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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진단] 세기 말적 이상기류 현상과 사이비 종교… “그리스도교 역할을 진단한다”

노길명 교수·고려대 사회학과·대담=이윤자 취재국장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1-12 제 203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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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과 따사로움 주는 교회되자”
신흥종교 발생… 현대 사회 급속한 변화 중 하나
‘철저한 인간 중심’ 윤리 도덕 고려치 않아
「이성」「과학적 사고」에 회의… 초자연 신드롬 확산

오늘날 우리는 종교 다원화 시대에 살고 있다. 종교 다원화 시대에 걸맞게 최근 국내외적으로는 신흥종교 유사종교 사이비 종교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어떤 경우 그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전개되고 있다. 종교라는 이름을 앞세워 우리 삶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는 여러 가지 이상 기류들,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본보는 대중문화 속에서, 또 일상생활 안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확산되고 있는 이상기류 현상들의 실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열풍처럼 번져가는 신흥종교와 이상기류 현상, 과연 그리스도 신앙과의 관계는 무엇이고 그리스도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전문가와의 대담을 필두로 5회에 걸쳐 집중 진단해 본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신흥종교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신흥종교의 급증은 특정 지역만의 현상만은 아니라고 보여지는데, 신흥종교들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종교는 흔히 인간이 부딪치거나 경험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 궁극적 해답을 제공해 주는 설명 체계로 정의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이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변동은 오늘날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 속도 또한 대단히 급격합니다. 과학 기술은 물론 사회의 조직이나 제도 계층구조 관념사상 등 우리의 생활양식에 영향을 주는 모든 측면들이 그 어느 때보다 급속이 변하고 있습니다. 생활양식과 세계관 인생관 등이 변하는데, 우리의 삶에 해답을 제공하는 설명체계라 할 수 있는 종교가 어떻게 변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종교의 변화는 크게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기성종교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신흥종교의 출현입니다. 기성종교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전례나 조직체계 또는 사회참여 방식의 변화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가 새로운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나 다양해지는 사람들의 종교적 욕구들을 하나의 종교가 모두 충족시켜 준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흥종교들은 기성종교가 사회변동이나 사람들의 종교적 욕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틈바구니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신흥종교의 발생은 급속한 변화를 나타내는 현대적 상황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에이지운동… 그리스도 없는 구원론

-신흥종교들의 범람과 함께,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점성술이나 예언술 풍수지리 그리고 기나 전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초자연 신드롬」이 확산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현상을「뉴에이지운동」(New-Age Movement)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이 역시 현대 종교문화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 이성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찼었습니다. 인간 이성의 발달이 과학화 산업화 민주화로 연결되어 인간을 무지와 빈곤 그리고 모든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이거나 종교적인 것은「미숙한 과학」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오직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만을 믿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과연 인간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구세주」의 역할을 해냈습니까? 그리고 인간은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이성의 지배만을 받는 이성적 존재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성의 시대라 불리던 20세기에 두 차례나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나, 가장 민주적이라 일컬어지던 독일의 바이말공화국이 무너지고 20세기의 괴물이라 일컬어지던 히틀러가 집권하게 된 것 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계는 강한 자 새로운 지식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약한 자 늙은 자들은 사라져야 하는 경쟁사회가 아닙니까? 명예퇴직 조기퇴직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얼마나 삭막한 사회입니까?

바로 이와 같은 산업사회를 지배하던 합리적 이성과 과학적 사고에 대한 회의와 반발이 과학적 합리적 세계에 대응되는 초월적이고 비합리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사회에서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초월 명상 요가 기 도 선과 같은 수행법들이나 윤회나 점성술에 대한 관심 그리고 동양사상을 띠는 신흥종교들의 확산은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후기 산업사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시대적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영화나 음악 또는 출판과 같은 대중문화산업을 이끄는 자본가들이 현대인들의 이와 같은 고민과 관심을 자신의 이윤 추구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그 확산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액운 방지 물질적 풍요 유혹… 주술 확산

-초자연적 현상이나 종교에 대한 관심이 증대한다면, 서구인들의 경우에는 오랜 역사를 통해 자신들의 생활이나 문화에 깊게 배어 있는 그리스도교에 회귀하면 될 텐데, 초월이나 명상 요가 기 도 선과 같은 동양종교의 성격을 띤 수행법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기 이전까지의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은 성과 속, 생과 사, 현실과 초현실, 선과 악, 영혼과 육신을 엄격히 구분하는 이원론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합리성이나 과학에 대응해서 일어나는 최근의 종교현상들은 성과 속, 생과 사, 현실과 초현실, 영혼과 육신, 인간과 자연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대립적 관계에 있는 것들을 하나로 간주하려는 일원론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조화와 융합을 강조하는 동양종교들의 패러다임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서구인들이 동양종교 사상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 번 사용했던 종교적 세계관보다는 미지의 것이 보다 신비롭고 새로워 보이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이러한 종교적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그 점은 신학적인 면과 관련되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과 상당한 차이를 갖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이러한 흐름에서는 우주의 중심을 하느님이나 신이 아닌 자연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 질서와 조화를 이룰 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연계가 갖는 모든 성질과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수한 수행이나 비술들을 사용하면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도 고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초능력을 행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모두 동원하려는 일종의 종교적 혼합주의를 나타냅니다. 여기에서는 선악이나 윤리문제는 별로 고려되지 않습니다.「하느님 중심」이 아니라, 철저한「인간 중심」의 사상이고 종교라 할 수 있지요.

93년 6월, 교황께서는 미국 주교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소위「뉴 에이지」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들은 성서나 그리스도교 전통과 일치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러한 흐름들이 미사 강론이나 교리시간 그리고 피정이나 묵상회 등에서 나타나고 있고 열심한 신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경계하셨습니다. 학자들이 이러한 흐름을「하느님 없는 휴머니즘」또는「그리스도 없는 구원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흐름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을 하나의 종교운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종교라고 한다면 신앙 공동체나 집단적인 예배의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회가 변한다면, 종교 역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형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종교라고 하면 교회나 사찰과 같은 물리적인 시설이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 그리고 집단적인 예배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는「보이지 않는 종교들」(the invisiblereligions)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수련을 통해 자기 자신이 초능력을 행하는 만인사제주의는 예전과 같은 물리적 시설이나 신앙 공동체 집단예배 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기존「뉴 에이지 운동」도「보이지 않는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겠지요. 여하튼, 종교사회학자들 가운데는 앞으로는「보이지 않는 종교의 시대」가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언술·풍수지리설 주고객은「화이트 칼라」

-기나 도 또는 선과 같은 수행법에 대한 관심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흐름을 단지 세계적 현상이나 하나의 유행으로만 간주하기는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열풍이 일게 된 우리 특유의 내적 요인은 없을까요?

▲물론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 흐름입니다만, 우리의 경우는 최근 우리 사회가 겪었던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을 제약하던 빈곤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사회가 비교적 안정을 얻게 되면, 불안정한 사회에서 매력을 갖던 인권 정의 평등 평화 민족주체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나 해원 상생 등과 같은 윤리 덕목들이 갖던 종교적 구제재(救濟財)로서의 상품성은 약화되는 대신, 개인과 가족의 건강과 평화, 정신적 안정과 같은 것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게 됩니다. 또한「독재자」나「매판자본가」와 같은 악의 화신을 찾기 어려운 상태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회보다는 자신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87년의 민주화 항쟁으로「6.29 선언」이 발표된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속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를 전후하면서 기 단전 등과 같은 건강 유지나 또는 치병과 관련 된 여러 형태의 비술과, 스트레스의 해소나 심리적 안정을 보장하는 명상술과 같은 심리요법과 심령술, 그리고 액운을 방지하고 물질적 풍요를 보장한다는 주술적 방법들이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흐름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90년대 기성종교 성장률 둔화… 종교 형태 변용

-그러한 수행법이나 비술들은 자신이 직접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만, 의식적으로 시도하거나 체험할 수도 없는 전생이나 환생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확산되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여러 요인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후기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합리적 이성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에다 우리 사회에서 급증하고 있는 중산층의 의식세계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중산층의 대다수를 이루는「화이트 칼라」들은 대부분 빈곤한 시대에 태어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육이라는 매개 수단을 통해 현재의 사회적 지위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현재의 위치나 생활이 자신의 능력보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운명이나 연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전생의 업이 오늘의 내 모습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낳게 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심리가 자본가들이 만들어내는「뉴 에이지」물결에 의해 전생과 환생 신드롬을 일으킨다고 여겨집니다. 예언술이나 풍수지리설들이 갑자기 성행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생과 환생 그리고 예언술이나 풍수지리설의 주 고객층이 젊은「화이트 칼라」라는 점이 이러한 점을 말해 준다고 봅니다.

-교수님 말씀을 들으면, 기나 도나 선과 같은 수행법들이 확산되는 현상도 신흥종교의 발생과 같은 맥락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한다면, 교리나 조직체가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예전의 종교들과는 형태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기성종교의 성장률은 크게 둔화되고 있습니다. 한때는 연평균 10%를 넘던 많은 개신교 교단들의 성장률이 96년도에는 1% 미만을 나타냈습니다. 82년도에 9.6%의 성장률을 나타내던 우리 교회도 95년도에는 3.36%로 낮아졌습니다. 얼핏 보면, 사람들의 종교적인 욕구가 약화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종교적 욕구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기성종교의 신장률은 약화되었지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가지의 비술이나 영성술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폭발적이라 할 정도로 높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각종의 예언술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지 않습니까? 요즈음에는 일간지들도 앞 다투어「오늘의 운세」라는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예언이나 운명과 관련된 업종에 흘러 들어가는 돈의 규모가 1년에 2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방송 보도도 있었습니다만, 이러한 현상은 종교에 대한 기대 내용이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종교의 형태도 변용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권위·경쟁·업적주의 탈피해야 할 과제

-사람들의 종교적 욕구가 변화하고 있고 종교의 변용현상 또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면, 우리 교회로서는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요즈음 사람들의 입맛이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입맛이 변했다고 해서 건강 유지에 필요한 영양소가 바뀔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변했다고 하여 복음의 내용이 바뀔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에게 단백질이 풍부한 불고기를 먹여야 하겠는데 그 아이가 불고기를 먹지 않으려 한다면, 강제로 먹이려 하기보다는 그 아이가 좋아하는 쇠고기 스테이크나 쇠고기를 듬뿍 넣은 피자를 만들어 먹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대인들은 권위주의나 경쟁주의 업적주의와 같은 것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그런 것들은 지나온 전통사회나 산업사회에서 강조되던 것들이지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육체적 건강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와 같은 것들을 갈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이러한 욕구에 부응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모색해야겠지요. 컴퓨터에 비유한다면, 정의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사목과 같은「하드 웨어」와 함께, 평온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소프트 웨어」의 개발도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노길명 교수·고려대 사회학과·대담=이윤자 취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