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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31) 리치의 윤회설(輪廻說) 비판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입력일 2011-03-01 수정일 2011-03-01 발행일 2011-03-06 제 273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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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서 교리 설명한 후 하권 시작하며 불교 다뤄
윤회(輪廻)·육도(六道) 등 인간실존 의미 새롭게 논의
리치는 천주실의 상권(1~4편)에서 성리학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핵심교리 일부를 하느님과 관련시켜 논증하려고 애썼다. 이제 개략적이나마 그리스도교 교리를 설명한 리치는 하권을 시작하면서 유학과 상치된다고 본 불교를 다룬다. 특별히 윤회(輪廻)와 육도(六道: 업에 따라 살아가야 할 여섯 가지 삶의 길) 등 사상을 다루면서 인간 실존의 의미를 새롭게 논의한다.

여기서 리치는 인생관(人生觀)을 세 가지 관점으로 요약하여 제시한다.

첫째 관점은 오직 현재만 인정하는 인생관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의 삶만 인정한다. 둘째 관점은 과거·현재·미래를 인정하되 현세의 행복과 불행은 전생에서 행한 선악의 결과라고 본다. 내세의 삶도 현생에서 행한 업보로 결정된다. 셋째 관점은 현생에 잠시 머무는 인간의 삶이 내세의 영생을 결정짓는다고 본다. 둘째 관점이 불교의 윤회교리를 말한다면, 셋째 관점은 천주교의 교리이다. 두 관점에 관통하는 공통점은 현생의 삶이 내세의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래를 지향하지만 과거의 삶을 언급하는 전생(前生)에 관한 불교의 교리, 곧 윤회설은 우리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주장일 것인가?(前世之論將亦有從來乎) 우리는 천주실의를 통해 리치의 불교 교리 이해가 얼마나 일방적인지 그리고 부족한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윤회설(輪廻之說)의 개념을 리치가 어떻게 비판하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만약 사람의 영혼이 다른 몸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면, 그 영혼은 본래 가지고 있던 지능(靈, 혹은 靈能)을 발휘하게 된다. 즉 전생에서 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기억을 확인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어본 바가 없다. 그렇다면, 불교나 도교에서 전하는 전생 이야기들은 어찌된 일인가? 리치는 이런 예의 이야기들은 마귀들의 속임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전생의 일(선과 악)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세의 행복과 불행이 전생의 인연에서 유래한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권선징악을 행하시는 하느님께서 윤회의 변화를 만드셨다면, 윤회설은 결국 무엇에 유익하단 말인가?

둘째, 하느님께서 인간과 짐승을 창조하실 때에 죄지은 이를 짐승으로 만드신 것은 아니다. 사람이나 짐승에게 각각의 영혼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옛날 사람의 영혼이 지금의 짐승 혼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지금의 짐승이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짐승 혼과 옛날의 짐승 혼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짐승의 혼에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셋째, 혼(魂)에는 생혼(生魂), 각혼(覺魂), 영혼(靈魂)의 세 종류가 있다. 생혼은 초목들의 혼으로서 이것을 부여받은 존재를 살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각혼은 짐승들의 혼(魂)으로서 이를 부여받은 존재를 생장(生長)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목구비(耳目口鼻)를 통해 주변상황을 지각하게 한다. 인간의 영혼은 생혼과 각혼의 기능을 포함하며, 이를 부여받은 존재들이 추론(推論)과 이치(理致) 등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본래의 혼(魂)이 존재한 뒤에 본성이 생기고, 본성 뒤에 종(種, species)이 결정되니, 본성의 같고 다름(同異)은 혼(魂)의 같고 다름에서 유래하고, 종의 같고 다름은 본성의 같고 다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나 짐승의 모습이 사람과 다르다면, 종(種), 본성(性), 그리고 혼(魂)이 어찌 다르지 않겠는가?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