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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교회를 아십니까?] 24 본보 통해 보는 한국 교회 그때 그 모습

이윤자 취재국장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1-12 제 203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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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월 7일자 획기적 교황청령 발포
1953년 교황 비오 12세는「일정한 조건」하에「밤미사」를 봉헌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비롯 성체배령 전의 단식(공심재)을 관대하게 조정하는 교황청령을 발표했다. 크리스뚜스 도미누스 (주이신 그리스도)라 명명된 이 교황청령은 당시로서는 가히 획기적이란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천주교회보」에서「가톨릭신보」로 개제한 가톨릭신보의 첫번째 신문 1면 머릿기사는「획기적 교황청령 발포」가 차지했다. 바로 1953년 3월 7일자 가톨릭신보였다.

신 교황청령 가운데 눈길을 끄는 내용은 먼저 성직자 평신도 모두에게 관대한 조치를 내린 성체배령 전 단식에 관한 규정. 그것은 보통 물(자연수)의 경우 언제 마셔도 공심재를 깨트리는 것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병자(병상에 누워 있지 않는 병자라 하더라도)가 일정한 조건 하에 약을 복용하여도 성체배령 전의 공심재를 깨트리는 것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 교황청령은 사제와 신자가 일정한 조건 하에 성체배령 1시간 전까지는 물 이외의 액체(단 알콜을 제외)를 취하는 것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이 밖에 교황청령은 일요일과 지켜야 할 축일, 특별한 집회의 경우 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위하여 밤에 미사를 드릴 필요가 있는 일정한 평일에 특별한 조건 하에 밤에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허가하는 권한을 주교에게 부여했다.

근로자와 병자를 위하여 성체배령 전의 단식을 완화「저녁미사의 거행도 허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조치는 당시로서는 가히 획기적인 개혁이 분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부분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그때를 살아온 신자들은 몇 가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음은 그 추억의 한 토막.『심심산중에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주일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성당에 가는 도중 할머니는 비를 만났고 마침 한 방울의 빗물이 하품을 하던 할머니의 입 속으로 떨어졌다. 고민 끝에 할머니는 성체를 영하긴 했으나 한 방울의 빗물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 할머니는 결국 신부님께 자신의 엄청난 죄를 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불려지긴 했지만 당시 위의 얘기는 얼마든지 가능했고 또 실재할 수 있는 얘기였다. 그만큼 신자생활 자체가 엄격했고 그 중에서도 주일미사와 성체배령에 관한 사안은 지나치다고 여겨질 만큼 엄격했다.

1953년, 당시의 이 획기적 교황청령은 몇 번의 완화 조치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는 교회의 제한 조건들 때문에 우리의 일상 생활에 큰 불편을 느낄 필요없이 신자생활을 하고 있다. 불편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지나친 무감각으로 편리하기만 한 신자생활에 젖어가고 있다.

어떤 경우 주일미사 참례률이 신자 총 수에 40%를 밑돈다는 조사 결과가 자주 눈에 띄기도 하고 주일을 낀 나들이가 보편화되면서 주일미사를 궐하는 데 대한 불감증이 심화되어 간다는 우려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

물론 엄격한 제도 하의 신자생활이 신자다운 삶으로 이어진다는 공식은 없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어진 자유에 충실한 나머지 지켜야 할 신앙인의 최소한의 권리와 의무마저 외면하는 바로 그 시점에 서 있다는 지적이 높다. 해이해진 신앙생활이 곧 사람다운 삶조차 해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한 번쯤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윤자 취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