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 문화유산을 찾아서] 1. 사적 제252호 약현성당 / 사적 제255호 원효로 성당과 옛 용산신학교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1-19 제 2036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 사적 제252호 약현성당

최초의 서양식 성당

종교는 문화의 텃밭에 부는 정신의 바람이며, 그 텃밭을 적셔온 영혼의 물줄기이다. 가톨릭도 민족 역사의 숨결과 어울리고 전통문화와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문화 전통의 맥을 열어나가는 문화유산들을 남겨왔다.

97년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기획「가톨릭 문화유산을 찾아서」를 여는 것도 제3천년기 새로운 문화복음화 시대를 준비하면서 한국 천주교회의 전통적 가톨릭 문화유산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기획이 올 한 해 순교의 피로 적신 이 땅 위에 찬란한 가톨릭문화를 꽃피운 한국 천주교회의 문화유산들을 가꾸고 알리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불씨가 되길 희망한다.

한국 가톨릭교회 건축물 중 제일 먼저 국가 사적지로 지정된 것이 서울 약현(현 중림동)성당이다.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2호로 지정된 약현성당은 1백3위 한국 순교성인 중 44위가 순교한 서소문 밖 네거리를 내려다보는 서울시 중구 중림동 149-2번지 약현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 이곳에는 약초를 재배하는 밭이 많았기 때문에 「약초밭이 있는 고개」라 해서「약전현」이라 불렀고, 후에 약전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고종 29년 즉 1892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코스트(Coste) 신부의 설계 감리로 완공된 약현성당은 길이 약 32미터, 폭 12미터, 넓이 1백20평의 벽돌조 건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성당 건물이었다.

1887년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수렛골(현 순화동)에서 문밖공소로 출발한 약현본당은 1891년 종현(현 명동)본당에서 분리되어 서울에서 2번째, 전국에서 9번째 본당으로 설립됐으나 모 본당보다 성당 건립은 5년 앞섰다.

성당 건축의 모델

교회 건축물의 권위자인 김정신 교수(단국대)는 『약현성당이 한옥과 양식을 포함해 한국 최초로 지어진 성당이기에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성당 건축에서 줄곧 한국 성당 건축의 모델이 되었었다』고 설명했다.

약현성당은 1893년 4월 축성된 후 1905년 종탑 꼭대기에 첨탑을 올렸고, 1921년 성당 내부의 칸막이를 철거하고 벽돌 기둥을 돌기둥으로 교체하는 내부공사를 했으며, 1974년부터 2년간 해체 복원 등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

약현성당은 천정이 낮아 뾰족 아치를 쓰지 않고 둥근 아치로 만든 반면, 제대 정면 출입구와 측면 출입구 창들은 뾰족 아치로 처리, 고딕 요소가 극히 적은 단순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로마네스크 양식

약현성당의 평면 구성은 시내쪽으로 향해 동측에 출입구 정면을 둔 라틴 십자형 삼랑식 구조로 신랑과 측랑의 구별은 내부에서는 확연하나 외부에서는 낮은 단층 지붕으로 나타나지 않고, 종탑은 출입구 정면 중앙에 있으며 꼭대기는 하부의 4각에서 8각으로 꺾인 도머 창을 가진 급경사의 브로치형 첨탑으로 되어 있다.

김정신 교수는『약현성당은 벽돌의 자작 생산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란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하고 『성당 건축물이 고딕 지향적인 양식을 추구, 한옥 성당과는 달리 토착화의 장애 요인도 되었지만 일본의 굴절을 거치지 않고 비교적 순수한 형태로 전래된 서양 건축문화란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 사적 제255호 원효로 성당과 옛 용산신학교

위풍당당한 고딕 건물

지금 서울 성심여고 부속 성당과 예수성심수녀회 관구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원효로 성당과 옛 용산신학교는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5호로 지정된 한국 가톨릭교회의 두 번째 국가 지정 문화재이다.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

한국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 건물인 옛 용산신학교 2층 교사는 고종 29년 1892년에 완공된 것으로 벽돌조 조오지안 양식으로 코스트 신부가 설계했고 용산신학교 성당(원효로 성당)은 1902년에 준공됐다.

일반 성당과 다른 구조

원효로 성당은 출입구 안쪽 상부 명문에 성당 건축 기간이 1899∼1902년이라는 것과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이니셜 A.K 및 그의 생존 기간(1821∼1846)이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다.

작지만 지형을 잘 이용

원효로 성당은 신학교 부속 성당이기 때문에 일반 교구 성당과 평면 형식이 다르다. 정면 입구에 배랑이 없으며, 출입구는 제대쪽 양측 면에 나 있고 제의실이 제대 반대측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2층 성가대석 갤러리가 설치되어 있다.

신자석 바닥도 원래는 제대를 향해서가 아니라 중앙축을 향해 좌우에서 아레나 형식으로 단을 지어 내렸으나 지금은 바닥이 평평한 마루로 바뀌었고, 제의실은 신자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정신 교수는 『언덕을 이용해 전면 일부는 언덕 아래의 3층으로 되어 있고 언덕 위는 단층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이 성당의 특이한 점』이라며『매우 작은 건물이지만 지형을 잘 이용, 고딕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효로 성당은 또한 명동과 약현성당처럼 회색 벽돌과 적색 벽돌을 써서 고딕의 디테일을 살렸고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천장과 제대부의 천장 구성 등은 명동, 약현성당에 비해 더욱 고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효로 성당에는 김대건 성인의 유해가 성당 축성 당시부터 1958년까지 모셔져 있었고, 조선교구 초대교구장 소 브뤼기에르 주교와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유해가 거쳐갔던 유서 깊은 곳이다.

한편 옛 용산신학교 교사는 외부 조오지아풍 2층 벽돌로 건물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일부를 3층으로 증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