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안영의 초록빛 축복] 작은 나눔, 큰 기쁨

입력일 2011-04-05 수정일 2011-04-05 발행일 2011-04-10 제 274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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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에게 먼저 안부전화 걸어보시죠
지난 화요일, 서울 남산 ‘문학의 집’에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옆자리의 강 시인께서 손전화에 들어온 문자 메시지를 보여 주십니다.

“조00 씨 사망. 경찰병원 영안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저보다 몇 살 위인 여성 시인으로 몇 해 전 암수술을 하긴 했지만, 거의 회복이 된 분입니다. 투병 중에 자주 전화도 드렸고, 몇 번 댁 근처로 찾아가 함께 식사도 했는데, 최근 몇 달 소식을 못 드렸더니 결국엔 이런 일이….

모임 내내 그분 생각을 했습니다. 하 참! 엊그제도 생각이 났었는데, 전화나 좀 드릴 걸. 그래서 어르신들껜 문안을 자주 해야 한다니까! 그러면서 조문 갈 시간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수요일은 강의 준비도 해야 하고 원고도 써야 하고 도저히 외출할 수가 없는 날입니다. 어쩌지? 경찰병원은 또 어디 있담? 마음이 부산해졌습니다.

모임 후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고 늦은 시간 전철을 탔습니다. 피곤했던 터라 앉고 싶었습니다. 경로석 표시를 보고 탔건만 좌석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문틀에 기대어 서 있는데, 긴 의자에 앉았던 중노의 여인이 말합니다. “우리 날씬하니까, 끼어 앉읍시다.” 일행인 듯한 옆자리 분에게 말하며 자리를 만들어 제게 눈짓합니다. 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자 저쪽 옆에 앉았던 젊은 여인이 일어나며 자리를 내 줍니다. 저는 더욱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요.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아가씨가 일어납니다. 그러자 또 그 옆 청년이….

순식간에 자리가 여럿 생깁니다. 저는 너무 미안해 다급하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럼 우리 다 같이 앉읍시다.” 그래서 7명 좌석에 8명이 앉았지요. 행복했습니다. 모두들 한 가족이 되어 서로의 눈을 맞추며 빙긋 웃었으니까요. 저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작은 나눔, 큰 기쁨!

집에 오자 다시 조 시인 생각으로 골몰합니다. 왜 나에게는 소식이 없을까? 도대체 언제 떠나셨다는 건가? 발인은? 이것저것 궁금했지만 전화를 걸어 보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지요. 저는 잠시 꾀가 납니다. 나에겐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 조문 가는 건 그냥 두고 연미사만 한 대 넣어 드릴까? 내일은 정말 바쁜데 어쩌지? 다음 순간, 전철 속에서의 ‘작은 나눔, 큰 기쁨’ 생각이 났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두어 시간 나누는 걸 못한대서야 되겠나. 더구나 그분은 나와 함께 가톨릭 문인인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전화를 넣었습니다. 누군가 친척이라도 집을 지키고 있겠지. 신호음이 울리자 금세 밝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응. 안 선생? 잘 있었지? 안 그래도 요즈음 가톨릭신문 칼럼 잘 보고 있어. 반가워!” 저는 온몸이 떨렸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하마터면 제 입에서 ‘아니, 선생님 살아계셨군요?’라는 말이 나올 뻔했습니다. 하지만 꿀꺽 삼키고, 황망 중에 대답할 말을 찾아냈습니다.

“선생님, 축하드려요. 선생님 앞으로 백 살까지 사시겠어요.”

그러자 영문을 모르는 그분은 되묻습니다. “아니, 느닷없이 왜?” 저는 할 수 없이 자초지종을 말씀드립니다. 그러고는 다시 덧붙여 “옛날부터 그러잖아요. 헛소문 나면 장수한다고. 선생님, 저보다 오래 사셔서 제 조문도 와 주셔야 해요. 하하하.”

우리는 아침부터 활짝 웃었습니다. 저는 우선 이 소식을 강 시인께 알려야지 싶어 바로 전화하겠다고 했더니, 본인이 안부도 할 겸 직접 하겠다고 합니다.

몇 분 후, 강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벌써 여러 문인에게 알렸는데, 큰일 났다고. 어서 취소 전화를 해야겠다고. 정말 고맙다고. 아마도 교회 식구 중에 같은 이름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하하하.

전화 한 통화로 여러 사람 즐겁게 웃고, 시간도 벌어서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