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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62. 성녀 우르술라 Ⅲ

고종희(한양여대 교수http://blog.naver.com/bella4040)
입력일 2011-02-09 수정일 2011-02-09 발행일 2011-02-13 제 2733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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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약속한 동정서원을 지키다
쾰른 장악한 야만족 처녀들 무참히 살해
생존 성녀 훈족 왕자 청혼 거절하고 순교
작품속 왕자 우르술라 향해 활 시위 당겨
인물·풍경·건축물·복식 등 사실적 묘사
한스 멤링, <성녀 우르술라의 순교>(성녀 우르술라 유골함의 부분), 37.5 x 25.5 cm, 나무 패널에 유화, 브뤼게, 한스 멤링 미술관.
성녀 우르술라가 이끄는 1만1000명의 처녀들은 로마에서 교황 치리아쿠스를 만났다. 교황은 주님의 천사로부터 이들과 함께 순교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그는 일행 중 세례 받지 않은 모든 이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교황청을 아메토라는 사람에게 맡기고 처녀들의 순례길에 합류하여 독일 쾰른으로 향했다. 교황청을 비웠기 때문에 치리아쿠스는 이후 교황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한편 1만1000명의 처녀들이 쾰른에 도착하니 도시는 당시 야만족인 훈족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역사적으로도 이 무렵 로마제국은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제국의 방위선이 곳곳에서 뚫리는 상황이었다. 이들 훈족은 닥치는 대로 약탈과 살상을 저지르는 포악한 종족이었는데 1만1000명의 처녀 일행을 보고는 마치 늑대가 양을 잡아먹듯이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우르술라는 유일하게 살아남았는데, 아름다운 우르술라를 본 훈족의 왕자는 그녀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하자 화살을 쏘아 성녀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마침내 우르술라는 하느님께 약속한 동정서원을 지키고 순교한 것이다.

성녀 우르술라에 얽힌 이 일화는 1만1000명이나 되는 처녀들이 영국에서 출발하여 독일의 쾰른과 스위스의 바젤을 거쳐 이탈리아의 로마까지 갔다가 다시 쾰른에 와서 순교했다는 어찌 보면 황당한 이야기로 보이는데 ‘황금전설’은 당대의 교황이나 왕, 추기경, 주교의 이름까지 명시하며 기술하고 있다. 우르술라의 이 이야기는 이 성녀에 관한 이야기의 원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벨기에 브뤼게의 한스 멤링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멤링의 대표작 성녀 우르술라의 유골함에는 이상 소개한 성녀의 이야기가 마치 그림으로 읽어 나가듯이 여섯 장면에 나누어 그려져 있다. 한쪽 면에는 “쾰른에 도착”, “바젤에 도착”, “로마에 도착”이 그려져 있고 그 반대쪽은 “바젤에서 출발”, “쾰른에서 순교당하는 처녀들”, “훈족에게 순교당하는 성녀 우르술라”로 끝을 맺고 있다.

이들 그림의 배경에는 각 도시의 특색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풍경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는 수많은 처녀들을 그려놓아서 마치 단체 여행을 연상시키며, 이국적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수송한 배는 대단히 정확하게 재현되었고, 배경의 건축물 역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처녀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당대 여인들의 복식을 재현한 것이어서 당시 화가의 관심사가 풍경, 사물, 인물의 관찰에 바탕을 둔 사실의 재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유골함에 그려진 이들 그림은 성녀 우르술라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통해 실제로 당대인들 사이에서 순례 여행이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독일 쾰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훈족의 왕자가 우르술라에게 화살을 쏘고 있고 성녀는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배경에 그려진 고딕 양식의 쾰른 대성당은 3세기 혹은 5세기에 생존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녀 우르술라 시대에는 존재 하지 않았던 고딕 건축물이다. 반면 인물 바로 뒤에는 훈족의 막사를 그려 놓았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며, 성녀의 순교를 지켜보는 하얀 개, 궁사들의 포즈 등이 장면의 리얼함을 살리고 있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http://blog.naver.com/bella4040)