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그때 교회를 아십니까?] 23 본보 통해 보는 한국 교회 그때 그 모습

이윤자 취재국장
입력일 2011-04-12 수정일 2011-04-12 발행일 1997-01-01 제 203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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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월 7일자 개제의 변
1953년 3월 7일자「천주교회보」는 바뀐 제호로 발행되었다. 바뀐 이름은「가톨릭신보」였다.

3월 7일자 1면 사설로 게재된 개제의 변을 잠시 살펴보자.『본지는 제 122호로써 그 제호를 「가톨릭신보」라 개칭하고 바야흐로 첫 걸음을 내디디게 되었다. 광의로 보아「천주교회」와「가톨릭」이나 보와 신보가 근본적으로 상위한 의미 내용을 가진 바 아니로되 오늘처럼 가톨릭의 세계사적 사명이 화급히 요청되는 때가 일직이 없었음에 비추어 가능한한 우리의 사명감과 아울러 시대적 욕구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충성코자 함에 기인한 것이다』.

사설은 천주교회보가 가톨릭신보로 제호가 변경된 것이 세계화 추구와 그 목표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어지는 사설 내용은 바로 이 같은 배경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원래 가톨릭 신자에게 부가된 사명이 자기 개인의 신앙세계 안에서 안주함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성부의 나라가 인류 전체에 군림되기를 이상하는 것인즉 인인구제 (隣人救濟)의 중책에 금석이 있을 리 없거늘 지령 25주년을 맞기까지의 우리의 슬로우 타임은 오히려 자괴하고도 남음이 있는 바이다』.

결국 제호 변경은「회보」라는 말이 갖는 한계성을 극복하고 더욱이「가톨릭」이라는 단어가 갖는 보편 타당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선포하기 위한 천주교회보 제작진들의 발전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즉 회보라는 의미가「돌림편지」의 일환으로 『우리끼리의 범위 내에서 우리끼리의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제한된 소식을 즐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제호 변경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회보와 신보는 그 의미상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만의 나눔을 넘어 이웃과 나아가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자 선택한 제호 변경은 가톨릭신보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지향하는 중대한 결단이었음은 강조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1927년 고고를 울리면서 탄생한 천주교회보의 제호 변경은 이때가 시작에 불과했다. 1953년「천주교회보」에서「가톨릭신보」로 혁신적 제호 변경에 나섰던 천주교회보는 불과 1954년 1월 15일자 137호부터 다시「가톨릭시보」로 그 제호를 바꾸어야 했다. 명분은 다름아닌 일간 외에는「신문」이나「신보」등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정부 당국의 조처」때문이었다. 첫 제호 변경 후 불과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가톨릭시보」는 그로부터 25년 여의 세월 동안 한국 가톨릭 언론의 대명사로 명실상부한 자리를 지켜왔다. 가톨릭시보가 지금까지도 천주교회보 아니 가톨릭신문을 지칭하는 애칭으로 애독자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을 만큼 그 기간 동안 가톨릭 시보의 발전은 눈부셨다. 가톨릭시보의 발전은 교회의 발전과 그 맥을 함께 하고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1980년 4월 6일 창간 53주년, 가톨릭신보는「가톨릭신문」으로 다시 태어났다. 1199호 부활호를 기해 비로소「신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된 천주교회보는 그로부터 다시 17년 세월이 흐른 지금. 창간 70주년을 바로 눈 앞에 둔 성인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창간 70주년을 여는 새해 아침 43년 전 가톨릭신보로 개제하면서 남긴 사설의 마지막 단락은 아직도 우리 종사자들에게 유효한 말씀으로 귀에 쟁쟁하다.

『본지는 이제 미력이나마 십자군의 한 졸병으로서 임무를 다하려 하노니 우흐로 천주님의 가호와 아래로 독자 제현의 꾸준한 지도가 있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이윤자 취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