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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35) 인의(仁義)의 실천은 결과 아닌 덕을 닦는 것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입력일 2011-03-30 수정일 2011-03-30 발행일 2011-04-03 제 2740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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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경전 습득한 리치
상서(尙書) 등 인용 해석
‘인의(仁義)를 실천하라’는 유가(儒家)의 본래 뜻은 무엇일까? 인의의 실천이 유가(儒家)의 의지에 가깝다고 할 것인가? 성인의 가르침은 일의 공로나 결과에 두지 말고 오로지 덕을 닦는 데만 두라(聖人之敎…而其意不在功效, 只在修德)고 한다. 그리고 선(善)을 권면하되 덕(德)의 아름다움을 보고 보상을 논하지 말라(勸善而指德之美, 不指賞)는 게 전통적인 유가의 태도다. 그렇다면, 실제적 차원에서 유가적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유가의 경전을 상당히 습득했음을 알려주듯이 리치는 중국의 고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상서(尙書)>와 맹자(孟子)와 주역(周易) 등에서 인용한다. 여기서 유가적 형이상학이 제기하는 질문이 리치에게는 정치 경제적 차원의 질의응답이 된다.

리치의 해석은 공자의 저술인 <춘추(春秋)>가 사실들의 시비(是非)를 가리되, 시비의 원인을 말해주는 이해(利害)를 언급하지 않은 까닭을 말해준다. 세속의 이해(利害)는 육신 상의 이해(利害), 재물에 대한 이해(利害), 명예와 평판에 대한 이해(利害)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리치는 명예와 평판에 대한 이해는 다른 두 가지 이해관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맹자의 인의론(仁義論)은 인정(仁政)을 베풀면서 천하의 왕이 되지 못한 예가 없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양혜왕梁惠王, 上 참조) 천하의 왕이 되는 일은 사회적 차원에서 모든 이에게 이해가 관련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해(利害)는 세상에 속한 것으로 내세(來世)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의 내세의 이해득실은 매우 크고 실질적이어서 현세의 이해득실과 비교할 수 없다.

한편, 내세의 걱정이 미래와 관련된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농부가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가을의 수확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나무는 심은 지 수십 년이 지나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일국의 군주도 먼 곳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갓 당장 눈앞의 일만 돌본다면, 나라를 잃고 천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죽은 다음의 일이나 내세에 대한 염려가 필요한 일인가? 그렇다. 리치는 춘추(春秋)와 중용(中庸) 같은 경전들은 후대를 위한 염려에서 편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현세에서 이로움(利)을 추구하거나 해로움(害)을 멀리하는 것과 내세(來世)에서 이로움을 추구하고 해로움을 멀리하는 것을 같은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겠는가? 리치는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흉하기도 하고 길하기도(或凶或吉) 한 세상의 일은 내세와 비교할 수 없다. 세상의 이야기는 그저 내세(來世)의 그림자일 뿐,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마치 배우들이 극장에 있는 것과 같다(人生世間, 如俳優在劇場). 배역은 감독-주인에게 달려 있고, 배우들은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연극이 완성된다. 또한 세상의 소유나 역할은 한 번 왔다가 떠나야 하는 우리에게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알몸과 빈손으로 왔다가 가는 것이다(不論君子小人, 咸赤身空出, 赤身空返).

그렇다면, 세상을 선하게 살며 천국을 지향하는 이들은 어떤 의지를 가지는가? 리치는 선행을 하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올바른 의지를 세 형태(凡善行者有正意三狀)로 분류한다. 1) 천당에 오르고 지옥을 면하려는 의지(因登天堂,免地獄之意), 2) 천주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의지(因報答所重蒙天主恩德之意), 3) 천주의 거룩한 뜻에 화합 순응하려는 의지(因翕順天主聖旨之意). 물론 리치는 세 번째 의지를 가진 이의 태도를 최고로 이해한다. 첫 번째 의지는 지옥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교훈적인 기능을 한다. 악인이 악을 싫어하는 것은 형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선인이 악을 싫어하는 것은 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惡者惡惡, 因懼刑也, 善者惡惡, 因愛德也).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