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안영의 초록빛 축복]기도 보따리

입력일 2011-02-23 수정일 2011-02-23 발행일 2011-02-27 제 273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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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남을 위한 기도 얼마나 큰 은총인가요?
저는 이사할 때마다 맨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님 십자고상과 성모님 상을 깨끗한 보자기에 고이 간수했다가 새집에 들어가면 현관에서 보이는 벽에 고상을 걸고, 그 아래 탁자를 놓아 성모님 상을 모시는 일입니다. 밖에 나갈 때나 집에 들어설 때나 현관에서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이지요. 어린 시절 부모님께 ‘잘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등의 인사를 드렸던 것처럼.

성모님 상 앞에는, 갖가지 표정의 예수님 사진도 세워지고, 여러 성인들의 상본도 세워지고, 성수병이며 크고 빛 고운 양초도 세워져 있어 보기만 해도 풍요롭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그 상 앞에 자꾸만 사람 이름이 적힌 쪽지가 봉헌됩니다. 저는 누구를 사귀다가 조금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하느님을 알리고 싶어집니다. 제가 선교 대상으로 점찍은 사람은 일단 고상 앞에 이름부터 봉헌합니다. 그러고는 오며 가며 그 자리에 서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하루 속히 불러 한 형제자매로 엮어 주시라고.

한편 나이 들면서 타인으로부터 자주 받게 되는 부탁이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자녀의 입시를 앞둔 어머니가, 취직을 앞둔 청년이, 수술하러 들어가는 환자가, 투병 중인 환자 가족이…. 아울러 그쪽의 상황이 다급해 보여 제가 먼저 약속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도해 드릴게요!”

저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꼭 당사자의 이름을 묻고, 기도를 부탁한 사람의 이름과 함께 그 지향을 메모지에 적어서 성모님 상 앞에 얹어 놓습니다. 그러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앞으로 지나다니면서 잠시 머물러 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제일 먼저 주님께 빌고, 이어서 성모님과 곁에 계시는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전구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오래 전, 건강이 좋지 않아 누워만 지내는 형제님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자기는 건강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죽고만 싶었는데, 신부님께서 할 일을 주셨다고 했지요. 기도하는 일. 교회를 위해서, 교황님을 위해서,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한다면 그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느냐고. 몸을 움직일 순 없어도 기도는 할 수 있지 않으냐고. 그래서 날마다 그런 기도를 하고 있으니 무언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보람을 느끼고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남을 위한 기도가 대상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자신에게도 얼마나 큰 은총인가요.

요즈음 여러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선 밝은 목소리로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들려옵니다. 그리고는 대학입시에 합격했다는 사연, 편입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연, 취직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연들이 들려옵니다. 저는 그 전화를 받을 때마다 함께 기뻐하며 축하, 축하를 연발합니다. 그리고 성모님 앞으로 다가가 감사 기도를 드린 다음 그 쪽지를 치웁니다. 물론 그들이 잘해서 합격했겠지만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는 제 기도도 한몫 했으리라 싶어서 감사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들이 뜻을 이룬 뒤, 저에게 기도 부탁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다시 감사의 전화를 주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 연락을 받았기에 저도 감사 기도를 드리고 그 이름 적힌 쪽지를 치울 수 있으니까요.

제 직장 동료요 신앙 동료의 말이 떠오릅니다. 칠십이 넘었으니 이것저것 다 줄이고, 딱 한 가지만 불어나게 하자고. 그게 바로 ‘기도 보따리’입니다.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의 이름과 지향을 적어서 보따리 속에 넣고 자주 꺼내보자는 것이지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 우리로서는 그 보따리 자체가 큰 은총일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