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독자칼럼] 영화와 정치의 유사한 점/고서영

고서영(작가·율리안나·서울 압구정동본당)
입력일 2011-02-25 수정일 2011-02-25 발행일 2000-04-23 제 2197호 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국 영화 「구멍」,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거짓말」, 「송어」, 「정사」, 「해피앤드」 등의 영화들은 현대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고자 했고, 때로는 폭로하기까지 한 영화들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런 어두운 영화들을 되풀이 해서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영화들은 너무 어둡기만 해서 보는 사람들까지 어둡게 만들고 몹시 피곤함으로 몰고가기 때문이다.

현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으면 미래의 밝은 빛도 있을 것이다. 그림자를 실컷 보여 주면서 현대사회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하는 의도만 있을 때 관객들에겐 실망감 하나를 더 얹어 주는 격이다. 왜냐하면 관객들은 우리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 비리의 실상을 다른 채널(뉴스를 비롯한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어두운 현실만 잔뜩 보여 주고자한 영화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할 것인가?

역기능이 훨씬 많다고 본다.

선거판의 후보들이 정책 제시는 없고 상대방 후보와 당에 대해 비난만 일삼았던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회의와 염세에 빠지게 하는 점이 똑같다는 뜻이다.

정치인이나, 예술인이나, 모든 인간들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생각케 한다.

어느 정신의학자는 대중 예술인이나 정치인들은 남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자기애적 인격장애가 조금씩은 있다고 지적한 얘기도 드었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소수의 위대한 정치인이나 대중 예술인들까지 함께 싸잡힐까 우려된다.

남의 시선이나 끌고 싶어서 대중예술이나 정치를 택한 사람들이라면 결국 대중의 외면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인이 그들 각자의 인생에서 희망을 잃고 사는 것까지 관여할 바 아니지만 영화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영화만 자꾸 만들어내고 그래도 스크린 쿼터에 맞서 한국영화를 사랑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지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외화 「아름다운 비행」에서 소녀가 결손 가정의 어두운 그늘을 이겨내고 야생거위들과 함께 하늘을 비행하는 가슴벅찬 감격을 보여줄 때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관객들은 영화라는 매체에 끊임없는 갈채를 보낼 뿐이다.

저예산만 탓할 것이 아닌 것 같다.

인생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설 때 역시 사랑받는 영화도 만들어질 것이다.

고서영(작가·율리안나·서울 압구정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