농촌 현지교육을 실시하고 그 해 12월에 신자 비신자 지도자를 공소마다 5명씩 선정해 지도자 교육을 실시해 지금도 공소 봉사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교구의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면 소재지 단위마다 공소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개방하려는 안동교구의 이 같은 공소에 대한 관심은 한국 교회의 모태인 공소가 공동체 운동의 모델이 된다는 사실에 기인했다.

지역이나 이웃에 관심을 갖고 함께 살기에는 공소가 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 안동교구는 농촌지역을 공소가 기본 핵이 된 신앙생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공소관을 도시 구역 반모임에도 도입해 본당을 마을 회관처럼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지역에서 살아 숨쉬는 마을교회 동네교회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안동교구는 교구 설립의 역사는 30년이 채 안 되는 작은 교구이지만 이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2백2십여 년 전이며 많은 순교자를 낸 곳이다.

영주 지방에는 천진암 강학회(1779년)와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되기 전인 1775년부터 1785년까지 실학자인 홍유한 선생이 천주교를 받아들여 수계생활을 하면서 복음의 씨가 뿌려졌고 1785년 을사추조 적발 사건 때 서울에서 문중 박해를 받아 상주 이안으로 피난 온 서광수 가정에 의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신앙 전래 2백20년 순교자들의 못자리”

대구대교구 창립의 공로자 서상돈씨가 이 집안의 직계 후손이며 대구대교구 제2 주보 성인인 성 이윤일도 문경의 여우목 신자촌에서 생활하다 병인박해로 1867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했다.

또한 1801년 신유박해 1815년 을해박해 1827년 정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0년 경신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박해 때마다 순교자가 탄생한「순교자들의 못자리」다.

1911년에 설립된 대구교구가 한국 동란 이후 신자 수의 급격한 증가로 이를 수용하고 사목하기 위해 54년 경남 감목대리구에 이어 54년 부산교구를 설립하고, 53년 왜관 감목대리구 설립, 58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들을 초빙하여 안동감목대리구를 설립, 안동, 영주, 영양, 영덕, 청송, 포항 등지의 사목을 위임했다.

드디어 1969년 5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안동교구가 새로 설립되고 초대 교구장으로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이며 대전교구 상서국장 겸 대흥동본당 보좌신부인 두봉레나드 신부가 임명됐다.

두봉 주교는 주교 임명 소식을 듣고 한국 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방인 주교가 임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임했으나 재임명을 받았다.

초대교구장 두봉 주교가 교구 설립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한 이후 안동교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역시 방인 주교가 임명돼야 한다고 생각해 지난 90년 박석희 주교에게 교구장직을 물려주고 선교사의 자리로 돌아감으로써 현재에 이르고 있다.

◆“2천년 새 교회상 신앙생활 공동체”

지역민의 애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 공동체를 2천년대 사목의 지표로 삼은 안동교구는 외부적으로는 세상 속에 교회가 침투하면서 소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내부적으로는 직접 선교에 투신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직접 선교보다는 지역민과 함께 살려는 모습을 먼저 보여온 탓에 선교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반성 아래 이 두 가지 과제를 조화시키는 작업에 고심하고 있는 안동교구는 교구장인 박석희 주교가 직접 예비자 교리반을 맡아 운영하기 위해 준비 중일 만큼 전 교구가 신앙의 땀방울에 젖어 있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