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안영의 초록빛 축복] 말씀의 힘

입력일 2011-03-09 수정일 2011-03-09 발행일 2011-03-13 제 273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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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힘들고, 외로울때 하느님을 찾으세요”1
친구랑 함께 지리산 자락 ‘피아골 피정의 집’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주보 광고를 보고 모인 일행은 친구, 부부, 모녀, 모자 등 45명. 초등학교 6학년 10대부터 70대까지 1박 2일 동안 한 가족이 되어 좋은 시간을 갖고 왔습니다.

품 넓은 지리산 깊숙이 4층 건물로 아담하게 들어선 피정의 집. 본래는 산장 호텔이었는데, 불경기로 폐업을 하게 되자, 광주대교구에서 사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2008년에 개관했다고 합니다. 책과 테이프를 통해서만 알고 있던 강길웅 신부님이 그곳에서 착한 목자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모습을 직접 뵈니, 감사와 함께 송구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충직한 종으로 소록도에서 환우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10년 넘게 사목하시고, 또 피정의 집을 맡아 고생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신부님은 이 집을 운영하면서 3가지 실천사항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음식은 맛있게, 침구는 깨끗하게, 강론은 감동 깊게!

아닌 게 아니라 왕건이 선호했다는 전라도 남평 쌀밥이 우리의 입맛을 돋우었고, 하루만 쓰고 세탁을 하는 침구가 너무나 아까워 2박이나 3박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강론 역시 감동적이었습니다. 이곳에서의 피정은 아름다운 자연과의 만남도 한몫 하겠지만 아무래도 말씀에서 받는 힘이 가장 클 듯합니다.

도착 후 방을 배정 받을 때, 대부분 세 사람씩이었는데, 우리만 둘이 배정되어 빙긋 웃으며 좋아했지요. 그런데 하동의 토지문학관이며 화개장터를 구경하고 돌아와 보니, 우리 방에 한 젊은 자매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첨엔 방을 잘못 들어왔나 하고 놀랐는데, 알고 보니 혼자서 조금 전에 들어와 이 방으로 배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 깊은 산골까지 어떻게 혼자? 하고 물으니 광명시에서 기차로 버스로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딸 같은 자매를 만나 뜻하지 않게 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얼른 물을 떠오고 식반을 나르고 어찌나 예쁘게 행동하던지요.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란 주제로 모든 것 주님께 맡기자는 강론을 듣고 미사를 드릴 때의 일입니다. 성체를 모시고 들어온 자매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여기까지 올 때는 무언가 다급한 일이 있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날 밤, 자매는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에너지를 충전하러 왔다면, 그네는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문제의 답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말하자 그럴 땐 좋은 말씀이 보약이라며 이곳을 소개해 무작정 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위로와 치유, 그리고 중대한 선택이 필요한 자매였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주고 조언도 건네며 하느님께 매달려 열심히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경당에 모여 기도하는 시간이었는데, 신부님께선 특별한 제안을 하셨습니다. 모두들 ‘자신이 바라는 것’을 떠올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103위 성인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부르며 전구를 청하자고 했습니다. 103위 성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데 이럴 때나 한 번 불러보면 좋지 않겠느냐고. 옳소! 저는 정성껏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며 제 소망에 곁들여 그 자매를 위해서도 전구를 청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의 강론은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라는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요. 신부님께선 마치 그 자매의 일을 다 아시기라도 한 것처럼 구절구절 그네의 상황과 같은 예를 들며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는 또 훌쩍이며 울었습니다. 저는 그네의 손을 꽉 잡아 주었습니다. 눈물은 분명 위로의 은총이겠지요?

주님, 그 젊고 예쁜 자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