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3년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특집] 초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에게 듣는다 (17) 공의회 정신 구현한 선교도구

정리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1-03-30 수정일 2011-03-30 발행일 2011-04-03 제 274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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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주체성 일깨운 사도직 활동 장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제일 두드러지게 바뀐 것은 평신도사도직을 강조하게 된 것이에요. 평신도가 바로 교회의 주체이기 때문이지요. 교회의 선교사명은 모두 평신도가 받은 사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교우들이 점점 주체성과 정체성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호응이 있었지요. 이에 따라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이하 평협)가 탄생했어요.

대체로 한국교회 전체가 공의회 정신을 가장 잘 받아들였다고 생각해요.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차근차근 교회의 개혁을 이뤄나갔지요. 소공동체를 각 본당 안에 육성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어요. 지금도 어려움은 있지만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공의회는 방향만 제시했고 구체적인 사안들은 노력과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했지요. 공의회 정신을 교회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교육이 중심이 됐지요. 그때만 해도 신자들은 본당 운영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평신도들의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참여의 필요성을 절감했지요. 처음 시행되는 것이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어요. 이는 사제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진통을 겪으며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1972~74년 교구에서 평신도 교육 3개년 계획을 실시했지요. 이는 선구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수원교구에 평협이 가장 먼저 생겼지요. 제1대 회장에는 조성지(프란치스코)씨가 선출됐어요. 현 성남대리구장인 조원규 신부가 이분의 조카이기도 해요.

평협 탄생 이후, 교구 평협과 본당 사목협의회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고민했어요. 사목회는 사제의 사목에 협조하고 참여하기 위한 것으로 평협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절충안을 만들어봤어요. 또한 신자들에게 책임의식을 전달해야겠다고 판단했어요. 평협이 생겼지만 공의회 정신은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였기에 그 성격을 분명하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공소 활성화도 고민이 됐지요. 공소 회장의 책임감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공소는 본당 신부가 다 관리하고 있었기에 어려움이 있었지요. 그래서 신부에게는 필요한 감독만 받고 공소 회장에게 운영 책임을 넘기도록 시도했지요. 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데는 난관도 많았어요.

1963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회기 중 로마에서.

▶다음호에 계속

정리 이우현 기자 (helen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